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커서가 깜빡이고 아이디 [직진인생]으로 탁탁 글을 남긴다. 긴 웨이브 머리를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고 검은 뿔테안경을 쓴 20대 중반의 여자가 자신의 방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인터스텔라는 각본을 맡은 조너선 놀란이 4년 동안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상대성이론을 공부하면서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려서 그런지 놀라울 정도로 물리학적 요소를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 구현된 웜홀 여행은 킵 손이 1988년 발표한 논문 〈시공간의 웜홀과 항성간 여행에서의 유용성〉(Wormhole in space-time and their use for interstella travel)을 바탕으로 구상 및 표현되었다. ... 중략... 이제는 이 영화를 통해 얻게 된 데이터를 통해 천체물리학과 관련한 논문을 작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책으로 통해 보던 지식을 놀라울 정도로 영상화한 제작진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우주의 광활함과 넓음은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끼게 해 준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글이 업로드된다. 책장에는 물리학 관련 책들이 보이고 방구석에 망원경이 놓여 있다. 여자는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바라다본다.
“띵동”
알람 소리가 들린다. 글에 댓글이 달렸다.
‘저는 과학은 잘 모르지만 영화 속 우주는 참 아름다웠습니다. 당신은 나와는 다른 것을 본 모양이네요. 전 가족의 사랑, 인간의 고독을 보았습니다. 영화가 다큐멘터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저에게는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는 인간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한 영화를 보고도 이렇게 다른 것을 느낄 수가 있군요.’
아이디 [첫사랑중]이 여자 글에 댓글을 남겼다. 글을 보자 여자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아이디를 우클릭해서 쪽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우리 한번 봅시다.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그 시각 남자 방. 놀란 남자가 쪽지를 읽고 멍을 때린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답을 쓰기 시작한다.
다음 날 오후 4시. 홍대입구역 앞에서 여자가 약간 열이 받은 듯 기다리고 있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와서는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저기 혹시 [직진인생]님?”
어리바리 해 보이는 남자가 여자 쪽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끄떡이며,
“혹시 [첫사랑중]님?”
‘뭐야! 남자였어?’
여자는 뭔가 맥이 빠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 여성분이셨군요. 저는 남성분인 줄 알았어요. 블로그도 완전 다크모드여서요.
어디 차 한잔하러 가실래요?”
“차는 무슨... 술이나 한잔 해요!”
뭐에 이끌려 가듯이 남자는 여자가 이끄는 데로 따라갔다.
“전공이 철학이시구나.... 어쩐지...”
“어쩐지 왜요?”
“그럴 것 같더라고요."
“물리 전공하신다고 하셔서 그런지 글이 멋있더라고요."
“멋은 개뿔... 그냥 잘난 척해 본 거예요.”
“저는 그런 이과감성 좋아해요.”
“안 그러신 것 같던데요? 댓글 다신 것 보면...”
“제가 좀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미인이신 것도 모르고...”
“미인이면 뭐 달라져요?”
“보는 순간 댓글 단 제 손을 부러트리고 싶었습니다.”
“하여간 문과 애들은 저렇게 주둥이만 살아서는... 여자 많죠?”
“아이디가 첫사랑 중입니다. 아직 하기 전이라는 말이죠...”
“순 엉터리네요.”
“맞아요. 전 엉터리예요. 인터스텔라에서 보면 우주에 가서도 가족을 그리워하잖아요? 저는 그리워만 해요. 앞에 있으면 어쩌지 못하고요. 참 바보 같죠?”
“네. 병신 같아요. 전 무조건 직진이에요.”
“부럽네요.”
남자가 소주잔을 들어 홀짝거리며 마시기 시작한다. 그런 남자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자.
“제가 첫사랑되어 드릴까요?”
남자 놀라서 마시던 술을 더 마시더니
“그런 말 그렇게 쉽게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얼마나 더 어렵게 할까요? 고차 미분방정식이라도 풀어 드릴까요?”
얼굴이 빨개진 남자를 보면서 여자는 배를 잡고 웃었다. 하늘의 달도 그들을 보고 웃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