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봤다.
올해 본 한국 영화 중에 최고였다.
서울에 대지진이 일어나고 아파트 한채만 무너지지 않는다.
그 이후 아파트 주민들이 살아남기 위해 과정을 그렸다.
보는 내내 내가 만약 저 상황이면 난 어떤 행동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봤다.
우리네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아이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있다.
거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 중에 정말로 괜찮은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라고 말이다.
그 책에는 수용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책도 어제 영화도 우리의 현실 삶과 별다를 것이 없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우리는 때로는 연기도 때로는 위장과 때로는 배신과 배반을 한다.
직장에서 철저하게 이용도 당해보고 버림(?)도 당해보고
여러 과정을 겪으면서 세상 자체가 전쟁터라는 사실을 매일 느낀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네 욕망은 무한하다.
가지는 자가 있으면 얹지 못하는 자가 있다.
내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의 강한 생존력 때문이다.
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다.
물론 잘 말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체면 따위는 버리는 것이다.
인사고과를 위해 상사에게 딸랑이를 떨어야 하고 원하지 않는 보직을 맡지 않기 위해서
사내정치에 열을 올리고 권력의 줄을 이용해야 한다.
모두 살아남기 위한 과정이다.
나는 인간의 이 모든 과정이 때로는 눈물 나게 아름답고 때로는 역겨울 정도로 혐오한다.
회사에서 모멸감을 대가로 받아온 월급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맥주 한 캔으로 나를 달래는 것뿐이다.
난 버텨내 보겠다.
어떤 상황이 오던 방법을 찾고 질기게 살아내겠다.
어쩜 명예, 존엄, 자존심 이런 것이 사치인지도 모르겠다.
난 그렇게 많이 괜찮은 사람은 아니다.
세상이라는 수용소에서 나도 살아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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