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주무관을 바라보는 평범한 직장인의 마음
김선태 충주시 홍보담당 주무관이 퇴사하고 유튜버의 길로 들어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새로 만든 채널에 영상 하나를 남겼는데... 하루만에 구독자 90만을 훌쩍 넘겼고, 댓글 창에는 각 회사 홍보 담당자들이 “우리 제품 홍보해 달라”는 러브콜을 던지고 있더군요. 충주시의 댓글까지 보며 저는 웃기도 했지만, 동시에 마음이 묘하게 복잡해졌습니다.
부러움이 먼저였고, 그다음은 ‘나도 언젠가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상상, 그리고 끝내 ‘나는 무엇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사실 김선태 주무관이 대단한 역량을 갖고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소도시의 지자체 채널을 전국적으로, 어떤 의미에선 세계적으로도 알려지게 만든 사람이니까요. 공무원 조직이라는 특성까지 고려하면 더 그렇습니다. 누구나 카메라를 들 수는 있지만, 누구나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을 만큼 재미있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 성과가 ‘개인의 천재성’ 하나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책과 기사, 그리고 영상으로 접한 내용을 조합해 보면(어디까지나 제가 본 범위에서의 인상입니다), 몇 가지 요인이 절묘하게 맞물린 결과처럼 보였습니다.
첫째는 조직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입니다. 특히 “상사의 컴펌 없이 업로드했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놀랐습니다. 사기업에서도 쉽지 않은 일인데, 하물며 공공조직에서 담당자를 믿고 ‘올려보라’고 맡긴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개인 채널이 아니라 ‘기관’의 채널인데 말이죠.
이건 단순히 “좋은 상사를 만났다”는 차원을 넘어, 리더십이 창의성을 다루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창의적인 콘텐츠는 절차와 결재선의 길이만큼 말라버리곤 하니까요. 누군가의 실험을 허락해 주는 조직, 실패 가능성을 감수해 주는 조직에서만 ‘개인 채널 같은’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는 본인의 소질과 추진력, 그리고 감수한 리스크입니다. 모두가 그 일을 맡는다고 같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시키니까 한다”는 티가 영상에서 그대로 배어 나오기도 합니다. 카메라 앞에서의 톤, 대본의 결, 편집의 리듬, 무엇보다 ‘나는 이걸 정말 하고 싶다’는 에너지. 그런 것들은 매뉴얼로 복제되지 않습니다.
다른 지자체 유튜브 채널들을 몇 개 들어가 보았습니다. 어떤 채널에서는 영상을 만든 담당자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만들고 있다는 느낌, 카메라 앞에 서기 싫지만 억지로 서 있다는 그 애처로운 분위기가 화면 밖으로 삐져나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길은 안전한 선택이 아니었을 겁니다. 잘되면 박수지만, 잘되지 않으면 얼굴만 알려지고 남는 건 마음고생뿐일 수도 있습니다. 대중의 관심이라는 건 축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칼날이기도 하니까요. 그 위험을 감수하고도 밀고 나간 추진력 자체가 능력의 일부라고 느꼈습니다.
셋째는 ‘성공 사례’가 만들어내는 주변의 곤혹입니다. 충주시 유튜브가 잘되자 여기저기서 “우리도 하나 만들어봐”라는 주문이 쏟아지고, 홍보 담당 직원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해합니다. 성과가 나오면 기준이 됩니다. 기준이 생기면 비교가 시작됩니다. 비교가 시작되면 “왜 우리는 안 되지?”라는 질문이 조직 안에서 자라납니다.
하지만 여기서 자주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성공 콘텐츠는 콘텐츠 자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권한, 속도, 실패 허용, 협업 문화, 담당자의 재능과 의지까지 포함해 ‘환경’이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겉모양만 베낀다고 같은 맛이 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김선태 주무관을 보며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따로 있습니다.
그가 가진 능력이 “지금 시대에 시장이 원하는 능력”이라는 점.
그리고 그 능력이 조직 밖에서도 그대로 가치로 전환된다는 점.
이게 정말 부러웠습니다.
많은 직장인의 능력은 조직 안에서만 유효합니다. 회사의 시스템, 브랜드, 직함, 내부 네트워크에 기대어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고(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조직을 떠나는 순간 그 능력이 ‘경력’이 아니라 ‘추억’처럼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내가 쌓아온 노하우가 사실은 내 것이 아니라 조직의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오죠.
그런데 김선태 주무관의 커리어는 다르게 보였습니다. 충주시에서 쌓은 경험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더 크게 확장될 수 있는 형태입니다. 말하자면, 조직이 그의 능력을 키워준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는 그 능력을 ‘이식 가능한 기술’로 만들어버린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어쩌면 지금은 ‘어디에서 일했는가?’보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가 더 빠르게 평가되는 시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직함보다 결과물, 연차보다 포트폴리오, 내부 평판보다 외부 반응. 그런 세계에서 그는 이미 증명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채널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는 걸 보며, 저는 기대감의 크기를 실감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저 사람이 밖으로 나오면 뭔가 더 재밌는 일을 벌이겠구나” 하고요.
그 기대는 한편으론 부담이기도 할 텐데, 저는 이상하게도 조용히 응원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용기가 다른 누군가의 질문을 깨우는 순간을 저는 믿는 편이거든요. “나도 저렇게 해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 말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질문은 저에게 돌아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조직 밖에서도 통하는 경쟁력은 무엇인가?
시장이 원하는 능력은 무엇이고, 나는 거기에 얼마나 가까운가?
거창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요즘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경쟁력’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고요. 어느 날 퇴사하고, 어느 날 독립하고, 어느 날 멋지게 변신하는 서사는 대부분 그 이전의 수많은 “꼼지락” 위에 세워졌을 겁니다. 작은 기록, 작은 실험, 작은 공부, 작은 결과물.
저는 오늘도 그 꼼지락을 해보려 합니다.
큰 결심이 아니라, 작은 행동으로요.
업무에서 배운 것을 내 언어로 정리해 보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관점을 글로 남겨보는 것,
내가 잘하는 일을 ‘설명 가능하게’ 만들어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실패해도 다시 해볼 수 있는 마음을 챙기는 것.
김선태 주무관의 행보를 보며 느낀 부러움은, 그래서 저에게 꽤 건강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성공이 비교로만 끝나면 마음이 상하지만, 질문으로 이어지면 삶이 조금 움직입니다.
언젠가 저도 “조직 밖에서도 빛나는 나만의 기술”을 갖고 싶습니다.
그가 보여준 용기와 시대감각을 바라보며, 오늘도 제 자리에서 조용히 꼼지락거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