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사람들 (1)
"스위스 사람들은 차갑지. 별로 정이 없잖아? 폐쇄적이기도 하고."
스위스에서 만난 외국인 지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원래 살가운 편인 성격이 아닌 나로써는 딱히 와닿지 않는 편이지만, 이런 말을 듣고나면 정말 그런가? 하고 주변의 스위스인들을 좀 더 관심을 갖고 관찰하게 된다.
또한 그런 말을 한 당사자도 다시 한 번 들여다 보게 된다. 당신은 어떻길래 다른 사람을 차갑고 폐쇄적으로 느끼는가요? 스스로는 따뜻하고 모든 사람에게 열린 마음으로 시간을 할애하는가요? 물론 그런 질문을 직접적으로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이 지독하며 동시에 아름다운 개인주의.
이것이 난 그 차가움과 폐쇄성의 정체라고 본다. 물론 스위스 사람들은 저렇게 일정하게 떨어진 간격으로 버스를 기다리진 않으며, 기다리는 와중에 간혹 모르는 사람과 잡담을 나누기도 한다. 아이들이 있으면 "아이고, 애가 귀엽네요. 너 몇 살이니?"라던가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일본? 중국?" 이런 식의 잡담들. 한국이냐고 물어본 사람은 두 명 뿐이었는데, 그 중 하나는 한참 강남 스타일이 히트하던 때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고 조금씩 하는 한국어 교사 일을 빼곤 사회적으로 누군가와 접촉하는 일이 적기 때문에 7년의 스위스 생활에도 불구, 한국식의 "내 친구"라고 부를만한 스위스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교우관계도 특별히 활발한 사람들 이외에는 별다를 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내 경험은 독일어권 스위스에 한한 것이고 프랑스어권이나 이탈리아어권 사람은 매우 다를 거라 확신한다. 적은 언어권이지만 로만슈어가 모국어인 사람 또한 다른 성향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로만슈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운동을 잘하고 귀여운 변호사이다. 수줍음이 많으나 배우는 걸 좋아하고 수더분하나 똑똑한 매력 넘치는 사람이다.
스위스 사람들끼리도 저 쪽 사람들은 '별나다'라거나 '재미없다' 혹은 '비효율적이다'등의 개별적인 평은 하는 편이고, 언어가 다른만큼 문화도 다르기 때문에 에둘러 '이곳 사람들은 이러하다네'라고 말할 수가 없다. 어떤 경향은 있을테지만.
예를 들어 내가 사는 칸톤 아르가우는 관광지가 별로 없고 산업단지가 발달했다. 그래서 멋지고 아름다운 이미지도 아니고, 왜인지 사람들도 불친절하다고 생각한다. 애시당초 온갖 사투리 포함 독일어가 그렇게 친절하게 들리는 언어가 아니긴 하다.
아무튼 퇴근하면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릴없이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단 총알같이 집으로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고민이 있으면 다른 사람보단 가족들과 나누거나 혼자 끙끙대는 편인 이 사람들이 과연 불친절하다라는 범주에 함부로 담을 수 있는건지 의문이다.
기차나 계단 앞에서 유모차를 어쩌지 못해 쩔쩔매고 있으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와서 도와주고, 아이들이 울고 있으면 혹시나 엄마가 주변에 없거나 잃어버린 건 아닌지 와서 물어보고 도와주려 하는 모습들,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면 웃는 모습, 조금이라고 부딪히면 깜짝 놀라며 미안해 하는 모습들은 내가 닮고 싶어하는 그들의 모습이다.
어쩌면 누군가가 차갑다-함은 외국인으로서 타지에서 살 때, 그들과 딱히 공유할 것이 없는 입장에서 당연히 느껴지는 외로움의 또다른 얼굴인 것 같다.
아! 물론 어딜가나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은 건재하다. 그들은 이곳에서나 또 어디에서나 열일 중이고, 자신들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하면 타인의 멀쩡한 일상으로 보낼까, 어떻게 기분에 똥칠을 좀 해줄까 궁리중이거나- 아님 어딘가가 부서져 버린 그 자신도 불쌍한 사람일 것이다. 특히 자신이 고장났다는 걸 모르면 모를수록 또라이 짓은 진상일테고, 그런 사람들은 어느 나라의 일반적인 사람들 성향에 집어 넣어선 안된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좋은 점은, 그런 사람들이 집에서 잘 안 나온다는 것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