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칼부림 사건도 있고 이런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곤 한다.
캐나다에는 사건사고에서 가해자의 서사를 싣지 말고 보도하라는 지침이 있다고 한다.
가령 ‘00어려움에 있던 사람의 범죄’라라는 식이다.
이것은 가해자의 범죄를 지지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 있었던 칼부림 사건에 대한 보도는 가해자의 서사를 담은 경우가 많았다.
난 전에 홍자람 작가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상업 스토리에서 악인에게 면죄부를 줘서는 안되는 말이었다.
가해자를 대변하거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스토리는 상업 스토리에서 써서는 안된다고 했다.
다른 영화 분석 모임에서 영화 ‘조커’를 이야기하면서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거기에 있는 분은 대수롭지 않다는 식이었다.
얼마 전 요즘 칼부림 관련하여 블라인드에 경찰이 올린 글을 봤다.
가해자의 인권이 강화되어 경찰이 정당방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이다.
전에 법원 검찰 수사관 강연 들은 적이 있다.
가해자의 인권은 강화되었지만 피해자의 인권은 그대로라며 안타까워하셨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있다고 해서 모두 범죄자가 되지 않는다.
피해자는 무슨 잘못인가?
그렇다면 나영이를 그렇게 만든 조두순에게도 뭔가 사연이 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가 된다.
모든 가해자에게 이유와 명분을 제공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겠는가?
피해자들은 무슨 죄인가?
전에 살인을 저지르고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다룬 다큐를 봤다.
다큐는 그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죄책감으로 힘들어하는 상황을 많이 다뤘다.
그것은 만든 제작진이 나에게 소감평을 물었다.
난 피해자 가족이 보면 화가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법과 원칙이 있다.
모두가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넘지 말아야 되는 선이 존재한다.
그것을 우리 대중은 받아들이고 수용하며 그것 안에 아마 대중 스토리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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