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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Sep 26. 2022

가방 싸기

나와라, 대나무 헬리콥터!

처음에 상윤이랑 무작정 버스를 탔을 때는 휴대폰, 지갑이 전부였다. 어차피 멀리 떠날 것도 아니고 웬만한 건 편의점에서 구매하면 되니깐 그렇게 출발해도 별 무리는 없었다. 그러나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물건을 바로바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역시 불편한 일이었다. 또 빈손으로 출발해도 아이랑 다니다 보면 돌아올 땐 뭐 하나라도 손에 들려있기 일쑤였다. 그렇게 하나씩 챙기다 보니 늘어난 짐.


나는 저렴하고 가볍고 부피가 큰 백팩부터 구매했다. 오, 백팩 하나 샀다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나는 이제부터 배낭여행자다. 준비물이 가득한 백팩을 짊어지는 순간, 동네 공원을 나가도 배낭여행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백팩을 열면 도라에몽의 주머니처럼 '짜잔! 대나무 헬리콥터!' 하고 뭐든지 나올 같은 든든함. 나는 이 만능 가방을 열어 하나씩 꺼내며 보여주며 자랑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다.


여벌 옷 풀세트와 수건, 휴대가 편한 모자, 얇은 외투

상윤이랑 다닐 때는 계절을 불문하고 여벌 옷은 필수다. 언제, 어디서 물을 만날지 모르고, 물을 만나면 입수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여벌 옷은 속옷에 양말까지 풀세트로 준비해야 하고 수건도 필수다. 예전에 상윤이가 순식간에 입수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적이 있었다. 여벌 옷은 챙겼는데 하필 수건을 안 챙겼던지라 어쩌나 고민하다가, 다행히 상우가 젖지 않아 상우의 여벌 바지로 머리랑 몸을 닦아준 적이 있었다. 이후 수건도 무조건 챙긴다.


이번에 바닥분수를 나면서 느낀 점이 있는데 EVA 소재의 신발을 여벌로 챙겨두면 무겁지도 않고 신발이 젖어도 괜찮을 것 같다.


산책을 다닐 때 모자는 영 귀찮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머리에 땀이 차서 덥기도 하고 답답한 데다 모자의 캡이 시야 각을 좁혀 멋진 풍경을 눈에 담아낼 수도 없다. 그러나 또 너무 눈이 부신 날이나 뜨거운 날에는 모자 생각이 간절하다. 산책 코스를 걷다 보면 경치는 좋은데 나무 그늘이 없어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 때가 있으니 항상 휴대하기 편한 모자를 챙겨 가는 게 좋다.


항상 아이 것만 챙겨갔는데 다음에는 내 것도 챙겨야겠다. 눈이 부셔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상윤이와 함께 걷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연 많은 모자(母子)처럼 보였을 것 같다. 상윤이가 장애인인걸 알면 더 그렇게 보이겠다...


온도 차이에 따라 껴입을 수 있는 외투도 필수다. 두꺼운 것 한 벌보다 차라리 가볍고 얇은 걸로 두 벌 챙기는 게 좋은 것 같다. 나의 가방 싸기 포인트는 '질 좋은 거 필요 없고, 싸고 막쓸 수 있는 가볍고 휴대성이 좋은걸 다 때려 넣자.'이다.

다이소 1인용 돗자리와 초경량 접이식 휴대용 의자 2개

상우랑 둘이 어린이대공원 상상나라에 가겠다고 아침부터 나섰는데 참새 방앗간 지나치지 못하듯, 맥도날드 들리고 다이소 쇼핑하느라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3시간이나 걸린 적이 있다. 그때 쇼핑한 1인용 돗자리는 거의 데일리 아이템으로 사용 중이다. 큰 돗자리는 펼치기도 부담스럽고 돗자리에 앉으려면 신발도 벗어야 되는데 아이들의 경우 한자리에 앉아서 신선놀음을 즐겨하는 종자들이 아닌 게 함정이다. 처음에는 신발을 구겨 신고 왔다 갔다 거리다가 어느샌가 그마저도 귀찮아 신발을 신지 않고 돗자리 밖을 돌아다니고 있게 된다. 나 또한 그렇다.


1인용 돗자리는 벤치나 데크, 계단 같은 곳에 깔고 앉으면 그만이라 아주 간편하고 깔끔하게 소풍을 즐길 수 있다. 1인용 돗자리를 처음 펼쳤을 때 상우는 매우 실망해서 조금 울었다. 다른 사람들의 거대한 돗자리랑 비교가 됐던 것. 그러나 간식을 다 먹고 자리를 정리할 때 내게 말했다.


"엄마 그런데 써보니깐 이것도 정말 좋은 거 같아요. 펴는 것도 쉽고 접는 것도 쉽고 신발도 안 벗어도 되잖아요."


그런데 그 돗자리마저도 깔 곳이 없다면, 휘리릭 나와라! 트랜스포메이션 체어!! 다행히 나는 키가 158센티미터에 표준체중의 여성이므로 요정도의 의자에도 아주 큰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 다리가 아파 잠시 쉬어갈 때 너무 좋은 아이템이다. 듣자 하니 에버랜드 줄 서기 필수품이라고 한다.


여분의 마스크, 롤팩, 오며 가며 가볍게 읽을 책 1권, 휴대용 장바구니

상윤이랑 명동 가는 버스를 탔는데 버스에 타고나서야 상윤이가 마스크를 끼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적이 있다. 어쩐지 상윤이 사진을 찍는데 잘생겨 보이더라. 출발할 때는 애들이나 나나 들뜬 마음에 이렇게 뭔가 하나씩 놓치곤 한다.


명동에 도착해 버스에서 호다닥 내린 후, 편의점을 찾아 상윤이 보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선 나 혼자 들어가 아동용 마스크를 사고 나왔다.


마스크를 착용한 상윤이와 편의점에 들어가 간식을 샀는데 봉투값 50원이 아까워서 봉투를 사지 않고 그냥 내 조그만 손가방에 넣었다. 하필 산 간식과 음료수가 2+1, 1+1 제품들이라 가방이 가득 차 터질 것 같았고 가방을 들고 다니는 내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때부터 항상 휴대용 장바구니를 가방에 넣고 다닌다. 지금은 큰 백팩을 메고 다니므로 웬만한 간식은 가방에 다 들어가고도 남지만, 기념품이나 특산물(주로 빵)을 획득할 때면 촤라락 펼치는 효자 템이다. 아이들이랑 나가면 두 손 가볍게 나가도 무겁게 들어오는 것이 불문율이다.


내 휴대폰은 약 3년째 쓰고 있는데 한 번도 AS를 받은 적이 없다. 남편이 말하기를,

"AS를 안 받았다는 게 고장이 안 났다는 말은 아니잖아!"

그렇지. 나의 갤럭시는 액정이 깨진 지 반년 정도 됐고 세탁기에 제대로 침수도 돼서 한동안은 카메라에 습기가 차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연식이 좀 된 녀석이라 배터리 소모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종종 15%에서 갑자기 0%가 될 때도 있다.


나는 방향치에 길치라 지도 어플이 없으면 길을 찾아갈 수가 없는 데다 카메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루 종일 휴대폰으로만 사진을 찍는다. 게다가 포켓몬고라는 게임은 모험모드로 켜놓고 있다. 따라서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전원이 꺼져 휴대폰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자주 있다. 자주 있지만 개의치 않는 것이 나의 성격이고 개의치 않으므로 변화도 없다. 보조배터리를 챙겨가면 될 일 아닌가 싶지만 보조배터리는 거추장스럽고 무겁다는 핑계로 거부 중이다. 아무래도 '그냥 될 대로 돼라지.'의 나의 감성과 맞지 않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 있는 것 같다.


상윤이랑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갔을 때는 집에서 출발했을 때 이미 배터리가 이십몇 퍼센트 정도여서 아무것도 안 하고 길 찾고 사진만 찍다가 중간에 꺼져버렸다. 이럴 때 필요한 것! 가볍고 술술 읽히는 책 한 권이다. 카페에서 아이에게 휴대폰을 쥐어줬을 때나, 버스 타고 집에 올 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꿀잼이다. 마치 시험기간에 보는 뉴스와 같이 재미있다. 집에서 TV 보고 휴대폰을 마음껏 할 수 있을 때 보는 책이랑은 그 재미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결핍의 중요성을 또 한 번 느낀다.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들과 물까지 챙기면 가방 싸기는 끝. 이렇게 나는 출발할 준비가 되었고 가방은 좀 무거워졌지만 걱정을 집에 덜어놓고 나와서 마음은 가벼워졌다. 아마 가방은 앞으로 점점 무거워질 것이고 그러다 필요 없다며 다시 빼놓는 것들도 생기겠지만, 가방을 싸고 때마다 아이들과 보낼 시간을 상상하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힘들지 않아요?"

"고생한다."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위해'인지, '아이와 함께'인지. 누군가는 이렇게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걸어 다니는 게 노동이고 고생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내가 안타까워 보이기도, 대단해 보이기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게는 매주 아이와 어디를 갈까 생각하고 가방을 싸는 게 즐거움이고 설렘이다. 이 아이들 덕분에 이런 여행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 언젠가 아이들이 이 여행에 싫증을 느껴 그만두는 날이 올 테지만 아직은 조금만 더 엄마랑 같이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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