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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4. 2021

프레임

비관주의자는 어떤 기회 속에서도 어려움을 보고,

낙관주의자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를 본다.

_ 윈스턴 처칠


나는 지혜란 자신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를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사람의 지각과 생각은 항상 어떤 맥락, 어떤 관점 혹은 일련의 평가 기준이나 가정하에서 일어난다. 그러한 맥락, 관점, 평가 기준, 가정을 프레임이라고 한다.”


우리는 다수를 위해서는 소수가 희생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어떤 경우에라도 다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소수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중적인 존재다.


자신의 일을 소명이라고 규정하는 사람이 직업이나 커리어라고 규정하는 사람보다 훨씬 성과가 좋을 뿐 아니라 행복감도 강하게 경험한다.


프레임 싸움은 ‘단어 싸움’이다.


●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연설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연설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금지’는 매우 강한 단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연설을 금지해야 하는지 물으면, ‘아무리 그래도 금지까지야···’ 하면서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평소에 자신이 자주 던지는 질문을 점검해야 한다. 자기 삶에 대한 평가가 시시하다면 내가 시시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답이 안 나오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질문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무언가 더 나은 답을 찾고 싶은 사람은 세상을 향해 던지고 있는 질문부터 점검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어떤 이슈이든 ‘전면적’이라는 말보다는 ‘단계적’이라는 말에 안심한다. 급격한 변화에 대해 본능적으로 불안과 불확실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체로 안 좋은 일을 먼저 경험하는 것이 낫다. 안 좋은 일 다음에 경험하는 좋은 일은 더 달콤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뒤에 경험한 좋은 일이 앞에서 경험한 안 좋은 일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는 보고 싶은 것이 보인다.


어떤 기도


어느 날 세실과 모리스가 예배를 드리러 가는 중이었다.

“모리스, 자네는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생각하나?”

“글쎄 잘 모르겠는데···. 랍비께 한번 여쭤보는 게 어떻겠나?”

세실이 랍비에게 가서 물었다.

“선생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정색을 하며 대답하기를) 형제여, 그건 절대 안 되네. 기도는 신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그럴 순 없지.”

세실로부터 랍비의 답을 들은 모리스가 말했다.

“그건 자네가 질문을 잘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가서 다시 여쭤보겠네.”

이번에는 모리스가 랍비에게 물었다.

“선생님, 담배를 피우는 중에는 기도를 하면 안 되나요?”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형제여, 기도에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는 중에도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상위 수준과 하위 수준 프레임을 나누는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상위 프레임에서는 ‘Why(왜)’를 묻지만 하위 프레임에서는 ‘How(어떻게)’를 묻는다는 점이다.


회피 프레임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어려운 일을 시도하여 성취감을 맛보기보다는 행여나 일을 도모하다 망신을 당하거나 자존심 상할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부터 자신을 철저하게 보호하려 한다. 설령 성공 가능성이 99%라고 하더라도 1%의 실패 가능성에 연연한다.


이는 어떤 물건의 구매 행위를 통해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것이 소유 자체를 위해 구매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행복감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더 낮은 성취를 거둔 동메달리스트가 더 높은 성취를 거둔 은메달리스트보다 더 행복해했다는 얘기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을 ‘허위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라고 하는데 자신의 의견이나 선호, 신념, 행동이 실제보다 더 보편적이라고 착각하는 자기중심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허위 합의 효과에 사로잡힌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이 세상에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는 평가나 내용을 보면,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보다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더 많이 드러낸다.


'나’의 입장에서 타인은 짧은 시간에도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이지만, 나 자신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는 ‘복잡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넌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그런 실수를 하는 것이고, ‘난 어쩌다 보니’ 그런 실수를 한 것이다.


아렌트는 유태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을 사이코패스나 괴물로 그려내지 않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으로 그려냈다.


만일 상황이 원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는 누구나 예외 없이 악을 저질러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누구나 예외 없이 선을 행해야 하는데, 우리 주변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도 소수이고, 선을 행하는 사람도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류의 사람만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사람 프레임이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기 혼자 그 장면을 목격하고도 경찰을 부르지 않았다면 비극적 결말에 대한 모든 도덕적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따라서 매우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위급 상황에서는 목격자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 상황에 개입하여 도움을 줄 행동의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이를 ‘방관자 효과(The Bystander Effect)’라고 한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도 권위자가 명령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는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의 힘을 직시하게 되면, 나쁜 행동을 한 사람에게 조금은 더 관대해진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조금 덜 영웅시하게 된다. 쉽고 익숙한 ‘사람 프레임’에서 불편하지만 진실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 프레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간 행동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 프레임과 상황 프레임을 균형 있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친구 때문에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은, 그것이 아무리 은밀하고 사적일지라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친구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나 때문에 일어나는 친구 내면의 변화를 알 수 없다.


내 행복이 ‘내 친구의 친구’뿐 아니라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행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조차도 내 행복 여부에 따라 그들이 경험하는 행복감이 달라질 수 있다고 이 연구는 밝히고 있다. 나는 그저 행복할 뿐인데, 이 때문에 생면부지의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바로 프레임이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당연시하며 그 일이 처음부터 일어날 줄 알았다는 듯이 자신할 때, 우리는 현재 프레임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 ‘내가 진짜 알았을까?’라고 솔직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의 다음 지적은 참으로 적절해 보인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나면, 자신은 처음부터 작은 나비였다고 주장하게 된다. 성숙의 과정이 모두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현재의 프레임으로 보는 과거의 모습은 늘 촌스러울 따름이다.


카너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손실은 이득보다 2.5배 정도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손실 혐오(loss aversion)’라고 한다.


일단 무엇이든 내 소유가 되고 나면 그것의 심리적 가치는 상승하게 된다. 그래서 쓰지 않고 방치하던 물건도 남이 달라면 주기가 아까워진다. 중고 물건을 놓고 소유자와 구매자 사이에 가격 갈등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내 것’의 프레임으로 보는 사람과 아직은 내 것이 아닌 중립적인 프레임으로 보는 사람이 느끼는 물건의 심리적 가치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삶의 상황들은 일방적으로 주어지지만, 그 상황에 대한 프레임은 철저하게 우리 자신이 선택해야 할 몫이다. 더 나아가 최선의 프레임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인격성의 최후 보루이자 도덕적 의무다.


가장 행복하다고 답한 10%의 사람들과 나머지 사람들이 보인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돈, 건강, 운동, 종교였을까? 아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관계’였다. 최고로 행복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혼자 있는 시간이 적었고,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영국의 극작가 톰 스토파드(Tom Stoppard)의 말로 이 책을 마치려고 한다.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


*총평

유명하다고 해서 읽어야지 하다 이제야 읽었다. 기존 관념을 깨는 이야기들과 내가 얼마나 프레임에 갇힌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고 인간이란 이렇게나 어리석은 동물이라는 것도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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