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y Vaccinated! 화이자 백신 2차 접종을 저번 주 월요일(9월 6일)에 마쳤다. 원래 2주 더 빠르게 맞는 계획이었는데 정부 지침이 1차 접종 이후 4주 간격으로 2차 접종을 맞는 것에서, 6주로 간격을 늘리면서 예상보다 접종 완료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2차까지 백신 접종을 완료해서 일단 정말정말 후련하다.
7월 26일 화이자 백신 1차 접종을 하고 나서 갑자기 생리가 시작됐다. 그때는 운이 나쁘게 생리 타이밍이 맞았나 보다 했다. 원래도 생리 불순이 심하기 때문에 백신 때문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 얘기는 화이자와 생리 중에 누가 더 강할까? 에서 썼는데, 이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고(약 15만 명이 읽었다), 백신 접종과 동시에 생리를 시작했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이후 백신으로 인한 생리 불순, 과다출혈, 부정출혈 등이 백신 부작용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라는 걸 알았다. 8월 11일, CDC(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는 이상 생리 반응을 잠재적인 백신 부작용으로 인정했다.
9월 6일 화이자 2차 백신을 맞고서도 아주 소량의 부정출혈이 시작됐다. 백신을 맞고 3일 차가 되면 건강 상태를 기록하라는 문자가 한 통 오는데, 거기에 아직 생리 이상을 보고하는 란이 없었다. 텍스트를 적는 란에 부정 출혈을 적어서 제출했다. 이런 데이터들이 모여 백신과 생리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2차 접종 3일 차부터는 생리를 시작했다. 1차 접종을 했을 때 생리를 했으니까, 6주가 조금 넘은 시점에 생리를 시작한 것도 이상했지만 출혈의 양도 기존보다 많았다. 체감상으로는 약 1.5배에서 2배 정도 많았던 것 같다. 피가 밑에서 줄줄 빠져나가는 느낌이란 저혈압일 때 피가 온 몸에서 싹 빠져 나가는 소름끼치는 느낌과도 비슷한데(실제로 생리와 저혈압이 같이 오기도 하고), 내가 파스스스 공중에서 흩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낭떠러지에서 누가 밀어 추락하는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인 것 같기도 하다. 20년 가까이 생리를 한 중견 생리인에게도 쉽지 않은 쎄함이었다. 내 생리통에는 소염진통제밖에 듣지 않아서 접종 3일 차 4일 차에 각각 탁센 이부프로펜을 2알씩 총 4알을 먹었다.
화이자 1차 접종 이후 나는 거의 2주간 일상생활을 못했다. 아프거나 열이 있는 건 아닌데 잠이 너무 와서 하루에도 거의 16시간~18시간을 잔 것 같다. 깨어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피로감이 있을 수 있다고는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자도 자도 잠이 쏟아져서 놀라웠다. 프리랜서라서 다행이었다. 주변에 물어보니 나처럼 극심한 피로감을 느낀 사람은 또 없는 것 같았는데, 아버지께 전화를 하니 아스트라제네카 1차 접종 이후에 2주간 잠이 쏟아졌다고 하셨다. 부작용도 부모 자식 간에 닮을 수 있는 것일까!
화이자 2차 접종 이후에는 접종 당일, 다음날을 제외하고 1차 접종만큼 피로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1차 접종에는 접종을 맞은 팔에 근육통도 일주일간은 있었는데 2차 접종에는 이틀 조금 아프더니 사라졌다. 2차 접종이 1차 접종보다 훨씬 힘들다는 얘기들이 많아서 걱정을 했는데 기우였다.
친구와 집 근처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한강에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집에만 있을 때에는 컨디션이 괜찮은 줄 알았다. 한 시간 정도 땡볕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평소 같으면 진작에 진정이 됐어야 하는데 여전히 심장이 빠르게 뛴다. 백신을 맞고 이 주간은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이제야 떠오른다. 앞으로 일주일간은 조심해야겠다. 다짐.
백신을 맞으면 확실히 조금 불편한 부분은 있지만, 게임으로 치면 투명 방패를 하나 얻은 것 같다. 2차 접종 이전에는 친구와 일대일로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약속을 죄다 거절했는데 오늘은 한적한 카페에서 잠깐 커피를 함께 마시고 산책도 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프리랜서이고 평소에 건강하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백신을 맞고, 마음 편하게 백신 부작용도 견딜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 백신 부작용을 느긋하게 바라볼 수 없었거나, 평소에 몸이 안좋았다면, 또는 백신을 맞을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아서 접종을 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잠시 상상해보았다. 나에게 선택권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백신 선택권이라는 것은 단순히 선택을 할 권리가 아니라, 특권인지도 모른다. 모든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감각과 마찬가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