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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간 동안 열 다섯개 팀의 분석 자료를 보고 듣고 피드백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스피드 게임을 의뢰받은건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한 시간만 더 달라고 말하는 것 밖에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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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간 동안 말을 했다. 중간에 오분, 십분 쉬는 시간도 주지 않아서 화장실에 못 갔다. 약간 비는 시간이 나면 '그럼 이것도 봐주세요' '아까 봐주셨는데 좀 더 봐주세요' 무섭도록 비어있는 시간을 채워넣었다. 따로 요구하지 않아도 화장실에는 갈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은 줬으면 좋겠다. 이걸 말을 해야 안다는게 짜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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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피드백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발표 시간으로 오 분을 받았는데, 내가 말하는 시간은 십 분이라는게 이상했다. 나는 이 발표를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왜 더 긴 시간을 받았을까? 의아했다.
피드백이란 좋은 이야기를 많이, 그리고 칭찬의 끝에 약간의 개선 사항을 말해야 한다는 얘기를 어디에선가 주워들었다. 나는 그 균형을 잘 못 맞추는 것 같다. 연습 겸 피드백을 준 나에게 피드백을 줘보겠다. 체력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집중해서 고맙다. 잘했다. (선칭찬 그리고 이어지는 약간의 개선 사항) 그런데 다음에는 좀 더 친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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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시쯤에 분명 잠이 쏟아졌다. 그래서 잤다. 컴컴해서 안락한 꿈을 꾸고 있었는데 벼락 같이 알람이 울렸다. 삽시간에 마리아나 해구(이제 얘가 제일 깊은 해구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나 때는 얘가 최고라고 배웠다) 밑바닥에서 눈이 부시는 수면 바로 아래까지 퍼드득 건져 올려진 생선이 된 것 같았다. 갑자기 높은 곳에 끌어올려져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후로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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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영 시인의『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을 다시 읽고 있다. 이렇게 우울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 책이었다니. 나는 왜 코미디 에세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쓰고보니 나는 대체로 모든 컨텐츠를 코미디로 기억하는 것 같긴 하다) 나는 이 책을 무슨 정신으로 동네방네 추천하고 다녔는가? 재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 난 이 책을 또 코미디 책이라고 기억하고 다시 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