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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선미 Jul 29. 2021

화이자와 생리중에 누가 더 강할까?

화이자 백신 1차 접종

! 백신은 개인마다 접종 후 증상이나 부작용이 다르다고 합니다. 아주아주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는게 좋겠습니다.


이번주 월요일 잔여백신 예약에 성공했다. 병원에 전화 하니까 정해진 시간이 따로 없으니 최대한 빨리 오라고 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요 선생님... 일단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국민비서(?)가 주신 1차 접종 안내 메시지


백신을 맞는건 금방이었다. 병원에 나 말고 접종을 하러 온 사람이 한 명 더 있었고 소아과라서 아기 환자들이 몇 명 더 있었다.


주사를 맞기 전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오늘 컨디션은 괜찮은지 물어보고 이후에 별다른 안내사항은 없었다. 질병관리청에서 만든 <코로나19 예방접종 후 안내> 한 장을 주며 15분만 병원에서 대기하고 가라는 얘기만 했다. 병원에 왔는데 수납이 없으니 신기했다. 이 모든걸 공짜로 해준다니 놀라웠다. 병원 옆 작은 약국에서 타이레놀을 두 곽 사들고 다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여기까진 순조로웠다.


집에 돌아오니 생리가 시작됐다. 평생을 생리불순으로 살았는데 이놈은 이렇게 불시에 찾아오는게 문제다. 몇 달 째 소식이 없어서 '그래... 이렇게 쉰 김에 그냥 평생 쉬어라'하고 신경을 끄고 살았는데 왜 하필이면 백신 접종을 하니까 '아 이제 슬슬 움직여볼까' 하면서 워밍업을 시작하시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르겠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렇게 화이자 접종 1일차. 화이자와 생리 호르몬의 동거가 시작됐다.


[생리와 화이자의 대결에 점수는 승리시 1점, 무승부시 양쪽 모두 점수 변화 없음, 압승일 경우 최대 2점을 가져갈 수 있다]


Fight!




접종 1일차 (7월 26일 월요일)


하루종일 누워서 웹툰을 봤다. 접종을 맞기 전에 읽던 책이 있어서 이어서 읽고 싶었는데 도저히 집중력이 나오지 않았다. 리디에 많은 돈을 상납했다. 주사를 맞은 왼쪽팔이 뻐근하고 좀 피곤했지만 열이 나거나 몸살기운이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다. 생리를 시작한지 10년이 훌쩍 넘었으니 이제는 나를 중견 생리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텐데, 중견 생리인쯤 되면 아프기 전에 진통제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타이레놀을 삼키면서 잠깐 걱정했다. 내 생리통에는 소염진통제인 이부프로펜이 직빵인데 백신 통증에는 '가급적 염증 제거 효과가 없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의약품을 복용 바랍니다.'라고 안내문에 써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생리 증후군과 백신 이상반응이 동시에 오면 어떻게 하지? 이부프로펜을 먹어야 하나? 타이레놀을 먹어야 하나? 아니 애초에 생리통과 백신 이상반응을 구분할 수 있나? 게다가 나의 생리님은 10년 이상 경력의 중견 생리인도 가끔 통증으로 기절시키는(비유의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기절한다) 굉장한 분이라 정말로 불안했다.


다행히 접종 1일차에 생리는 '안녕 이제 곧 시작할거야'하고 경고만 하고 본격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접종 1일차. Round 1. 화이자 승]

[현재 스코어 화이자 1 : 생리 0]




접종 2일차 (7월 27일 화요일)


왼쪽팔이 더 아파졌고 1일차보다 더 피곤했다. 피곤이 생리 때문이었는지 백신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하루에 몇 시간 깨어있지 못하고 거의 잠만 잤다.


[접종 2일차. Round 1. 화이자 vs 생리 무승부]

[현재 스코어 화이자 1 : 생리 0]


잠을 잘 잤는지 깨어있는 시간에는 컨디션이 반짝반짝했다. 일을 몰아서 해치웠다. 올림픽을 보면 활력이 돌았다. 화이자와 생리, 그리고 올림픽이 대결을 한다면 오늘은 무조건 올림픽의 승리다.


[접종 2일차. Round 2. 올림픽 승]

[현재 스코어 화이자 1 : 생리 0 : 올림픽 1]




접종 3일차 (7월 28일 수요일)


왼쪽팔이 더욱 더 아파졌는데 피곤은 덜했다. 생리가 잠깐 멈췄는데 그 덕이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피곤은 화이자가 아니라 생리가 원인이었던 모양이다. 회사원들이 백신 휴가를 이틀쯤 받는다길래 3일차에는 원래 컨디션으로 돌아오는 줄 알았는데, 2일차보다는 좀 낫다 싶었지만 에너지가 100% 회복된 건 아니었다. 아니 이런거라면 휴가를 일주일은 줘야되는거 아니야? 이번주 일정을 싹 비워놓은 프리랜서면서 마치 회사원인것 마냥 분노했다. 이렇게 피곤한데 회사에 가서 업무를 보고 회의를 한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누굴 죽이지 않고 퇴근한다면 다행이다.


[접종 3일차. Round 1. 생리의 작전상 후퇴. 화이자 승]

[현재 스코어 화이자 2 : 생리 0 : 올림픽 1]


올림픽이 재밌었다. 올림픽 주간에 백신을 맞은 건 의도하진 않았지만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덕분에 집에서 쉬면서 심심할 날이 없다. 각국의 여자 배구팬들이 김희진 선수에게 청첩장을 써서 그 청첩장이 바다를 건너 도쿄까지 레드카펫처럼 펼쳐지는 상상을 했다.





접종 4일차 (7월 29일 목요일)


접종 4일차 목요일. 이 글을 쓰고 있다. 왼쪽팔의 뻐근함은 많이 없어졌다. 생리가 본격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잇몸과 목이 부은 것으로 온 몸이 염증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몸이 뻥 뚫린 것처럼 허한데 허리가 아프고 속이 메스껍다. 전형적인 생리증후군이다. 소염진통제를 한 알 먹어도 될까? 안내문에 '해열,진통제 복용에 제한은 없으나, 가급적 염증 제거 효과가 없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의약품을 복용 바랍니다.'라고 쓰여있는게 마음에 걸린다. 이걸 못 본 척 하고 한 알 먹고 싶은데 외면하기엔 안내문을 너무 잘 보이는 자리에 놨다. 아직 복부 통증이 심각하지 않고 잇몸이 부어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니까 조금만 더 참아봐야겠다. 하지만 배가 아플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중견 생리인은 망설이지 않고 고용량 이부프로펜을 삼켜버릴 것이다. 멀리 있는 코로나의 고통보다 당장 해일처럼 몰려올 복부 진통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접종 4일차. Round 1. 생리의 압승]

[현재 스코어 화이자 2 : 생리 2 : 올림픽 1]


캡틴 김연경의 팀이 도미니카공화국에 세트 스코어 3-2 승리했다. 화이자고 생리고  중요하지 않다. 뭐가 중헌디. 배구가 중허다.


[접종 4일차. Round 2. 올림픽의 압승]

[현재 스코어 화이자 2 : 생리 2 : 올림픽 3]




접종 4일차 2 라운드까지 화이자와 생리가 치열한 접전을 벌였고 최종 승자는 올림픽이다. 화이자 2차 접종이 한 달 뒤니까 아마도 두 번의 접종을 생리와 함께 보내게 될 것 같다. 문자 그대로 '혈투'를 벌이고 있으니 항체도 잘 생겼으면 좋겠다.


생리인들, 그리고 백신접종인들 모두 다 살아남읍시다. 도쿄에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도 코로나와 생리 그리고 폭염으로부터 안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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