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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말을 흥분만 시키는 시정마(닿을 수 없는 욕망)

by 윤슬
나의 이름, 시정마 (始情馬)


1. 서론: 이름에 담긴 운명


나는 '정을 시작하는 말'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습니다. 내 삶은 언제나 뜨거운 시작으로 가득하지만, 단 한 번도 끝을 맺도록 허락되지 않은 운명의 굴레 속에 있습니다. 나의 역할은 몸값 비싼 씨수말이 안전하게 교배 작업을 마칠 수 있도록, 예민하고 때로는 포악하기까지 한 암말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나는 모든 열정과 기술을 다해 교감의 절정을 이끌어내지만, 바로 그 순간 나의 모든 희망은 좌절로 바뀌고 맙니다. 이것이 나의 삶, 나의 숙명입니다.


나의 이름은 시정마(始情馬), 정을 시작하는 말입니다. 때로는 시정마(試精馬), 즉 '정기를 시험하는 말'이라고도 불립니다. 사전은 나를 “교미 때 암말에게 혈통 좋은 수말이 채이지 않도록 암말의 기분만 떠보는 말”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두 이름 속에 나의 운명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나는 사랑을 시작하지만, 결국 시험대에 오른 채 버려지는 존재입니다. 이 글은 그 운명 속에서 내가 연마해 온 기술과 자부심,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 선택받은 기술, 버림받은 열정


나의 역할은 결코 단순한 노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발정기의 혼돈 속에서 암말의 마음을 얻고 교감의 다리를 놓는 고도의 기술입니다. 이 과정에 깃든 역설적인 자부심은 나의 존재를 지탱하는 유일한 기둥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대개 '잡종말'이라 불립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천박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지치지 않는 체력과 암말에게 능숙하게 접근하는 기술, 그리고 상대의 상태를 섬세하게 살피는 감각이 있습니다. 발정기가 되면 극도로 예민해지는 암말은 수십억 원의 가치를 지닌 씨수말에게는 너무나 위험한 상대입니다. 암말이 뒷발로 걷어차기라도 하면 우수한 혈통의 대가 끊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위험한 순간에 내가 나섭니다. 이것이 나의 생존 방식이자,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의 근원입니다.


처음 암말에게 다가서면, 날카로운 비명과 분노에 찬 뒷발질, 거친 방어와 경계심만이 나를 맞이합니다. 공기 중에는 짙은 두려움의 냄새가 감돕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끈질긴 구애와 부드러운 애무를 통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던 암말의 근육이 아주 미세하게 이완되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거친 콧김이 부드러운 숨결로 바뀌고, 바짝 선 귀가 옆으로 누그러지는 찰나의 신호를 나는 놓치지 않습니다. 마침내 암말이 모든 경계를 풀고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자세를 취하는 그 순간, 나는 짧지만 강렬한 성취감과 깊은 교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단순한 본능을 넘어선, 온전한 소통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뤄낸 이 모든 기술과 열정의 결실은 결국 나의 것이 아닙니다. 이 교감의 절정은 언제나 값비싼 '씨수말'을 위한 서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는 매 순간 고통스럽게 깨달아야만 합니다.


3. 절정의 순간, 그리고 배신


나의 모든 노력과 교감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 세상은 나에게 가장 잔인한 배신을 선사합니다. 이 순간의 충격과 고통은 내 존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영원히 반복되는 비극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암말과 나의 교배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관리사들이 움직입니다. 그들은 나를 거칠게 떼어내고, 그 자리에 고고한 자태의 씨수말을 투입합니다. 찰나의 순간,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됩니다. 교배는 짧으면 5초, 길어야 1분을 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시작한 사랑의 결실을 그저 옆에서 지켜봐야만 합니다.


자리를 빼앗긴 나는 거친 항의를 하듯 울부짖고 발버둥 칩니다. 이 행동은 단순한 분노나 질투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존재 가치와 내가 이뤄낸 모든 교감의 과정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데서 오는 깊은 슬픔의 표현입니다. 일부 암말에게서 끝까지 떨어지지 않으려 버틸 때면, 관리자들의 무자비한 '몽둥이 세례'가 날아들기도 합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한 것은 나의 열정과 진심이 이토록 하찮게 취급된다는 모멸감입니다.


한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나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시정마가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그것이 정말 눈물이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 말속에는 나의 찢어지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 반복되는 배신은 내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깁니다.


4. 스트레스라는 낙인


내가 겪는 감정적 고통은 단순한 슬픔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 몸에 '스트레스'라는 선명한 낙인을 새기고, 나의 삶을 갉아먹는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집니다.


시정마의 삶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일반 말보다 평균 수명이 2년에서 4년가량 짧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희망과 절망의 순환 속에서, 나의 하루는 죽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나의 심장은 다른 말들보다 더 빨리 닳아 없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내가 통제를 벗어나 씨암말을 임신시키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나에게는 찰나의 성취이자 내 존재의 증명일지 모르는 그 순간은, 인간의 세계에서는 거대한 재앙으로 취급됩니다. 마주(馬主)는 "1년 농사 다 망쳤다"며 한탄합니다. 나의 핏줄은 그들의 세계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오점일 뿐이라는 현실을,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마주합니다.


이 무거운 삶의 무게 속에서도, 아주 먼 옛날 우리와 같은 운명을 극복하고 역사가 된 존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5. 한 줄기 빛, 고돌핀 아라비안의 전설


나와 같은 시정마의 비극적인 삶 속에서도, 때로는 다른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운명을 거슬러 전설이 된 한 존재에 대한 기록입니다.


오늘날 모든 서러브레드 경주마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3대 시조 중 하나, '고돌핀 아라비안' 역시 한때는 나와 같은 시정마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들 사이에서 희망처럼 떠돌지만, 나는 때때로 이 전설의 잔인함을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과연 우리를 위한 위안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결코 전설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더욱 아프게 상기시키는 신기루일까요. 어쩌면 그저 우리가 절망 속에서도 묵묵히 역할을 수행하게 하려는, 인간들이 들려주는 한 줄기 불가능한 희망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위대한 이름은 오히려 수많은 우리들의 익명성을 더욱 짙게 만드는 잔인한 농담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우리는 '혈통이 좋지 않은 암말이나 나이가 들어 은퇴한 씨암말'과 교배할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위로가 아닙니다. 그 순간의 본능적인 해소 뒤에는, 이것이 열정이나 가치의 인정이 아니라 그저 고장 나기 쉬운 도구를 기름칠하는 것과 같은 계산된 관리 방식이라는 차가운 깨달음이 뒤따릅니다. 나는 그 작은 자비에 굴욕적인 감사함을 느끼며, 나의 존재가 철저히 통제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받습니다.


결국 나는 압니다. 우리 대부분은 고돌핀 아라비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저 이름 없는 시정마로 살다 스러져 갈 뿐이라는 것을.


6. 결론: 그래도 나는 사랑을 시작하는 말


나의 삶은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시작만 있고 끝은 없으며, 열정은 있으나 보상은 없습니다. 나의 존재는 철저히 타인을 위한 도구로 규정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나의 본질을 되새겨 봅니다.


나의 역할은 비록 미완으로 끝나지만, 모든 생명의 시작에 반드시 필요한 '교감'과 '열정'의 불꽃을 피우는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내가 없었다면, 그토록 귀하다는 씨수말의 혈통도 이어지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나는 완성되지 못하는 사랑의 서곡을 연주하지만, 그 서곡 없이는 어떤 교향곡도 시작될 수 없습니다.


나의 이름, 시정마(始情馬).

비록 나의 사랑은 끝맺지 못할지라도, 나는 언제나 '정을 시작하는 말'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나의 슬픈 운명 속에서 내가 찾은 단 하나의 존재 이유입니다.


시정마에 대해...


말 번식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보통 “혈통 좋은 씨수말”을 먼저 떠올립니다. 값비싼 몸값, 화려한 기록, 한 번의 교배료... 그런데 그 화려함의 문턱에서, 늘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는 말이 있습니다. 시정마.


경마산업에서는 그를 ‘꼬시는 말’, ‘내시마’라고도 부릅니다.


1) 시정마는 ‘무엇을’ 하는 말인가?


시정마는 한마디로 암말이 발정(교배 가능한 상태)인지 확인하고, 교배가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사전 작업’을 하는 말입니다. 현장에서는 암말의 반응을 보고 타이밍을 잡기 위해 시정(試情/始情/始精 등 여러 표기가 쓰이기도 함) 과정을 둡니다. 미국·유럽 쪽 용어로는 보통 teaser stallion(티저 스탤리언), 즉 “발정 여부를 확인하는 수말”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왜 굳이 ‘테스터’가 필요할까? 이유는 단순하고 현실적입니다.


암말은 발정기에 예민해지고, 마음에 들지 않거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수말이 접근하면 뒷발질 같은 공격 행동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때 씨수말이 다치면 손실이 큽니다. 그래서 시정마가 먼저 들어가 반응을 확인하고 사고를 줄이는 역할을 맡습니다.


2) 시정은 ‘감(感)’이 아니라, 꽤 정교한 관찰이다.


시정에서 보는 건 로맨스가 아니라 신호(signal)입니다. 대학 확장(Extension) 자료들은 암말의 발정 신호로 보통 다음을 듭니다.


수말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관심/접근)

꼬리 들기

잦은 배뇨

외음부를 “윙킹(winking)”하는 반응

쪼그려 교배 자세(squatting)


테네시대(UT) 자료는 여기서 더 나아가, 현장에서 쓰는 ‘시정 점수(Teasing Score)’까지 제시합니다. 예컨대 발정일수록 관심·배뇨·윙킹·쪼그려 자세가 강해지고, 비발정기에는 귀를 뒤로 젖히고(ears back), 발로 차고(kicking), 물고(biting), 공격적인 태도가 나타난다고 정리합니다. 즉 시정마는 ‘분위기’만 띄우는 존재가 아니라, 번식 관리가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읽어내는 살아있는 지표입니다.


3) 안전장치: “혹시라도”를 막는 앞치마(복대)


시정 과정에서 늘 따라붙는 단어가 있습니다. 사고 방지! 현장 기사들에 따르면 시정마는 ‘복대(콘돔)’ 같은 장치를 착용해 예기치 않은 교배를 막기도 하고, 위험한 상황을 감수하며 발정기를 확인하는 ‘척후병’처럼 묘사되기도 합니다. 여러 자료에서도 목초지에서 여러 마리를 상대하는 방식에서는 탈출·돌발 상황을 대비해 시정마에게 앞치마(apron)를 착용시키는 언급이 나옵니다.



사회적/문학적 은유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시정마'라는 단어는 소설, 드라마, 혹은 일상생활에서 비유적인 표현으로도 종종 쓰입니다.


"나는 그 사람의 시정마였을 뿐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 실질적인 고생이나 분위기 조성은 내가 다 했는데, 결정적인 이득이나 영광은 다른 사람이 챙겨갈 때 쓰입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상대의 마음만 흔들어 놓고 결국 맺어지지 못하는 짝사랑이나,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연의 삶을 자조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시(Poetry)


시정마는 시인들에게 '결실을 맺지 못하는 헌신'이나 '주변인으로서의 슬픔'을 표현하는 강렬한 소재가 되어왔습니다.


시집 《철원이, 그 시정마》 (장한라 저, 2022) 가장 대표적인 문학 작품입니다. 시인이 제주도에서 말(馬)과 관련된 삶을 살며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시집입니다. 표제작인 시 <철원이, 그 시정마>는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타인을 위해 소모되는 삶의 애환을 시정마 '철원이'에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시 <기쁜 시정마> (이희원) 헛된 사랑과 헌신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 화자의 마음을 시정마의 운명에 비유했습니다.

영화 (Film)


단편영화 <시정마> (2018, 안지민 감독)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등에서 주목받고, 미국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레미 어워드(Remi Awards)를 수상한 작품입니다. 선천적 청각 장애를 가진 주인공 '삼구'의 빗나간 욕망과 파국을 그렸습니다. 자신이 욕망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도구처럼 쓰이거나, 욕망을 해소하지 못하는 상황을 '시정마'라는 제목으로 함축했습니다.


문학적/문화적 비유 (Metaphor)


특정한 작품 제목은 아니지만, 소설이나 드라마 비평에서 다음과 같은 캐릭터를 설명할 때 '시정마 같다'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사용합니다.


로맨스물의 '서브 남주': 여주인공의 마음을 열게 하고 온갖 정성을 다 쏟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남자 주인공에게 여주인공을 떠나보내야 하는 헌신적인 캐릭터를 비평할 때 자주 쓰입니다.

조직 내의 '토사구팽': 프로젝트의 초석을 닦고 궂은일을 도맡아 했으나, 성과가 나올 무렵에 밀려나고 공은 다른 사람이 차지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수필이나 칼럼의 소재로 자주 등장합니다. (예: "재주는 시정마가 부리고 돈은 종마가 번다")


이처럼 예술 작품 속에서 시정마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욕망과 거세', '주연과 조연', '희생과 소외'를 상징하는 깊이 있는 아이콘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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