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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 Nov 21. 2018

한국어 수업: 김밥 만들기

돌돌돌~


"우리 다음 시간엔 한 번 김치를 만들어 볼까요?"


겁없이 한국어 수업 시간에 그런 말이 나와 버렸다. 재료 손질을 어떻게 해서 들고 올 것이며 달랑 김치만 먹을 수도 없고, 갈땐 소분해서 들고 가야 하는건가? 어떤 대책도 없이 말이다.


다행히 김치를 만들어서 그것만 먹을 순 없잖아? 라는 매우 당연한 질문이 김치 만들기 수업을 하자고 결정을 하기 전에 생각이 났다. 물론...요리 수업 자체는 결정된 이후였다.


김치는 배추를 절여서 양념이랑 가져가면 같이 무치면 간단할 일이었다. 그런데 갓 담은 김치에 먹을 음식은 역시 수육인 것 같은데, 다양한 종교와 채식주의자가 있는 수업에서 같이 만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요리 수업을 하는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난 주말에 마음을 굳혔다.

김밥!! 그래, 김밥이닷!



월요일에 장 봐둔 재료들, 손질은 수업이 있는 화요일 오전이다. 수업이 점심 무렵이니까 닉을 시어머니께서 유치원에 바래다 주면서 동시에 노아까지 데려가 주시는 바람에...따로 묻지도 않았는데 어쩜 이렇게 손발이 척척 맞을수가. 안 그래도 손도 느린 편인데 참 잘 되었다 싶었다.



재료들은 식혀서 담고, 밥을 많이 지으려고 하면 늘 힘이 딸려 설익은 밥을 내어 놓는 밥솥 녀석 때문에 밥은 두 번 하고, 수업을 하는 곳이 탕비실이기 때문에 접시도 뭣도 다 일단 내가 가져가고, 한인마트에 갈 시간이 없으므로 MIGROS에서 파는 김과 참기름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김이 일본식 겉표지를 입고 있어서 좀 안타까웠지만 원산지가 한국산이므로 그걸로 어필했다. 다음에는 좀 미리 결정을 해서 겉표지도 모두 한글이 써진 걸로 준비해서 읽는 재미를 더해 줘야겠다. 그럴려고 강의 첫 한 달을 우리가 한글 떼느라 고생했지 않았는가. 일주일에 딱 한 번, 한 시간 반 수업이라 가르치면 잊어버리고, 고객 미팅 있어서 수업 못 오고, 일 많아서 못 오고..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 배운 한글인가. 자주 새로운 것들을 읽게 해주어야 한다.


탕비실에서 제일 큰 탁자를 차지하고 벌어진 수업


한국 회사라서 중간 중간 한국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이전에 이미 한국어 수업을 들은 적 있는 사람이 와서 한국어 한마디를 하기도 하고, 와, 지금 뭐하는 거야?하고 물어보는 사람들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시끌벅적하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오늘 배운 단어는...


김, 밥, 김밥, 젓가락, 접시, 그릇, 칼, 도마, 당근, 계란, 오이, 시금치, 햄, 소세지, 도시락 등이었고 이 단어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처음에 숙지했다가 천천히 떼고 각자 자신의 김밥을 만들때, 상대방에게 ○○씨, 당근 좀 주세요. 그리고 다른 상대방에게 ◇◇씨, 오이 좀 주세요. 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해 갔다.


각자 기호대로 처음으로 만들어보는 김밥. 모양도 맛도 저마다 달랐지만 다들 즐거워 했다. 무엇보다 가르치는 내가 즐거워서 좋았다.


준비는 손이 많이 갔으나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수업이었다.


다음에는 뭐할까..하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아무튼 뭔가 배울 때는 실제로 해보면서 배우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수업 준비가 더 힘들어 져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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