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엄마의 마음수련
만으로 두 살 하고도 2개월을 찍은 노아는 요즘 부쩍 무언가를 원할 때 신경질과 눈물이 폭주한다. 한국어든 독일어든 자기가 필요한 단어는 여기 저기서 그러모아 의사 표현하기에 바쁘다.
이 당연한 발달과정은 보통 미운 세 살로 표현되며 주양육자를 극한의 스트레스로 내몬다. 거기다 한 이틀 전부터 코감기의 기류가 감지된 바. 감기가 유행중인가보더라. 유치원 앞에서 닉 픽업 하려고 기다리는데 다른 집 동생들도 모두 유모차에 잔뜩 지친 얼굴로 실려(?)오더라.
이렇게 노아의 감정이 널을 뛰는 상태에서 아침엔 ALDI에서 시어머니와 장을 보고, 점심엔 닉 데리러 같이 유치원에 가고, 남편이 재택 근무 날이니 집에서 점심해서 다같이 먹은 뒤 뭐 잠시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을 새도 없이 태권도를 하러 Spreitenbach(쉬프라이텐바흐)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에서 정신 팔릴 게 필요해서 골판지 카드만한 크기로 자른 것과 색연필을 가져갔다. 내가 원했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한 2분 정도? 그 이후엔 색연필로 골판지에 구멍을 뚫는 것에 20분의 시간을 보내던 두 총각.
뭐든 어떠랴. 애들이 재미있었으면 된거지...
아무튼 모든 게 한 동네에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셔틀버스가 와 주는 시스템도 없는지라 원하는 게 있으면 발품을 팔아야 하는 현실이다. 게다가 자차가 없으니 더욱 불편하다. 기차 시간 버스 시간을 맞추어 헐레벌떡 뛰어다니는 일상은 두번의 임신 이후에도 내 몸무게를 거의 결혼 전과 같이 만들었다.(아, 물론 무게는 같아도 형태는 다른 슬픈 현실.)
태권도를 하는 닉의 모습을 보는 건 즐겁다. 문제는 현재 의욕만큼은 만렙을 찍은 노아가... 자꾸 같이 트레이닝을 하려고 한다는 것. 못하게 하면 악쓰고 난리를 치고, 한번은 사범님의 배려로 같이 트레이닝을 했는데 그 날은 첫날이라 얌전히 하더니만 다음 날부터는 깽판을 치더라.
거기다가 사범님의 새로운 벗. 멍멍이(암컷. 낯을 많이 가리고 아직 성견이 아님. 먹을 것을 좋아함. 이름은 못 물어봤음. 미모 출중함. 호기심 대장.)랑 노아가 죽이 맞아 둘이 난리를 치고 사방을 뛰어다녀서 세상에... 태권도 수련은 커녕 애들이 다 웃고 까불고 난리가 나서, 자길 같이 못 하게 한다고 엉엉 우는 노아를 들쳐메고 나왔었다.
그 뒤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노아가 엄청난 속력으로 강아지에게 가서 사람먹는 비스킷을 먹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이쯤 되니 사범님도 기가 막혀서 막 웃었다. 다시 노아를 들쳐메고 나오는 동안 언뜻 뒤 돌아보니 촉촉하게 젖은 강아지의 감사한 눈빛. 그래도 녀석아, 그거 네 몸에 안 좋다....
그 날 이후론 다른 아이들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수련 시간 동안 아예 노아랑 밖에 나와있기로 했다. 45분이다보니 나왔다 들어갔다만 해도 시간은 참 잘도 가더라.
그리고...사실 불평을 많이 하지만, 만 두 살짜리의 노아가 형의 스케쥴을 다 따라다니다 보니 피곤하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많이 배우고 보고 경험할 테이지만, 나른하고 편안한 하루는 노아의 일상에서 거리가 먼 일 같아서 조금 미안해진다.
때론 이 잠없는 녀석이 달게 자는 아침잠을 깨워야 하고, 느긋하게 뭔가 먹을 시간이 없어서 기차에서 빵이나 요거트, 과일 등을 먹으며 때우기도 하고, 간식으로 감자튀김을 먹어서 열량을 채우는 이 별 일도 없이 바쁜 일상에 함께 하는 둘째가 좀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하다.
노아뿐만이랴. 피곤하거나 좀 아픈 날도 가능한한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이 엄마도 태권도 수련처럼, 좀 오버해서 가끔은 폭포수 아래에 앉아 물을 맞으며 수련하는 기분으로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아이들 건사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내 감정을 잘 살펴 너무 지쳐서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리거나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니... 거기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는 이렇게 시간 나면 쓰는 글들, 좋은 사람들과의 소통, 좋은 날씨, 가끔 기분나서 한 요리가 대박났을 때, 맛있는 달다구리들, 엄마와 시댁 식구들의 격려, 아이들의 이쁜 짓, 저녁에 맥주 한 잔, 조금씩 다시 참여할 수 있는 예배, 길가다 우연히 만나는 친절한 사람들... 그런 것들이 일상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 같다.
물론 글을 이렇게 쓰고 앉아있는 오늘은 태권도를 제끼고 장도 보지않고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었다.
아! 얼마만의 게으름인가... 그 덕분에 내일부터는 다시 일상에 복귀해서 열심히 살 힘이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