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마약, 섹스로 얼룩진 희대의 사기꾼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조던 벨포트

by 윤슬


조던 벨포트가 들춰낸 인간 욕망의 민낯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인간의 욕망은 어떤 색깔을 띠고 있을까요?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이 묵직한 질문에 가장 천박하고, 가장 직설적이며, 역설적으로 가장 솔직한 대답을 내놓는 작품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주인공 조던 벨포트는 단순한 사기꾼을 넘어, 자본주의의 속성과 인간 내면의 은밀한 욕망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통달했던 인물입니다.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조던 벨포트가 완전히 낯선 악인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그는 너무 과장되어 있어서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이상할 만큼 현실의 본질을 꿰뚫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보며 손가락질합니다. 천박하다고, 속물적이라고, 결국 벌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묘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정말 나는 그를 순수하게 비난만 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에게도 돈과 권력과 기회가 한꺼번에 주어진다면, 나는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펜 하나가 드러낸 자본주의의 본질


자본주의의 핵심을 이보다 더 짧고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도 드뭅니다.


조던 벨포트 : 브래드, 어떻게 하는 건지 애들한테 보여줘 봐. 이 펜 나한테 팔아봐. (Brad, show 'em how it's done. Sell me that pen.)


브래드 : 잘 봐. 이 펜을 너한테 팔라고? Watch. You want me to sell you this pen?)


조던 벨포트 : 어, 그 펜 나한테 팔아보라고. (Yeah, sell me that pen.)


브래드 : (펜을 무심하게 건네받으며) 부탁 하나만 할게. 저 냅킨에 네 이름 좀 적어줄래? (Do me a favor. Write your name down on that napkin for me.)


조던 벨포트 : 나 펜 없는데. (I don't have a pen.)


브래드 :(펜을 쓱 내밀며) 바로 그거야. 수요와 공급이지, 친구. Exactly. Supply and demand, my friend.)


조던 벨포트 : (만족스럽게 친구들을 쳐다보며)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얘가 '필요(절박함)'를 창출해 낸 거야. (See what I'm saying? He created urgency.)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펜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결핍입니다. 사람은 필요해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필요하다고 믿게 될 때 지갑을 엽니다. 조던 벨포트는 상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욕망을 설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객에게는 성공의 환상을 팔았고, 직원들에게는 부의 약속을 팔았으며, 자기 자신에게는 쾌락의 무한 확장을 팔았습니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핵심 원리이기도 합니다. 명품 브랜드가 한정판을 내놓고, 부동산 광고가 "지금 사지 않으면 늦는다"라고 속삭이며, 주식 리딩방이 "이 종목만 알면 된다"라고 유혹하는 것 — 모두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는 종종 진정으로 필요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절박함'에 이끌려 소비하고 투자를 감행합니다. 조던 벨포트는 그 섬뜩한 진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타인의 지갑을 열었습니다. 그가 사기꾼이지만 동시에 천재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돈의 끝에서 사람은 무엇을 원하게 되는가?


영화 속 조던의 삶은 돈으로 시작하지만 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돈은 곧 술이 되고, 마약이 되고, 섹스가 됩니다. 돈 그 자체보다 더 위험한 것은 돈이 열어주는 가능성입니다. 돈은 단순히 물건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 아니라,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 착각이 권력과 만나면, 욕망은 브레이크를 잃습니다.


영화 속에서 음모가 제거된 전라의 여성이 떼거지로 등장하는 파티장면들은 에로틱하다기보다 기괴합니다. 산처럼 쌓인 돈으로 기껏 하려고 했던 것이 결국 저 일차원적이고 원초적인 쾌락이었나 하는 씁쓸한 확인사살입니다. 너무 많아진 돈과 너무 쉬워진 쾌락은 오히려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지고, 더 큰 과장이 필요해지며, 더 금지된 것이 필요해집니다. 욕망이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기준치가 올라가 버리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질수록 사람이 반드시 나빠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돈은 사람을 시험하기에 너무 강력한 도구입니다. 원래 숨겨져 있던 욕망을 확대하고, 양심을 마비시키며, 실패의 비용을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돈은 인간을 바꾸기보다, 원래 있던 것을 더 크게 드러내는 확대경인지도 모릅니다.


현실은 영화보다 덜 과장되었을까요?


현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것이 결코 영화 속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은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번진 대표적 정치 스캔들이었고, 뉴욕 주지사 엘리엇 스피처는 고급 성매매 조직 연루 사실이 드러난 뒤 사임했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을 떠올려 보시면, 돈·권력·섹스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묶여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엡스타인은 억만장자 금융인으로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수백 명의 여성을 성착취했으며, 그의 인맥에는 전직 대통령과 왕족, 글로벌 기업인들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들이 그의 섬으로 향했고, 수십 년간 그것은 은밀하게 유지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재임 시절 이른바 '부가부가 파티'로 불린 향락 파티를 관저에서 열었고,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혐의로 재판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총리직을 유지했습니다. 프랑스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IMF 총재는 뉴욕 호텔에서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었고, 차기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정치 인생이 하루아침에 끝났습니다. 국내에서도 고위 공직자와 재벌, 유명 배우들의 성 스캔들은 몇 해에 한 번씩 반복되며 뉴스를 장식합니다.


패턴은 매번 같습니다. 돈과 권력이 정점에 달한 곳에 성 스캔들이 있습니다. 조던 벨포트는 그것을 영화 속에서 과장되게 재현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증명된 공식을 그대로 살았을 뿐입니다.


다만 이 사례들은 모두 같은 종류의 사건이 아닙니다. 어떤 것은 외도와 스캔들의 차원이고, 어떤 것은 권력을 이용한 착취와 범죄의 차원입니다. 그 차이를 분명히 보면서도, 권력 주변에 성적 일탈과 추문이 반복적으로 모여드는 현상 자체는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재벌과 정치인, 유명인 곁에서 왜 성 스캔들이 반복될까요? 단순히 기회가 많아서일까요? 더 본질적인 이유는 돈과 권력이 인간에게 특권의식을 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예외라는 감각, 나는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감각, 나는 원하면 가질 수 있다는 감각. 욕망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욕망을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게 만드는 힘입니다.


명예로운 가난은 없다.


영화 중간중간 쏟아지는 조던의 대사들은 놀랍도록 노골적입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습니다.


"There is no honorable poverty."

(명예로운 가난은 없다.)

"Poverty is by no means noble."

(가난은 결코 고결하지 않다.)

"I've lived as a rich man and a poor man, and I'll always choose to be rich."

(나는 부자, 가난뱅이로 다 살아봤는데 언제나 부자를 택할 것이다.)

"If you think I'm vulgar or snobbish, go to McDonald's and find a job."

(내가 천박하거나 속물이라 생각된다면 맥도날드 가서 일자리나 알아봐라.)

"All problems are solved with money."

(모든 문제는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됩니다.)


이 대사들이 불편한 것은 솔직해서가 아닙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병원, 교육, 주거, 시간, 안전, 선택권까지 돈은 거의 모든 영역에 개입합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 부자들의 탐욕을 욕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모든 문제는 돈으로 해결된다'는 명제에 깊이 동의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흔히 부자를 비판할 때 도덕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비판 속에는 종종 부러움이 숨어 있습니다. "나는 저렇게까지는 안 살겠다."는 말속에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이라는 가정이 몰래 숨어들기도 합니다. 조던 벨포트의 삶을 보며 "저건 잘못됐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저렇게 살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상상을 멈추지 못하는 것. 어쩌면 그를 욕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는 정신승리일지도 모릅니다.


조던 벨포트는 악인인 동시에 우리의 그림자입니다.

사람은 선해서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조던 벨포트는 늘 자기 자신을 정당화했습니다. 고객도 원했고, 직원도 원했고, 세상도 원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실제로 많은 인간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늘 욕망을 먼저 선택하고, 나중에 이유를 만듭니다. 그래서 욕망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서사입니다.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믿기 위해 만들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조던 벨포트가 진짜 불편한 이유는, 그가 우리 안에 있는 욕망을 있는 그래도 꺼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나'를 스크린 위에 올려놓고 전 세계가 지켜보게 만드는 것. 우리는 그를 비난하지만, 동시에 그의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실패한 도덕가의 설교보다, 몰락한 악인의 성공담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인간은 선함보다 악함에 먼저 끌리기 때문입니다. 밝히고 싶지 않은 나의 밑바닥을 들킨 것 같은 그 기분이, 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짙은 여운입니다.


욕망은 채워질수록 더 커지는가?


불교에서는 욕망을 갈애(渴愛)라고 부릅니다.


목마름처럼 채워도 채워도 다시 타오르는 것.


욕망은 음식처럼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처럼 번지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조금 있을 때는 하나만 원하지만, 하나를 얻고 나면 그다음 것의 부재가 더 크게 보입니다. 돈을 벌면 시간을 원하고, 시간을 얻으면 젊음을 원하고, 젊음을 붙잡으려다 권력을 원하고, 권력을 얻으면 사랑까지도 소유하려 듭니다.


욕망 자체를 갖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욕망을 삶의 주인 자리에 앉히는 순간부터 비극이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조던 벨포트의 실패는 욕망이 컸기 때문이 아니라, 욕망 외에는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속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수행자의 삶만이 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욕망이 자신을 삼키는가, 아니면 자신이 욕망을 바라보는가? — 그 차이가 조던 벨포트와 우리를 가르는 마지막 경계선인지도 모릅니다.


이 펜을 팔아봐 — 그 이후


결국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조던은 FBI의 수사망에 걸립니다. 동료들의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22개월이라는 가벼운 형량을 받고 출소한 그는, 보란 듯이 세일즈 강연자로 무대에 다시 섭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뉴질랜드의 강연장에서 청중 앞에 선 조던이 펜을 꺼내 들며 묻습니다.

"이 펜을 나한테 팔아보세요."


청중의 눈이 빛납니다.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번히 알면서도, 그가 쥔 '부의 비밀'을 얻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모여든 사람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이 장면에 아무런 설명도 덧붙이지 않습니다. 그 여백이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조던 벨포트의 회고록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고, 실제 그가 지금도 전 세계를 돌며 강연하는 현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성공과 타락의 서사에 얼마나 쉽게 매혹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잔혹한 증거입니다. 사기꾼이 감옥에 다녀와서도 여전히 펜을 파는 남자로 살아남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진짜 결말입니다.


조던 벨포트는 결코 찬양받을 수 없는 범죄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궤적은,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자본주의라는 토양이 얼마나 비옥한 탐욕의 온상인지, 그리고 우리 내면의 어떤 부분이 그것에 반응하는지를 비추는 가장 선명하고 잔인한 거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명예로운 가난과 비열한 부유함 사이에서, 냅킨 위에 적어 내려갈 나의 결핍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있습니다.


당신 안에도 팔고 싶은 펜이 하나쯤 있지 않으신가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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