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삼일을 보내고, 집에서 삼우제를 치르기까지 머물다 서울에 올라왔다. 언젠가는 돌아가셨겠지만 그게 올해일줄은 몰랐기에, 월요일 새벽 평소라면 깨어있지 않은 시간에 부고를 듣고는 어리둥절 했던 것 같다. 당황하는 나를 동거인이 다독여줬다. 운전 하면서 마시라고 커피를 내려서 텀블러를 손에 쥐어줬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번주 회의에는 들어가지 못 할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고 논산으로 내려갔다. 새벽 공기가 영 적응이 안됐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명절에도 잘 모이지 않던 친척들이 부고 소식에 속속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논산역으로 막내동생을 데리러 가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할아버지 집에 잠깐 들어갔다. 그 집은 1991년, 내가 태어나던 해에 지어졌다. 할아버지가 안 계신 집 거실에 누워 천장을 봤다. 나무로 짜인 천장 장식에 원래는 샹들리에가 있었는데, 지금은 납작한 LED 조명이 어색하게 붙어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날 그 샹들리에를 내렸다. 샹들리에를 가운데두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알알이 걸려있던 물방울 모양 장식들을 다 떼어 물에 씻었다. 큰 대야 안에 장식들이 바그락 바그락 소리를 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할아버지는 샹들리에를 내리고, LED 조명을 다는 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서운하셨을까. 불을 켜고 끄기 편리해져 좋아하셨을까. 생각해보면 할아버지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발코니에 서서 조용히 담배를 태우는 모습만 사진처럼 선명하다. 내 기억에는 담배를 놓으신 적이 한번도 없는데, 돌아가시기 몇 주 전부터는 기억력이 안좋아져 담배를 피는 것도 잊어버리셨다고 했다.
상주인 아빠는 들어온 부의금은 다 빚이라며 봉투째 도로 다 나누어주었다. 賻儀 라고 적힌 흰 봉투 뒷 면에는 봉투를 넣은 사람 이름이 쓰여있다. 아빠는 친척들이 다 모인 거실에서 그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부의금이라는 빚의 주인들이 하나씩 자기 봉투를 찾아 품에 안고 돌아갔다.
형제자매와 친척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집엔 이제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이 남았다. 이제야 선명하게 느껴질 할아버지의 빈 자리가 어떤 크기일지 잘 모르겠다. 장례식장에 앉아 엄마와 나는 자주 덧없다 말했다. 그래도 허무해하지는 말자고, 욕심을 덜어내고 살자고 했다. 할아버지가 두고 간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쌓인다. 아빠는 전화를 돌려주지도 못하고, 무시하지도 못하고 휴대폰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아빠가 많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할아버지는 좋은 곳으로 가셨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