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돌돌~
"우리 다음 시간엔 한 번 김치를 만들어 볼까요?"
겁없이 한국어 수업 시간에 그런 말이 나와 버렸다. 재료 손질을 어떻게 해서 들고 올 것이며 달랑 김치만 먹을 수도 없고, 갈땐 소분해서 들고 가야 하는건가? 어떤 대책도 없이 말이다.
다행히 김치를 만들어서 그것만 먹을 순 없잖아? 라는 매우 당연한 질문이 김치 만들기 수업을 하자고 결정을 하기 전에 생각이 났다. 물론...요리 수업 자체는 결정된 이후였다.
김치는 배추를 절여서 양념이랑 가져가면 같이 무치면 간단할 일이었다. 그런데 갓 담은 김치에 먹을 음식은 역시 수육인 것 같은데, 다양한 종교와 채식주의자가 있는 수업에서 같이 만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요리 수업을 하는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난 주말에 마음을 굳혔다.
월요일에 장 봐둔 재료들, 손질은 수업이 있는 화요일 오전이다. 수업이 점심 무렵이니까 닉을 시어머니께서 유치원에 바래다 주면서 동시에 노아까지 데려가 주시는 바람에...따로 묻지도 않았는데 어쩜 이렇게 손발이 척척 맞을수가. 안 그래도 손도 느린 편인데 참 잘 되었다 싶었다.
재료들은 식혀서 담고, 밥을 많이 지으려고 하면 늘 힘이 딸려 설익은 밥을 내어 놓는 밥솥 녀석 때문에 밥은 두 번 하고, 수업을 하는 곳이 탕비실이기 때문에 접시도 뭣도 다 일단 내가 가져가고, 한인마트에 갈 시간이 없으므로 MIGROS에서 파는 김과 참기름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김이 일본식 겉표지를 입고 있어서 좀 안타까웠지만 원산지가 한국산이므로 그걸로 어필했다. 다음에는 좀 미리 결정을 해서 겉표지도 모두 한글이 써진 걸로 준비해서 읽는 재미를 더해 줘야겠다. 그럴려고 강의 첫 한 달을 우리가 한글 떼느라 고생했지 않았는가. 일주일에 딱 한 번, 한 시간 반 수업이라 가르치면 잊어버리고, 고객 미팅 있어서 수업 못 오고, 일 많아서 못 오고..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 배운 한글인가. 자주 새로운 것들을 읽게 해주어야 한다.
한국 회사라서 중간 중간 한국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이전에 이미 한국어 수업을 들은 적 있는 사람이 와서 한국어 한마디를 하기도 하고, 와, 지금 뭐하는 거야?하고 물어보는 사람들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시끌벅적하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오늘 배운 단어는...
김, 밥, 김밥, 젓가락, 접시, 그릇, 칼, 도마, 당근, 계란, 오이, 시금치, 햄, 소세지, 도시락 등이었고 이 단어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처음에 숙지했다가 천천히 떼고 각자 자신의 김밥을 만들때, 상대방에게 ○○씨, 당근 좀 주세요. 그리고 다른 상대방에게 ◇◇씨, 오이 좀 주세요. 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해 갔다.
각자 기호대로 처음으로 만들어보는 김밥. 모양도 맛도 저마다 달랐지만 다들 즐거워 했다. 무엇보다 가르치는 내가 즐거워서 좋았다.
다음에는 뭐할까..하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아무튼 뭔가 배울 때는 실제로 해보면서 배우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수업 준비가 더 힘들어 져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