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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작으니 적게 사고, 자주 버려야 한다. 오늘은 75L 업소용 쓰레기봉지를 사와서 그걸 다 채울 때까지 쓰레기를 골라냈다. 원래 목표는 보일러실 겸 창고처럼 쓰고 있는 곳을 비워내는 것이었는데 거실과 옷방을 잠깐 훑으니 75L가 꽉 찼다. 오늘 내가 버린 것은 아래와 같다.
싹이 난 고구마 (햇빛도 없고 물도 없는 찬장 안에서 어떻게 싹이 났을까?)
분갈이를 하다가 조금 남은 흙 (오래 되어서 더 이상 못 쓴다)
안 쓰는 케이블 한 무더기
귀여운 곰돌이 모양 플라스틱 조명 (귀여우나 켜지 않는다)
지나간 계약서, 명함, 기타 잡다한 서류들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과 김
사은품으로 받았지만 한 번도 쓰지 않은 마우스패드, 클리어화일 등
안경 없는 안경집과 낡은 안경닦이
이상한 브라 (예전에 바다로 여름 휴가를 갈 때 입으려고 산 것 같다)
더 이상 안 입는 속옷과 양말, 쿠션, 재활용 못 하는 옷, 자투리 천
등등
필요가 없으면서 낡거나 못생긴 것은 버리기 쉬운데, 쓰지는 않으면서 아름답거나 언젠가는 쓸 수 있을 것 같은게 참 어렵다. 그래서 매일 입는 옷은 티셔츠 세 장에 헐렁이는 바지, 숏레깅스 정도밖에 없는데 옷서랍이 항상 꽉 차 있다. 이것도 언젠가는 결단을 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정지음 작가의 <젊은 ADHD의 슬픔>에 나오는 것처럼 쓰레기 봉투를 채우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니 좀 더 과감할 수 있었다. 목표로 한 보일러실은 건드리지도 못했으니 아무래도 봉지를 하나 더 사야할 것 같다.
쓰레기 봉지가 아닌 나머지 것들은 적극적으로 덜 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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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고통은 너무 먼 곳에 있는 것 같다. 내가 버린 옷은 중국 어딘가에서 만들어져 몇 번 입히지도 않은 채 곧 소각되고 그 소각되면서 만들어진 안좋은 물질들이 바람이 되어 먼 곳으로 날아가거나, 땅에 묻혀 미래의 생명들에게 독이 된다. 고통은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멀어진다.
내가 죽이지 않은 짐승. 누군가 대신 죽여준 짐승을 먹기에 그 고통 또한 나와 아주 먼 곳에 있다.
파업을 하는 간호사, 땡볕 아래 방역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고통도 너무 멀리에 있다. 우리는 가끔 그것을 뉴스로 들을 뿐 구체적으로 상상하지도 못하고 듣는 것마저 회피해버린다.
아주 먼 곳의 고통을 느끼고 상상하고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쓰는 사람들이 있다. 정세랑 작가는 여행 에세이를 마무리하며 앞으로 해외여행은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겠노라고 밝혔다. 비행기가 만들어내는 공해와, 관광객으로 인해 아름다운 곳이 오염되는 것을 걱정해서다. 같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게까지 고통과 공감의 신경을 붙여놓고 사는 것이다.
현대의 고통이 멀어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하는 것에 게을러질테다.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다보면 그 고통은 누가 다 안게 될까? 아마도 말 없고, 힘 없는 아주 약한 것들에게 다닿게 될 것이다. 그 인과관계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