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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영 Sep 30. 2022

워밍 업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코스 요약 : 집 - 병점역 - 수원역 - 북스리브로 - 서동탄역 - 집


"버스 타고 마트 가!"


마을버스를 타고 키즈카페에 원정 간 이후 상윤이는 버스를 타자고 외쳐댔다. 그리고 여기에 '마트 가!'가 붙게 되었다. 취미 치고는 요란하고 거창하게 폴댄스를 하다가 갈비뼈 두 개가 부러져 거동이 불편한 나를 돌봐 주신다고 친정엄마가 제주도에서 올라오셔서 아이들을 봐주셨는데, 어디 마땅히 갈 데가 없으니 매일 동네 마트를 돌아가며 순방했다. 상윤이는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타요' 캐릭터 장난감들을 한참 구경하다 오곤 했는데 그 일상이 나름 재미가 있었던 모양이다. 상윤이가 좋아하는 두 가지. 버스 타기와 마트 가기. 아니, 세 가지. 버스 타기와 마트 가기와 타요.


일요일 아침부터 집에 있기 답답했는지 '버스 타고 마트 가!'를 쉴 새 없이 외치며 들들 볶아대는 아드님 등쌀에 못 이겨 아직 갈비뼈가 채 붙지도 않았는데, 나는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어디 가게?"

남편이 물었다.

"몰라, 일단 버스 타고 어디든 가보려고."


목적지는 필요 없다. 그저 이 아이와 적당히 시간을 보낼 거리가 필요했을 뿐이다. 하지만 동기가 폼나지 않으니 흥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멋들어지게 '모험'이라는 말로 포장을 해보았다. 흥이 난다. '버스 타러 간다.'는 말에 상윤이는, '산책 가자.'는 말에 신이 난 강아지가 문 앞에서 폴짝폴짝 뛰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처럼, 마스크를 얼른 쓰고 호다닥 신발을 신고선 좁은 현관을 빙글빙글 돌며 현관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뛰쳐나가는 상윤이는 얼마나 날쌘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다. 사거리 횡단보도. 아마 횡단보도 앞 언덕 위에서 상윤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상윤아, 우리 버스 타고 지하철 타러 갈까?"

"네!"

버스를 탄다는데 어디든 좋지. 상윤이는 탈것이면 대체로 좋아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초조해져 버스가 올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데, 의외로 상윤이는 버스정류장 벤치에 얌전히 앉아 의연하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몇 번 버스를 탈건지 말해주고 확인하듯 물어보고, 맞다고 대답해주고, 또 확인하듯 물어보고...  그렇게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어른 한 명, 어린이 한 명이요."

무상교통 대상자지만 아직 카드가 없는 상황. 여전히 이 아이의 요금은 내야 되는 것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은근 버스 기사님이 '아이 몇 살이에요? 아이 요금은 안내도 돼요.'라고 말해주길 바라며 버스에 올랐지만 얄짤없다. 어쩌면 차라리 상우였다면 '아이가 몇 살이에요?' 물어보시고 안내도 된다고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상윤이는 이제 누가 봐도 어린이 요금을 내야 할 법한 모습을 갖췄구나.'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금 꼬불꼬불 해졌다.


아이가 빨리 크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이의 키는 컸으면 좋겠다고 온갖 키 크는 좋은 음식과 영양제를 갖다 바치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나 역시 상우가 조금만 천천히 커주길 바라는 한편, 키는 쑥쑥 자라길 바란다. 반면, 발달장애 부모들은 그렇지가 않다. 아이의 키와 덩치가 크면 약점이 된다. 남들 눈에 한 살이라도 더 어리게 보이고 싶은 마음. 상윤이의 앳된 얼굴과 작은 체구가 어쩌면 지금껏 내가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혜택이었을지 모른다. 그 혜택이 점점 줄어들고, 나는 '과연 앞으로도 이 아이와 당당히 다닐 수 있을까?' 불안해짐을 느낀다.


둘이 나란히 같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함은 럭키다. 왠지 자폐성 장애인은 어떻게 가든 옆에 누가 앉든 관심 없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모르는 사람보다는 익숙한 친한 사람 옆에 앉아 가고 싶은 마음은 자폐성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마찬가지다. 혼자 앉는 자리에 엄마와 앞뒤로 앉았을 때, 상윤이는 앉고 엄마는 옆에 서 있을 때, 둘이 앉는 자리에 모르는 사람과 앉게 되었을 때, 엄마랑 같이 앉게 되었을 때, 상윤이의 기분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상윤이의 콧노래를 들을 수 있는 건 상윤이가 나를 의식하지 않아도 절로 느껴지는 거리에 내가 있을 때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병점역까지 걸어가는 거리는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된다. 병점역은 내가 살고 있는 곳과 가깝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나는 그 분위기가 낯설다. 나는 낯설고 다른 것에 긴장한다. 다른 피부색과 다른 언어에 나는 차별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에도 자꾸 신경이 쓰이고 근육이 경직된다. 아마 오늘 스쳐 지나간, 상윤이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어떤 의도 없이 그저 익숙하지 않은 다른 존재가 시선을 잡아끄는 것뿐이다. 나는 그 사람들의 시선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또 긴장이 될 테지만 그들의 의도 없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이 모험을 통해.


지하철 개찰구를 상윤이와 마치 한 몸처럼 통과했다. 이러면 환승은 어떻게 되는 걸까?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뭐, 알아서 계산하겠지. 요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스크린도어. 스크린도어를 발명하시고 통용하게 허가해주시고 설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절을 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전철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옥 같았을 것 같다. 이 아이가 고개를 내밀까, 뛰어내릴까 노심초사하면서 눈은 상윤이를 쫓느라 정신없이 바빴을 것이고, 꽉 잡은 상윤이의 손과 나의 손은 땀이 차 찐득찐득 해졌을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애초에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았을 것 같다.


상윤아, 우리 버스 타고 지하철 타러 가볼까?


전철이라 불러야 되는지 지하철이라 불러야 되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상윤이가 지하철이라고 하는 코레일 1호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전세 냈다. 사람이 없었다. 상윤이는 시내버스를 오랜만에 타봤을 때처럼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건 누구나 두렵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더 두렵고 거부감이 드는 것 같다. 한 번. 딱 한 번만 눈 딱 감고 해 보면 되는데, 시작이 쉽지 않다. 상윤이가 나이를 먹어 더 어려워지기 전에 그 딱 한 번을 많이 경험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나의 사명인 것 같다. 지금부터 내가 더 힘내는 수밖에!!


오랜만에 타보는 전철은 익숙하지 않아 긴장이 된다. 익숙해지도록 엄마랑 더 많이 경험을 쌓아가자.

"다 왔다. 내리자!"

병점역에서 수원역까지는 고작 두 정거장. 짧은 지하철 체험을 마치고 수원역에 도착했다. 사람이 바글바글 하다. 버스는 내리면 끝이지만 전철은 내리는 순간부터 다시 탈출의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인파에 휩쓸려 나의 목적지를 망각해서는 안되고, 출구 번호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며, 에스컬레이터는 오른쪽에 한 줄로 서야 한다. '얼음!' 그리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땡!'. 다시 개찰구를 상윤이랑 발맞춰 한 몸처럼 통과했을 때야 비로소 '도착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여기가 엄마랑 아빠랑 처음 만났던 곳이야."

상우랑 왔다면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거 같은데 상윤이랑은 그냥 거쳐가기 바쁘다. 옷이고 신발이고 화장품이고 관심 없지만 디저트에는 환장하는 나다. 식품관 구경을 매우 좋아하는데 상윤이랑 오면 구경도 사치다. 안녕... 타르트...  맛있겠네... 와플. 다음엔 꼭 만나자! 삼송 옥수수빵! 잘 지내고 있어야 돼. 모두들... 빠른 걸음으로 쇼케이스를 훑어보며 마음속으로 꺼이꺼이 울었더란다.


오늘의 목적지는 여기로 하자!

쇼핑몰을 거쳐 서점에 들어갔다.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용산이나 서울역까지 갔다가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갈까 고민하다가 이미 출발부터 많이 늦은 시각이었던 터라 엄두가 안나 마음을 접었다. 수원역 북스리브로를 오늘의 목적지로 하자.


서점에는 상윤이가 좋아하는 타요 관련한 책도 많지만 책인 척 위장한 장난감들도 많다. 제주도에 가면 아이들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꼭 서점에 데리고 가 책을 맘껏 사주신다. 장난감이 아닌 책을 사게 하려는 깊은 마음을 몰라주고 아이들은 꼭 장난감이 들어있는 책을 골라와 '이거 사달라'고 한다. 오늘도 마트에서 파는 타요 캐릭터 장난감 하나와 작은 하드북 한 권이 세트로 구성된 걸 들고 와서는 사달라고 내밀었다. 출판사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런 끼워 팔 기는 좀 너무 하지 않나.'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 


책에 장난감을 끼워 파는 게 아니라 장난감에 책을 끼워 판 거 같은 느낌이다. 서점에서 책의 위치가 이 정도라니 책의 자존심이 꽤 상할 것 같다. '지금은 장난감에 딸려 팔리는 쭈구리 신세지만 한 번 읽다 보면 재미있어서 나중에는 장난감이 없어도 나를 찾게 되는 날이 올 거야.'라고 희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책에게 미안하지만, 아이는 아마 포장이 뜯기는 순간 장난감만 쏙 빼가고 책은 휙 던져둔 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깐 내 말은...

"장난감이 들어있는 건 안돼! 오늘은 책만 살 거야."


아쉬운 듯 사뿐히 책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도 계속 두고 온 '포코(타요 만화에 나오는 포크레인)'에 미련이 남은 상윤이는 마치 포코와 안 보이는 고무줄이 연결된 것처럼 멀어졌다가도 가까워지고 떠났다가도 돌아오고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상윤이가 고른 스티커 모자이크 북 2권과 자동차 책 한 권, 상우 선물로 포켓몬스터 활동북을 사고서야 서점을 나올 수 있었다.


다시 수원역으로 왔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엔 왠지 여기서 여행이 끝이 나 버린 것 같아 아쉬워 돌아가는 노선을 조금 변경해 보기로 했다. 이번엔 병점역이 아니라 서동탄역에서 내려서 버스 타고 가보자. 수원역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본 수입과자를 샀더니 이건 뭐 수원에 온 게 아니라 일본에 온 것 같은 느낌. 나의 느낌은 마치 해외다.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온 일본. 도쿄보다는 후쿠오카 쪽.


개찰구를 다시 한 몸처럼 발맞춰 통과했다. 돌아가는 지하철은 사람이 많아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어차피 세 정거장만 가면 되니깐 그냥 서서 가자. 약주를 거하게 한 잔 하신 '부자(?)' 할아버지가 상윤이에게 인사 잘했다고 천 원을 주셨다. 몇 번이나 거절해도 받으라고 들이미셨다. '무슨 일이지?' 지하철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불편했다. 이 불편함을 끝내고 싶어 "감사합니다."하고 받고서는 상윤이 주머니에 넣었다. '제가 받은 거 아니고 얘가 받은 거예요.' 마음속으로 외쳤다. 


불편한 사람과 마주 했을 때는 가까운 거리도 엄청 멀게 느껴진다. 자리를 피하기엔 곧 내릴 테고 애매하다. 돈까지 받았다. 천 원의 대가는 혹독하다. 둘 중 하나가 내릴 때까지 이 분의 말동무를 해 드려야 한다. 상윤이랑 오순도순 가고 싶은 여정에 불청객이 꼈다. 돈이 무척 많은데 쓸 데도 없다고 내게 원하는 만큼 돈을 줄 테니 말해 보라고 한다. "저는 괜찮아요. 안 주셔도 돼요." 했는데 오천만 원도 줄 수 있다며 기회를 놓친 거라고 미련하다 하셨다. 천 원의 대가가 이런데 오천만 원을 받는 대가는 어떨지... 천안까지 가신다는 할아버지는 병점에서 내리시고 그제야 고작 한 정거장이지만 상윤이와 조용하게 풍경도 보며 갈 수 있었다.


 서동탄역의 풍경은 병점역과 또 다르다. 사람이 없고 조용하다.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냈다는 서동탄역은 이름에 동탄이 들어가 있지만 지리상 오산시다. 동탄은 화성시인데. 아무것도 없는 휑한 위치에 덩그러니 역만 있다. 한적하다. 마치 전에 살던 '오송역' 같다. 그래서인지 낯설기보다 익숙함에 편한 느낌이 든다. 


내리자마자 집에 가는 버스가 와있어서 냉큼 탔는데 여기가 회차지점이라 출발까지 20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상윤이와 버스에 앉아서 서점에서 구매한 책을 꺼내 보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처음 가보는 길을 굽이굽이 돌자 나는 또 제대로 탄 건가 불안해서 고개를 들어 노선도를 쳐다보고 쳐다보고 했다. 아는 동네가 나오면서부터 마음이 편안해지고 상윤이에게 '여기는 어디야. 다음은 어디래.' 이야기를 해주었다. 매일 가는 상윤이 센터 앞을 지날 때부터 상윤이는 엉덩이가 들썩들썩 신이 나서 박수를 쳤다. 다 와간다. 끝이 보인다. 하차벨을 누르고 내릴 준비를 하고 아파트 앞에서 내렸다. 초록불이 켜졌고 상윤이는 또 '뛰지 말라'는 엄마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집을 향해 뛰어갔다. 그렇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마 집 현관에 들어서면 상윤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버스 타고 여행 워밍 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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