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상사 밑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돌고 도는 자리, 변하지 않는 사람

by 윤슬

회사라는 곳은 참 묘한 공간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문을 두드릴 때만 해도, 우리는 저마다의 꿈과 포부를 안고 출발선에 섭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자리가 쌓이고, 경험이 쌓이고, 사람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쌓여갑니다. 그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느 순간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손수 가르쳤던 후배가, 어느새 나의 상사가 되어 회의 테이블 상석에 앉아 있는 풍경입니다.


그 순간의 감정은 말로 쉽게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서운함인지, 억울함인지, 아니면 그냥 세월에 대한 막연한 허탈감인지. 그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가슴 한편을 눌러옵니다.


자리는 돌고, 사람은 남습니다.


조직이라는 것은 애초에 사람의 마음대로 설계되지 않습니다. 보직을 맡은 사람은 자신보다 연차가 낮은 사람들로 팀을 꾸리고 싶겠지만, 현실의 조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층위로 구성됩니다. 나보다 열 살 위의 선배가 내 지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반대로 내가 어제까지 밥을 사주며 조언해 주던 후배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날이 오기도 합니다.


그것이 회사입니다.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보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한때 승승장구하며 사내 최연소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니던 사람도, 몇 년이 지나면 누군가의 팀원이 됩니다. 반대로 묵묵히 자기 일만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리더의 자리에 오르기도 합니다. 조직은 그렇게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자리는 돌고, 그 자리를 거쳐간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서로를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서운함을 꺼내는 순간, 감정의 골은 깊어집니다.


문제는 그 감정을 어디에 두느냐입니다.


"내 밑에서 일 배우던 녀석이 이제 머리가 켜졌다고 시건방지네."

"저 사람은 아직도 자기가 잘 나가던 시절인 줄 아나 봐."


양쪽 모두 속으로는 이런 말을 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그 말이 밖으로 새어 나와 팀 분위기를 흐려 놓습니다. 한 번 쌓인 앙금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회의 시간의 미묘한 침묵, 보고서 하나를 둘러싼 불필요한 신경전, 점심 자리에서의 어색한 웃음들—그 모든 것이 결국 풀리지 않은 감정의 잔재입니다.


서운함을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대화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감정의 싸움이 됩니다. 이기는 사람도 없고, 남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서로에 대한 불신만 두터워질 뿐입니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라고.


이 말이 단순히 처세술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꽤 진지한 인생의 지혜입니다. 후배 시절 자신에게 함부로 대했던 선배가 훗날 자신의 조직원이 되었을 때, 그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이기도 하니까요.


의도적이든 아니든, 권력을 가진 시절의 행동은 오랫동안 기억됩니다. 반대로, 자리가 없어도 사람을 진심으로 대했던 이들은 조용한 신뢰를 얻습니다. 그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됩니다.


잘 나간다고 오만하면, 나중이 힘들어집니다.


선배에게 잘 보여 빠르게 승진하고, 고과와 각종 수상을 독식하며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오랫동안 승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온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동료들의 눈빛이 차가워지고, 후배들이 슬그머니 거리를 둡니다.


조직은 혼자 움직이지 않습니다. 성과는 개인의 것처럼 보여도, 그 밑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깔려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사람은 결국 혼자가 됩니다. 보직이 있을 때는 그 외로움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리가 사라지는 순간, 그 텅 빔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오만은 그렇게,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여긴 대학 동아리방이 아닙니다.


예전에 내가 사수였다는 사실은, 지금 내가 그 사람의 부하직원이라는 현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이 문장이 냉정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회사란 원래 그런 곳입니다. 감정과 추억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곳이 아니라, 역할과 책임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곳입니다. 보직자가 후배라면, 그 후배를 상사로 모시는 것이 지금 이 공간의 규칙입니다. 그 규칙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 상처받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수십 년의 연차 차이, 함께 나눈 기억들, 한때 내가 가르쳤다는 자의식—이 모든 것이 순순히 고개를 숙이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어른의 몫이 아닐까요.


어린 보직자에게도,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반대쪽 입장도 쉽지 않습니다.


갓 보직을 받은 젊은 리더는, 자신보다 훨씬 연배 높은 조직원들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그들의 경험은 자신보다 깊고, 그들의 자존심은 자신이 건드리기 조심스러운 무엇입니다.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는 분위기가 경직되고, 지나치게 배려하다 보면 리더십이 흐려집니다. 어느 쪽도 쉽지 않은 줄타기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지시를 내리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 아닙니다. 저마다 다른 역사를 가진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 그 섬세함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십의 덕목입니다. 젊은 보직자일수록 그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월급에는 그런 비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회사는 일이 되게 하는 곳입니다.


어떤 관계의 불편함도, 어떤 감정의 충돌도, 결국 일을 통해 해소되거나 덮이게 됩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일을 해내는 것 자체가 직장 생활의 본질입니다. 월급이란 단순히 내 노동력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그 모든 복잡한 인간관계와 감정 소모에 대한 비용까지 포함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후배 상사 밑에서 자존심이 상하시나요? 그 감정은 충분히 자연스럽습니다. 선배 직원이 말을 따르지 않아 답답하신가요? 그 답답함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그 감정에 오래 머물러 있을수록,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됩니다.


회사를 떠나면, 어차피 만나지 않을 사이입니다.


차갑게 들릴 수 있지만, 이 말이 오히려 위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가 선택해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연히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배치된 사람들입니다. 그들 모두와 깊은 유대를 맺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을 때, 관계가 조금 더 가벼워집니다. 직장 동료는 직장 동료로서의 예의와 역할로 만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가족을 위해, 혹은 나 자신의 생활을 위해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 본질에 집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회사 안의 관계가 나를 흔들지 못하게 됩니다.


이 순간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잘 나가던 시절도, 뒤처지는 것 같던 시절도, 후배 밑에서 일해야 했던 날들도, 선배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아 막막하던 날들도—모두 시간의 흐름 속에 녹아들어 갑니다. 영원한 보직은 없고, 영원한 굴욕도 없습니다. 오늘의 서열이 내일도 유지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오만하지도, 너무 위축되지도 않게.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맞게 대우하고, 나는 내 몫의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것—그것이 가장 단단한 직장 생활의 방식이 아닐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덤덤하게 지내는 마음의 여유. 그것이 오래 살아남는 사람들의 공통점입니다. 물론 그 여유를 갖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 연습을 조금씩 해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조용한 용기가 아닐까요.


돌고 도는 자리, 변하지 않는 사람.

결국 남는 것은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를 어떻게 지냈느냐입니다.





화요일 연재
이전 10화"저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