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힐 줄 아는 당신이 가장 강한 이유
사람과 일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제 망설이지 않고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물론 회사에서는 늘 일이 우선인 것처럼 보입니다. 성과를 내야 하고, 실수를 줄여야 하고, 시간을 맞춰야 하고, 규정을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의 시작과 끝에는 결국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체계가 잘 잡혀 있어도 함께 일하는 사람이 불편하면 일은 꼬이고, 반대로 다소 서툴러도 서로의 감정을 해치지 않으면 일은 어떻게든 굴러갑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제가 뒤늦게 배운 것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사교적이지 않고 내성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분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 동료들은 미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말수가 적다, 차갑다,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괜히 긴장하게 만든다는 식의 조언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은 저절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혹시 차갑게 대하시면 어쩌지, 괜히 물어봤다가 눈치만 주시면 어쩌지, 내가 실수라도 하면 더 불편해지는 것 아닐까 하고 혼자 지레 긴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 보기로 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상대의 표정과 말투 하나하나에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괜히 기싸움하듯 굴었을 수도 있고, 스스로 주눅 들지 않으려는 마음에 더 뾰족하게 반응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압니다. 사회생활은 누가 더 강한 사람인지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누가 더 매끄럽게 함께 일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라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다가갔습니다. “제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많이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먼저 말했습니다. 일을 진행하면서도 사소한 것까지 물어보고 확인을 받았습니다. 조금 민망할 정도로 기본적인 것도 다시 여쭤보았습니다. 그리고 답을 들을 때마다 꼭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 이렇게 하는 것이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헷갈렸는데 덕분에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처음에는 다소 의식적이었지만, 하다 보니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신기하게도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그분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으셨고,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해 주셨습니다. 어쩌면 그분은 원래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 단지 말수가 적고 표현이 서툰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업무에 진심인 사람이라서, 묻는 사람에게는 정확히 알려주고 싶어 하는 성향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제가 깨달은 것은 하나였습니다. 사람 평가는 소문으로 끝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직접 겪어봐야 압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우리가 미리 두려워했던 것들은 현실에서 생각보다 덜 무섭습니다.
생각해 보면 업무를 몰라서 묻는 후배 직원에게 끝까지 차갑게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특히 상대가 예의를 갖추고 배우려는 태도를 보이면 더 그렇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아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고, 필요로 되는 감정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단순한 사실을 예전에는 잘 몰랐습니다. 모르는 것을 물어본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처럼 느껴졌고,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 같아 괜히 방어적이 되곤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저는 사회생활이 너무 서툴렀습니다. 화장실에서 혼자 울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누군가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마음이 무너졌고,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마치 패배를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면 내가 작아지는 것 같았고, 기가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별일 아닌 것을 가지고도 마음속에서 크게 싸웠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속으로는 자존심이 상했고, 억울했고,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매번 이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괜한 힘겨루기를 하지 않는 것이 더 강한 태도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가 먼저 한발 굽힙니다. 상대가 아닌 것으로 트집을 잡아도 예전처럼 바로 맞서지 않습니다. “제가 잘못 알았나 봅니다. 다시 한번 체크해 보겠습니다.” 하고 일단 한 걸음 물러섭니다. 그러면 상대는 대개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졌다는 안도감에 더 이상 날을 세우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속으로 우쭐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예전처럼 그것이 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존심 대결의 승패가 아니라 일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한 후에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확인해 보니 이 부분은 이렇게 처리하는 게 맞다고 합니다.” 대개는 그때 별말이 없습니다. 이미 감정의 열이 한 번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타이밍에, 어떤 말투로 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저는 이 단순한 원리를 너무 늦게 배웠습니다.
의견이 다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제 주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특히 일터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각자 쌓아온 방식이 있고, 자존심이 있고, 자기 판단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제가 이해를 잘 못 했나 봅니다. 말씀하신 대로 한번 해보죠.” 하고 상대의 방식을 먼저 따라가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보면 정말 상대가 맞을 때도 있고, 아니라면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그러면 그제야 “해보니 이런 문제가 있는데, 이 부분만 추가하면 어떨까요?” 하고 제 의견을 보탭니다. 그러면 상대도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처음부터 정면으로 부딪힐 때보다 오히려 훨씬 잘 반영됩니다.
이런 방식이 비겁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이것이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결과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옳은 말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까지 포함해야 비로소 일의 일부가 됩니다. 아무리 맞는 말도 사람의 마음을 긁으면 곧장 벽에 부딪힙니다. 반대로 조금 돌아가더라도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면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조금씩 배웠습니다. 부딪혀 보고, 상처받아 보고, 속으로 분해도 보고, 혼자 억울해도 하면서 겨우 익힌 방식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 “그 사람 만만치 않아”라고 말하면, 저도 속으로 조용히 대답합니다. “저도 만만치 않거든요.” 다만 예전처럼 날을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부드럽게, 그러나 쉽게 흔들리지 않는 방식으로 만만치 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 저는 압니다. 회사에서 진짜 강한 사람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매번 맞서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할 때 물러설 줄 알고 결국에는 방향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서로의 자존심을 깎지 않으면서도 일을 진전시키는 사람, 그 사람이 결국 오래갑니다.
일은 문서가 하는 것도 아니고, 시스템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사람이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일 잘하는 법에는 늘 사람 대하는 법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조금 늦게 배웠지만, 그래도 배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이제는 예전보다 덜 울고, 덜 상처받고, 더 잘 일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생활의 기술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내 일도 해내는 그 조용한 균형감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