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내가 본 옛날 영화와 이후의 느낌들

by 언덕에서

1. 절망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158999.jpg

휴일 IPTV를 통해 15년 전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었다. 1995년 출장 때 L.A에서 첫 개봉하는 영화를 보았는데 지금까지도 스토리를 대충 기억하고 있다. 꽤 괜찮았던 영화 같은데 한글 자막으로 된 영화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는 마이크 피기스 감독이 우리에게 '케서방'으로 알려진 니콜라스 케이지와 최근 '미드 CSI 라스베이거스'에서 과학수사대 요원으로 출연했던 엘리자베스 슈를 동원하여 만든 영화인데 특별히 잘됐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으나 그저 외롭고 쓸쓸한 기분만을 오래 남기는 독특한 영화였다. 개봉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반응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는데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주제인 인간의 고독과 죽음을 다루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알코올 중독자와 창녀- 더 이상 빼앗을 것도 빼앗길 것도 없는 절망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사랑"이라는 광고 문구는 아주 적절한 표현으로 여겨졌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남자와 여자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개성적이었다. 남자는 아주 중증의 알코올 중독자이고 여자는 저급의 창녀이다.


41970.jpg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몸에서 술기운이 떨어지면 손을 떨 정도를 지나 술에 취했을 때보다도 더 의식 없는 행동을 할 정도로 폐인이 된, 한 때는 잘 나가던 극작가였던 알코올 중독자 벤은 이제껏 살아왔던 도시를 떠나 라스베이거스로 간다. 새로운 일을 찾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껏 술을 마시다가 죽기 위해서이다.

화면을 통해서 보아도 라스베이거스는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잘 어울릴 것 같아 보이는 도시이다.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는 물론 운전을 하면서까지 술병을 입에 가져가도 쉽게 시비하는 사람이 없다. 반쯤 썩어있는 도시……. 휘황하게 명멸하는 네온 불빛에서마저도 상한 고기 냄새가 날 것 같은 밤거리를 비틀거리면서 걷다가 남자는 한 여자를 만난다. 거리에서 손님을 끌고 있는, 그러나 육감적이기보다는 세상의 때와 피곤의 그늘로 오히려 지적인 분위기조차 풍기는 미인이다. 거리의 여자 세라는 눈에 초점을 잃은 남자가 말을 걸어도 여자는 처음에는 무시해 버린다. 주정뱅이의 실속 없는 주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줄 테니까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해도 남자의 위아래만 훑어볼 뿐 본체만체 대꾸도 않던 여자는 다른 마땅한 손님이 걸리지 않자 나중엔 못마땅해하면서도 따라간다. 남자가 기거하고 있는 모텔의 방으로 따라 들어간 여자는 옷을 벗으며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묻는다. 입으로 해주기를 원하느냐, 엎드려 엉덩이를 대주기를 원하느냐…….

하지만 남자는 허연 웃음을 히죽 거리고 웃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섹스가 아니라 그저 대화일 뿐이니 그냥 함께 있자고만 하면서 정해진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 그것이 괜한 장난이 아니라 진심임을 알게 된 여자는 태도가 달라진다. 흔한 손님이 아님은 물론 쉽게 파악이 안 되는 무슨 사연이 있는 남자라고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여자가 돈을 받은 데에 대한 답례를 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구인지 술 때문인지 남자는 남자로서 성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남자는 안타까워하지 않고 흡족해한다. 여자의 그런 몸짓과 체온만으로도 순간적인 구원을 얻는 듯 앞으로 또 만나자고 말한다.

몇 차례 더 만나면서 여자도 남자로부터 점차 휴식 비슷한 걸 느낀다. 돈을 받지 않고 함께 있는 게 좋을 지경에까지 이른다. 자기에게 매음을 강요하며 그 돈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걸핏하면 발길질을 하고 엉덩이에 칼자국까지 내는 포주의 학대가 심하면 심할수록 더욱 그 남자와 같이 있고 싶어 한다. 포주가 마피아에게 쫓겨 자취를 감춘 후엔 남자로 하여금 자기 방으로 옮겨와 함께 지내자고 할 정도로 집착한다. 승용차며 시계를 팔아 이제 며칠 동안 사 마실 술값밖에 없는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손님들에게 몸을 팔고 들어와 남자의 시중을 들면서 그것을 귀찮아하지 않고 즐거워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남자로서의 성기능까지도 상실한 남자를 사랑하며 여자는 처음으로 삶의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며칠 후엔 죽기로 작정한 알코올 중독자인 남자는 아무런 의식 없이 행동한다. 술에 취해 여자가 세 들어 사는 집에서 주인집의 기물을 부숴 여자를 난처하게 만드는가 하면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다가 만난 다른 여자를 방으로 데려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성행위 비슷한 장난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여자로 하여금 배반감을 느끼게 만든다. 화가 난 여자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물건을 내던지며 남자를 내쫓는다. 내쫓겨가면서도 남자는 여전히 별 의식이 없다. 민망해하거나 불쾌해하는 기색도 없이 쫓는 대로 그냥 쫓겨난다. 그러나 쫓아냈지만 여자는 당연히 좋은 기분일 수 없다. 아무렇지 않게 남자를 만나기 전처럼 살아가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밖을 헤매어도 집에 돌아와도 남자의 모습이 눈에 밟히어 견디기가 힘이 든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불량한 젊은이들에게 끌려가 돈도 받지 못하고 온몸에 피멍이 드는 혹독한 윤간을 당하고 나서는 더더욱 견디지 못한다. 견디다 견디지 못하고 끝내는 쫓아냈던 그 남자를 스스로 찾아 헤맨다.

미친 듯이 헤매다 드디어 남자를 찾아낸 여자는 남자를 안으며 흐느낀다. 술 냄새밖에, 죽음의 냄새밖에 아무것도 안겨줄 것 같지 않은 그 남자의 체온에 감격스러워 여자는 안은 채 떨어질 줄 모른다. 언젠가 술을 끊어보도록 병원에 가자는 말을 건넸을 때 제발 그 말만은 말아달라고 말한 적이 있어서 인지 남자가 술에 젖어 금방 숨을 거둘 것 같은데도 여자는 병원에 옮길 생각도 하지 않고 남자의 전부를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숨을 거둘 때까지 기다린다. 여기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159002.jpg

인상적인 첫 장면은 이렇다. 영화의 영상마다 순간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인 스팅이 부르는 ‘에인절 아이즈(Angel Eyes)’가 아무런 영상도 나오지 않는 검은 화면에서 처연히 흘러나온다. 노래가 계속 흐르고 화면이 밝아지더니 알코올 중독자 벤이 등장했다. 그는 마트 주류 판매대 앞을 지나며 배경 음악과 어울리지 않게 휘파람을 불고 있다.

영화에서는 ‘현실에 꼭 있을 법한’ 인물들이 나와 영화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현실적인’ 장면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심각한 알코올 중독으로 비틀거리며 술값을 빌리러 다니는 벤, 반짝거리는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몸을 파는 세라. 꾸밈없는 장면들과 멋지지 않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현실은 정교한 묘사가 보태진 채 영화에 그대로 담겨 있다.


41972.jpg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결심한 알코올 중독자 벤과 창녀 세라가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펼치는 짧은 사랑을 그린 한여름 밤의 꿈같은 영화다. 벤과 세라, 그리고 라스베이거스는 패배자, 천한 직업을 가진 여자, 그리고 타락한 유흥의 장소를 상징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이들 모두가 냉소적인 영상으로 다가온다. 이런 대사가 그랬다.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느껴져. 내가 항상 취해 있어서일까. 왜 진작 당신하고 못 만났을까. 사랑이 짧으면 슬픔은 길어진다."


41969.jpg

무언가 낯선 풍경들과 한여름 바닷가 한편에서 들릴 법한 재즈음악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일탈처럼 영화에 빠져들게 했다. 수영장 물속 키스신과 영화 속에서 흘러나왔던 스팅의 노래 '에인절 아이즈'는 시간을 시각과 청각을 흔들리게 함은 물론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처연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술로서 자살을 택한 남자의 마지막 숨을 지켜줌으로써 여자는 극치의 사랑을 몸소 호흡한 것일까? 22년의 세월이라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데 2018년의 감각으로도 별로 촌스럽지 않은 영화라고 마무리를 해두는 것이 좋겠다.




2. 너무 잔인한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


76366.jpg

<악마를 보았다>를 관람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살인마 유영철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이는데, 스릴이 있고 박진감이 있는 '킬링 타임(killing time)'용 영화로만 적절해 보인다. 내 생각으로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흥행작이 될 것 같다. 왜? 잔인하니까.... 보는 내내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에 혐오감 이외는 다른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며칠이 지난 후에도 잔인하고 소름 끼치는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식욕 조차 없어짐을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런 영화가 히트를 치면 '모방범죄'가 발생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과연 이런 영화를 만들어도 될까?'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차원은 많이 다르겠지만, 이 영화를 본 김에 생각나는 훨씬 끔찍하고 잔인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IPTV의 보급으로 이제는 굳이 영화관이나 비디오 가게에 가지 않더라도 HD 화면의 실감 나는 영상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2004년 개봉되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던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그리스도의 수난)」는 당시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영화관을 나와버린 기억이 난다. 이제 시간이 좀 흘렀으므로 남긴 숙제를 마치는 기분으로 다시 영화를 보았다. 오늘은 이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하도록 하겠다. 이 영화는 아람어와 라틴어를 살려내었으며 4 복음서의 철저한 고증이 대단하여 역사적인 사실에 부합한다는 평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 머릿속에는 십자가형의 잔혹함만 남았다. 2004년 제작된 이 영화는 멜 깁슨식 폭력에 파묻혀 종교영화로는 실패작이란 느낌이 들었다.


20188.jpg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그리스도의 수난)」는 당시 개봉 전부터 떠들썩한 소문을 몰고 왔다. 반유태주의 색채가 짙다, 유태인을 향한 증오의 영화다, 영화를 보던 미국 여성이 심장마비로 죽었다, 사실적인 표현이 감동적이다, 유혈 낭자한 장면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찬사와 악평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하여간 제작자, 감독인 멜 깁슨은 돈방석에 올라앉았다. 어찌 됐든 이 작품은 종교영화임이 분명하고,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기독교와 관련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THE PASSION OF THE CHRIST」는 복음서가 전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受難)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신약 성서는 모두 27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맨 앞의 네 권(마태오(마태)·마르코(마가)·누가·요한복음)을 복음서라고 부른다. 복음서에는 탄생부터 부활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그려져 있다. 그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이하 '예수'로 칭함)가 체포된 후 십자가형을 받는 12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수난사화(受難史話)」라 부른다.

당시 이스라엘 땅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제도권 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를 죽여야만 할 이유는 넘치고도 남았다. 가까운 예로 설명하자면 유교를 신봉하던 서인 노론세력이 자신들과 다른 학문을 믿는 천주교를 박해한 조선 말기와 별다르지 않다. 역사는 늘 반복하지 않는가? 예수의 파격적인 말과 행동에서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제도권 종교인들은 예수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유태교 종교지도자들은 민중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유태인의 왕(王)」을 처벌하지 않으면 로마 황제에 대한 불충이라는 식으로 빌라도를 협박했다. 그들은 상당한 정치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예수는 종교 범으로 판결을 받았는데, 실제로는 정치범으로 사형을 당했던 것이다. 정치범은 통상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20388.jpg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마지막 만찬 후에 겟세마니 동산에 올라간 예수는 그곳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다. 그러나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에게 배신당해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끌려온다.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성 모독죄로 단죄하고,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한다.
팔레스타인의 로마 제독, 빌라도는 바리새인들의 주장을 들으며 그의 앞에 끌려온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한다. 자신이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깨달은 빌라도는 이 문제를 헤롯왕에게 의논한다. 헤롯왕은 빌라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돌려보낸다. 이에 빌라도가 군중들에게 그리스도와 죄수 바라바 중 누구를 석방할지 결정하도록 하자, 군중들은 바라바에게 자유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형을 주장한다.
로마 병사들로부터 처참하게 채찍질을 당한 그리스도는 빌라도 앞에 다시 끌려오게 된다. 빌라도는 만신창이가 된 예수 그리스도를 군중에게 보이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묻지만 피에 굶주린 군중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딜레마에 빠진 빌라도는 군중들이 원하는 대로 처리하도록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거리를 지나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메고 가도록 명령을 받는다. 골고다 언덕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고 그곳에서 마지막 유혹에 직면한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어머니인 마리아를 바라보며 그녀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마지막 한 마디를 하고 죽는다. “다 이루었도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복음서의 서술은 각기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매우 사실적이다. 로마의 사형 방법은 목을 자르는 참수형, 굶주린 맹수들의 먹이로 넘겨주는 맹수형, 그리고 십자가형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십자가형은 극형 중의 극형으로, 우리 식으로 따지면 부관참시나 능지처참에 해당할 법한 형벌이다.

문헌에 의하면 십자가형이 언도되면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고 사형수는 먼저 모진 태형을 당한 뒤에, 십자가의 횡목(橫木)을 직접 지고 사형장까지 운반해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태형 때문에 약해질 대로 약해져 횡목을 운반할 만한 힘이 없을 때는 아무나 강제로 뽑아 대신 횡목을 나르게 할 수 있었다.


149582.jpg

사형장에는 이미 수직 목(垂直木)이 세워져 있고 횡목을 날라 온 죄수는 손목과 발등에 못이 박혀 십자가에 달리게 된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못을 박는 이유는 손바닥이 몸무게를 못 이겨 찢어지는 바람에 사형수가 십자가에서 곤두박질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이는 세계를 정복한 로마군대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개발된 KNOW -HOW가 있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물론, 십자가에 달린 죄수는 물론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 몰약 (미라를 만들 때 쓰인 방부제)을 탄 포도주를 해면(스펀지)에 적셔 마시게 하는데, 약간의 마취 효과가 있었다고 문헌은 전한다.

십자가 죄수는 손목에 못을 박았으니 손목 동맥 파열에 따른 과다출혈로 숨을 거둔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대부분은 질식으로 숨졌다고 한다. 몸이 아래로 처지면 횡격막이 눌려 숨을 못 쉬게 되고, 못으로 고정된 발의 힘을 빌려 몸을 추스르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다가, 마침내 몸을 추스를 기운이 빠지면 호흡곤란으로 죽는 것이다. 그래도 죽지 않을 경우는 완전히 숨을 거두게 하기 위해 다리를 꺾어 버렸다. 발에 힘을 못 주게 하려는 조치이다. 잔인하다.


149599.jpg

형리로 선발된 군인들은 사형수의 죽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었으므로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가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보았다. 만일 이때 조그만 신음 소리라도 들렸다면 여지없이 마지막 일격(다리 꺾기)을 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라 창에 찔린 곳에서 물과 피만 흘러나올 뿐이었다(요한 19, 32-34). 사람이 죽으면 피에서 물이 분리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십자가에 달린 죄수는 보통 하루 정도 버틴다고 한다. 역사적인 기록에 따르면 예수와 얼추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스파르타쿠스(기원전 73년에 검투사의 반란을 일으켰다)가 십자가에서 사흘을 버텼다고 한다. 말하자면 십자가에 달려 오래 버티기 부문의 기록 보유자인 셈이다. 스파르타쿠스 경우에는 검투사의 다부진 체력이 한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미처 세 시간을 못 버텼는데 아마 3년의 공생애(共生涯) 동안 영양 공급이 부실했기에 그만큼 몸이 약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로마제국에 반기를 든 정치범은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십자가 처형은 그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공포감을 심어 주었기에 로마에 반기를 들 생각을 아예 못 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바로 멜 깁슨이 영화에서 강력하게 부각하였고 승부수로 삼은 부분이다. 히틀러가 유태인 대량학살로 반유태주의 의식을 나타내었다면 멜 깁슨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유태주의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멜깁슨.jpg

「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보면서 멜 깁슨이 이제까지 출연했던 영화들을 떠올려 보았다. 「매드 맥스」 시리즈, 「리셀 웨폰」 시리즈, 「브레이브 하트」, 「페트리어트」 등 대체로 완성도 높은 폭력성이 돋보이는 영화들이었다.

그런 경향을 미루어 볼 때 멜 깁슨이 예수가 당한 폭행을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이해가 됐다. 물론 예수에게는 동정심을 갖게 만들려고 한 의도는 짐작된다. 피에 굶주린 악당들로 표현된 로마의 형리들이나 예수의 죽음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유태교 지도자들의 행태는 그리스도교를 믿는 관객들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멜 깁슨은 영화를 만들면서 상당 수준의 자료를 수집하여 고증을 거친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예수의 모국어인 아람어(히브리어의 사투리)와 로마의 행정용어인 라틴어를 사용하여 영화의 사실감을 높였다. 또한 십자가형의 과정에서도 사실감이 충분히 드러났다. 문헌에 의하면 로마의 형리들은 채찍 끝에 동물의 뼈나 납을 달아 사람의 몸에 채찍이 잘 감기도록 만들었는데 그 채찍질이 얼마나 모질었는지 열 대 정도 때리면 피부가 벗겨져 뼈가 드러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예수가 당했던 채찍질은 실제로도 매우 끔찍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장면이 여과 없이 나타나 영화를 보는 내내 직접 당하는 것 이상의 고통을 느껴야 했다.

멜 깁슨은 <요한복음>을 텍스트로 시나리오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복음서(1952년 미국의 개정 표준판(Revised Standard Version))를 자세하게 읽어보았다.

Then Pilate took Jesus and scourged him. And the soldiers plaited a crown of thorns, and put it on his head, and arrayed him in a purple robe; they came up to him, saying, "Hail, King of the Jews!" and struck him with their hands. (John 19, 1 ~ 3)

매질을 하고 면류관을 씌웠다는 표현이 나온다. 영화에서 '피범벅'이 되도록 구타당하는 끔찍한 장면이 계속되는 것은 흥행을 노린 멜 깁슨의 연출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토록 끔찍하게 당했다면(물론 그럴 수도 있다) 복음서의 저자들도 스승이 당한 엄청난 고통만큼 상세하게 묘사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다룬 영화는 많았다. 대충 떠오르는 작품만 해도 「왕중왕」(1961), 「위대한 생애」(1965), 「나자렛 예수」(1977), 「예수의 마지막 유혹」(1988)이 있는데 모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이전의 영화들은 대체로 예수의 일생을 다루면서 그의 가르침이나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예수의 삶과 의미에 관한 깊은 성찰보다는 십자가형의 사실감을 표현하는 데만 치중한 덕분에 종교영화로서의 품위는 현격히 감소되었다. 영화가 끝난 후 남은 것은 오직 끔찍한 고통을 겪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연민의 감정뿐이었다. 하지만 고통 자체에 사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진정한 의미는 그 고통을 통해 창출되는 가치- <부활>에 있지 않을까? 그 진정한 가치는 보이지 않고 끔찍한 고통만 묘사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영화였다.






3. 행복한 시간은 결국 지나가고야 마는가? <봄날은 간다>


3025.jpg

영화는 치매에 걸린 상우의 할머니를 자전거를 탄 상우가 따라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상우 할머니가 간 곳은 기차역인데 그녀는 하염없이 플랫폼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상우의 가족들은 저마다 사랑에 대한 상흔(혹은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즐거웠던 한 때를 기억하며 수색역에서 무작정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치매 걸린 할머니(백성희),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아비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아버지(박인환), 그리고 지금은 이혼(?)하여 오빠 집에서 더부살이하는 고모(신신애)는 모두 생의 봄날을 보내버린 인생들이지만, 현재의 처지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불만을 갖지는 않는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겨울을 보낸 상우(유지태)는 우연한 기회에 이혼녀 은수(이영애)를 만나면서 생의 봄날을 만끽하게 된다.


상우와 은수가 대밭에서 대나무 소리를 들으려 귀를 기울이는 장면은 아름답다. 은수와 상우가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장면, 이어지는 장면인 은수의 할머니 인터뷰 장면에서 할머니의 연기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처연하다. 무엇을 암시할까?


3027.jpg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는 지방 라디오 방송의 아나운서 겸 프로듀서인 은수와 함께 자신이 맡은 소리 채집 여행을 떠난다. 잔잔하고 여운 깊은 자연의 소리를 녹음기에 담으면서 둘은 서로에게 끌리며 점차 깊은 사랑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혼 경험을 가진 연상의 여성 은수는 상우가 불쑥 꺼낸 결혼 얘기를 부담스러워한다. 어느 날 술을 많이 마시고 찾아와서 재롱을 부리는 상우에 대한 은수의 대답은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이다. 다음날 아침 은수는 타고 가던 버스에서 내려서 되돌아와서 상우에게 헤어지자고 말하고, 상우는 내가 잘하겠다고 답한다. 하지만 은수는 다시 헤어지자고 요구하고 이에 대한 상우의 답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인 "너 나 사랑하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이다.

이미 이혼의 경험이 있는 은수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원하는 여자처럼 보인다. 은수는 또 다른 남자인 음악평론가와 밀월 드라이브 여행을 하는 등 상우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이영애라는 배우를 싫어하게 된 것은 이 영화에서 받은 팜므파탈 femme fatale 이미지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은수는 상우로부터 조금씩 뒷걸음치고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사무실에서 종이에 손을 벤 은수는 자기도 모르게 심장 위로 손을 들어 올리는데 그러한 자신의 행동에서 상우를 떠올린다.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은수는 화분을 내밀며 할머니께 갖다 드리라고 한다. 벚꽃이 핀 거리에서 은수는 상우에게 팔짱을 끼며 "우리, 같이 있을까?"라고 묻지만 상우는 말없이 화분을 돌려주며 떠난다. 굳이 대답하지도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상우 또한 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별을 받아들인 것이다.


51963.jpg

은수가 떠난 후 상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지만 뒤돌아서 인사하는 은수에게 손을 흔들며 힘들지만 태연하게 이별을 받아들인다. 상우는 집에 와서 녹음한 은수의 노래를 듣는다. 이 배경음악이 깔린 채로 상우가 갈대밭의 바람 소리를 녹음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봄날은 간다〉는 열병처럼 찾아온 사랑이 서서히 식어가는 과정을 허진호 감독 특유의 절제된 연출력을 동원하여 잔잔하게 그려 나간 작품이다. 더디고 나른한 흐름에서 오는 무미건조함이 오히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옛사랑의 상처를 후벼 파는 부분은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유지태와 이영애의 건조한 듯 자연스러운 연기도 좋지만 자연을 담은 영상미와 음향 또한 빼어나다.

이 영화는 두드러지는 갈등 상황이나 긴장보다는 절제되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상황의 연속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몇몇 대사의 간결하고도 효과적인 의미 전달과 서정적인 화면에서의 배경음악 처리가 인상 깊다. 카메라의 앵글도 과함과 부족함 없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해주고 있다. 주연인 유지태와 이영애 또한 영화에 맞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할 말 다 하는 표정과 톤이 올라가지 않고 길지 않으면서도 의미가 명확한 대사를 잘 소화하고 있다. 특히 유지태가 맡은 상우 역은 실연당한 남자를 너무나도 잘 나타내고 있다는 평이 많았다. 이 영화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전형적인 과정을 조용하고 잔잔한 톤으로 표현한다.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 바탕에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감독과 각본의 능력이라고 보인다. 제목인 <봄날은 간다>」는 행복한 시간인 '봄날'은 결국 지나간다는 것으로 주제를 잘 압축하면서 영화의 분위기와 잘 맞는 제목 선택으로 보인다. 주제가인 자우림 김윤아의 노래도 영화에 매우 잘 어울리는 수작이다.

이 영화는 제 1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1998) : 최우수작품상, 제 22회 청룡영화상 (2001) : 최우수작품상, 제 14회 도쿄 국제영화제 (2001) : 예술공로상, 제 6회 부산국제영화제 (2001) : 국제 영화평론가협회상, 제 2회 부산 영화평론가협회상 (2001) : 최우수작품상, 감독상(허진호), 여우주연상(이영애), 제 38회 백상 예술대상 (2002) : 영화 감독상(허진호) 등을 수상했다.






4. 인간 내부의 허위의식 <나에게 오라>


79497.jpg

이 영화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송기원의 자전적 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1996년 김영빈이 감독한 이 영화는 원작 이야기의 전체를 살리지 못하고 일부분만 발췌하여 영화를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소설 속의 진지함을 유지시키며 흥행에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흥행에도 실패하고 작품성도 인정받지 못한 그저 그런 영화로 남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뇌리에 계속 기억되었던 것은 1970년대 지방 소도시에 살고 있던 민초들의 생활과 의식상태를 가감 없이 나타내고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끝없는 방황이 현재의 성숙한 자아형성에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하는 작가의 암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301897.jpg

어쨌든 영화 줄거리를 보도록 하자.
어깨에 잔뜩 힘 준 낙지머리 춘근(박상민)이 고향인 전남 보성의 장터에 나타난다. 2년 만의 귀향이다. 또래들 중 처음으로 감옥에 갔다 와 전과자가 된 그는 잔뜩 우쭐해져 있다. 애초부터 그와 공부는 상극이었다. 국민학교 때 이미 가방끈을 풀어버린 후론 줄곧 깡패/양아치로 굴렀었다. 출감한 그는 이제는 정말 뭔가 큰일을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귀향 후 제일 먼저 들른 역전 여관에서 그를 '낙지 대가리'이라고 부르는 묘한 창녀 옥희를 만나 몸을 섞고 기둥서방이 되어 살림을 차린다.

그날 밤. 모표 없는 모자에 명찰 없는 교복차림의 윤호(김정현) 역시 막차로 장터에 도착한다. 읍내에선 가장 공부 잘하던 모범생으로 타지인 광주에 유학 간 예비 판검사 기대주였다. 그런 그가 사생아라는 굴레에 정신의 발목이 잡힌 후 좌절과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한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스스로 선택한 타락의 길이 장터로의 귀향과 깡패 춘근의 똘마니 역할을 자청한 일이다. (이 부분은 소설가 송기원의 청년시절과 일치한다) 이때부터 윤호와 춘근의 타락한 쓰레기 인생이 시작된다. 윤호는 스스로의 내면에 도사린 파괴본능과 광기를 자각하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몸을 던져버린다. 춘근과 윤호는 이유 없이 무고한 중. 고등학생들을 폭행하여 돈을 갈취하는가 하면 설날에 귀향하는 가난한 여공을 강간하는 등 극단적인 패륜행위를 계속한다. 그런 윤호를 때론 마뜩잖게 또 때론 신통하게 생각하면서 춘근은 타락의 앞잡이 노릇을 주도한다. 이 과정에서 둘 사이엔 피보다 진한 우정과 의리가 쌓여간다.

한편, 마을에서 입신출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갑 수라는 인물이 정치의 뜻을 품고 고향으로 금의환향한다. 그러나 갑수의 이면에 감추어진 추악한 비리를 알고 있는 장돌뱅이들의 우상인 깡패 우두머리 정석(최민수)은 그 가면을 벗기기 위해 깡패조직 간의 일전을 불사할 준비를 하고, 이에 갑수는 뱀눈이라는 거물 깡패 해결사를 고용해 반격의 채비를 갖춘다. 드디어 결전의 날은 다가오고 정석을 따르는 춘근과 윤호는 마을의 정월대보름날 산야를 불태우며 벌이는 처절한 집단 결투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지만 칼부림을 당한채 큰 부상을 입고 대패를 당하고 만다. 여기에서 영화는 끝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윤호의 독백이 나온다. "그때 열아홉 무렵은 얼마나 넘기 힘든 강이었던가 하지만 돌이켜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이었나?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아련하고 눈부신 그 어린 날……."


33922.jpg

이 영화는 1970년대 전라남도 보성 장터를 배경으로 건달과 창녀 등 밑바닥 인생들 속에서 열아홉을 보낸 작가 자신을 통해 이야기하는 젊은 날의 고뇌와 타락 그리고 사랑과 좌절을 겪는 장돌뱅이의 인생유전 이야기다.

평론가와 관객 양측으로부터 나름대로 찬사를 받았던 김영빈 감독이 현시대와는 다른 시대적 배경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과 동시대를 살았던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과 함께 그가 지금껏 작품 속에서 표현해왔던 인간 내부에 잠재된 보편적 허위의식을 부수는 작업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라고 작품 동기를 밝혔다. 춘근역을 맡은 박상민의 연기는 실제 깡패보다 더 비열하고 야비해 보이며 지금은 잊힌 풍경인 1970년대 지방 소도시 민초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특색 있는 영화이다. 1996년 대종상 각색상 수상.







5. 선생님께 사랑을 <언제나 마음은 태양>


A3634-01.jpg

1967년 제임스 클라벨이 감독한 이 영국 영화는 시드니 포이티어라는 명배우의 첫 주연 작이다. 직장을 구하던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젊은 엔지니어 흑인 마크는 런던 동부 빈민가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거칠고 반항적인 학생들은 마크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새로 부임한 동료 교사 질리언만이 마크를 도와준다. 나이 많은 데넘은 남학생의 우두머리고, 파멜라와 바바라는 여학생을 이끈다.

마크를 몰아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쓰던 졸업반 학생들은 차츰 스승의 인품에 감화된다. 졸업 무도회가 열리던 밤, 학생들은 마크에게 감사와 사랑을 담은 선물을 전달한다.

인격적인 교사, 반항적인 학생이 대립하다가 결국 감동적인 화해로 마무리되는 교육 영화의 고전으로 할리우드 첫 흑인 배우인 시드니 포이티어가 주연을 맡은 영화다. 주제가 ‘To Sir with love’는 지금도 영화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48.jpg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마크 색커리(Mark Thackeray: 시드니 포이티어 분)는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흑인이다. 그는 전직 통신 기사지만 새로운 직장이 생기기 전까지 교편을 잡기로 한다. 그가 발령을 받은 곳은 런던의 빈민촌, 생활고에 찌들어 교육에 대해서는 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하나같이 말썽꾼들이고 그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교사를 골탕 먹일까 뿐인 문제아들로 이루어진 구제불능 학생들이다. 하지만 마크에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이런 현실에 방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동료 교사들이다. 심지어 교장은 자기의 원칙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된다는 전제 아래 모든 것을 교사의 재량에 맡기는 안이한 태도를 보인다.

영화 속에 등장한 학생들은 각자가 다 한 가지 이상의 어려움을 갖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렵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못 해주는 경우도 많고, 편부모 가정도 많다. 아이들이 이렇게 힘든 상황에 놓여있었기에, 공부는 하지 않고 태커리 선생이나 그 전 선생들을 괴롭힐 궁리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은 지금까지 교육을 잘 받지 못하였고 또 그러한 자신들을 좀 쳐다봐달라고, 좀 돌봐달라고 하는 투정 어린 관심의 표현으로 <반항>이라는 무기를 들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 시달리던 색커리는 아이들이 인생의 목표도 없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도 없이 학교를 그저 냉혹한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공간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는 아이들을 교육시키는데 뭔가 색다른 전략이 필요함을 느낀다. 그는 우선 교사의 권위는 잊고 아이들에게 성인 대우를 해주면서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하며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푼다. 그러나 이조차도 스승의 기만행위로 간주하며 빈정거리는 학생들이 있다. 그것은 얼마 후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체육시간에 남자 학생들은 색커리에게 권투시합을 제의한다. 색커리는 불량학생의 주먹세례에 코피를 흘리면서까지 성실하게 그들에게 응대를 하며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교과서에 적힌 내용들을 접어두고 인생, 죽음, 결혼, 사랑 등등 친밀하지만 어려운 주제들에 대한 진솔한 얘기를 이끌어나가면서 아이들의 불신의 벽을 무너뜨린다. 이런 대화는 무리를 지어 다닐 땐 강하지만 나약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에게 교실 밖의 세상은 냉혹하며 생존을 위해서 변화해야만 한다는 교훈을 주고 색커리는 점차 아이들의 신임과 존경을 얻는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의 졸업식이 다가온다. 아이들은 졸업 후 취업 문제에 당면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준 색커리에게 감사하게 되고 한편 색커리도 원하던 통신기사 일자리를 얻는다. 졸업식 댄스파티.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된 아이들은 색커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문제아 여학생은 그에게 함께 춤추기를 청한다.

그때 루루는 'To sir with love'라는 노래를 부른다. 색커리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눈물을 흘린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통신기사 직장을 포기하고 이 학교에 교사로 계속 남겠다는 말을 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52.jpg

마크는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흑인, 그는 전직 통신기사지만 새로운 직장이 생기기 전까지 교편을 잡기로 한다. 그가 발령받은 곳은 런던의 어느 빈민촌. 생활고에 찌들어 교육에 대해선 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하나같이 말썽꾼들이고 그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교사를 골탕 먹일까 하는 것뿐이다. 동료 교사들은 이처럼 험한 현실에 대해 방관자적 태도로 일관한다. (언제나 마음은 태양)은 국내에서도 유명한, 교사와 학생들 간의 잔잔한 감정교류를 그려낸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 (To Sir with Love)>은 우리들에게 참다운 교사의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6. 카스트 제도의 희생자 <밴디트 퀸>


78273.jpg

1991년 인도의 세자르 카프로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카스트제도라는 계급 세계가 엄존하고 있는 인도라는 국가에서 제도와 인습이 인간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는지를 알려주는 영화이다.

인도에서는 카스트를 산스크리트 어로 '색'을 뜻하는 바르나라고 부른다. 계급의 최상층은 브라만(승려), 다음은 크샤트리아(귀족, 무사), 다음은 바이샤(농민, 상인, 연예인), 최하층은 수드라(수공업자, 하인, 청소부)이다. 계급에 따라 결혼, 직업, 식사 따위의 일상생활에 엄중한 규제가 있고, 가장 불결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수드라 밑에 '불가촉천민'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현재 하리잔, 즉 '신의 아들'로 불리며 이 이름은 간디가 그들에게 붙여 주었다. 현재는 2,500종 이상의 카스트와 부 카스트로 나뉜다. 많은 카스트 개혁 운동이 일어나고 있고 불가촉천민에 대한 박해가 현재 법으로 금지되고 있지만, 카스트 동맹은 여전히 인도에서 강력한 정치적·사회적 세력으로 남아 있고 또한 새로운 카스트가 계속 형성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가 전 세계에 상영된 이후에 국회의원이 된 실화의 주인공은 대로상에서 살해되고 만다.



bandit-queen-800-75.jpg

이 비극적인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폴란 데비(Phoolan Devi: 시마 비스와스 분)는 가난한 부모에 의해 자전거 한 대와 암소 한 마리의 대가를 받고 민며느리로 팔려 간다. 그러나 무지한 남편이 아직 어린 그녀를 학대하고, 강간하자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도망 오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폴란이 걷게 될 힘든 삶을 예감한다.

그 후 폴란은 마을 청년들이 호감을 느낄 만큼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고, 촌장의 아들은 의도적으로 폴란에게 접근하다 실패한다. 자존심이 상한 촌장의 아들은 음모를 꾸며 결국은 그녀를 마을 밖으로 추방한다. 마을 주변을 배회하던 폴란은 또 다른 촌장 아들의 음모로 경찰에 잡혀가고, 경찰에게 강간과 학대를 당하게 된다. 경찰에서 풀려난 후 경찰과 결탁된 갱단의 대장에게 잡혀 무리들 속에 포함되지만 갱단의 대장은 그녀를 상습적으로 강간하고, 이를 보다 못한 도적 비크람은 대장을 사살하고 무리의 대장으로 올라선다.

폴란을 사랑하는 비크람은 그녀에게 총 쏘는 법과 산을 오르는 훈련을 시키고, 폴란은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주는 비크람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폴란은 인습의 굴레에서 해방돼 갱단의 대장과 함께 무리를 이끌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그 행복은 경찰에 잡혀갔던 원래의 대장 비 스람이 풀려나면서 산산이 부서지게 된다. 마을의 부자들과 경찰과 손잡고 있는 대장 비스람은 비크람을 몰래 총살하고, 그녀를 납치, 폭행 후 24명의 부하 및 지주들에게 윤간하게 한 후 발가벗긴 채 온 마을을 끌고 다닌다.


1234.jpg

그 후 경찰과 비스람의 손을 피해 인도 북부 마디아 프라데쉬의 광야로 숨어 자신의 갱단을 형성한 폴란은 의적으로 그 이름을 전국적으로 날리게 된다. 폴란은 도둑의 여두목으로 변신해 도둑 떼를 이끌고 자신을 성폭행하였던 24명의 마을 지주들을 공개 처형하였다. 이후 풀란은 2년여 동안 온갖 약탈과 학살로 지주들과 경찰을 괴롭혔으나 끈질기게 쫓아오는 경찰과 비스람의 무리들에 의해 그녀의 무리는 모두 죽는다.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투항 조건으로 동지들의 안전과 천민 계급의 권리 회복을 내세워 수상과 협상한다. '꽃의 여왕', '약탈의 여왕', '도둑의 여왕'으로 불리며 인도 전역을 무대로 활동하던 폴란은 수많은 숭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극적인 의식을 치르고 경찰에 자수한다. 그녀의 나이 스물한 살 때다. 풀란 데비는 마디 프라데시 주의 팔리오의 중앙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11년 동안 말라 센의 친구가 되었는데, 말라 센은 <인도의 산적 여왕(India's Bandit Queen)>(1991)이라는 책을 통해 데비의 이야기를 썼고 이 책은 1995년에 화제가 된 영화 <밴디트 퀸>의 토대가 되었다.


실존 인물인 풀란 데비는 11년의 징역형을 살고 난 후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다가 영화가 개봉된 지 10년 후인 지난 2001년 7월 25일 암살자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그 틀을 깨고자 하는 일이 끝없는 가시밭길을 걸으며 살아남는 일처럼 어려움을 실감케 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세카르 카마르 감독은 이런 폴란 데비의 고통과 투쟁을 남김없이 그리고 있다.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영상은 때론 난폭하고, 때론 야만적이다. 그러나 거친 영상은 오히려 폴란 데비의 험난했던 삶을 대변하며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간다.

'밴디트 퀸'은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일반적인 인도영화와는 거리가 있다. 영화 제작의 천국이라 불리는 인도에서 돈줄을 찾지 못해 영국 '채널 4'의 지원금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폭력장면을 비롯해 몇 장면이 잘려 나가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인도의 야만적인 계급관계 등 인도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오리지널" 인도영화다. 이 영화는 비판적 시각 때문에 인도 내에서는 상영이 금지됐지만, 1994년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된 바 있으며, (타임)에 의해 그해 세계 10대 영화 가운데 한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7. 50년 전의 기괴한 영화 <하녀>


201236.jpg

<하녀>는 1960년에 김기영 감독이 만든 스릴러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를 연전 EBS 주말의 영화를 통해 보았다. 금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해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중산층 가정에 하녀가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밤, 하녀는 일하는 집의 가장인 동식과 관계를 맺게 되고 이후 하녀는 이 가정을 조금씩 파괴해 간다. 당시 명보극장에서 개봉, 10만이라는 관객을 모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에도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 임상수 감독이 이를 리메이크하여 <하녀>(2010)란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2008년 세계 영화 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 영상자료원에서 복원되었다.


02.jpg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동식(김진규)은 방직공장의 음악부 선생이자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다. 방직공장의 음악 선생인 동식은 헌신적인 아내(주증녀)와 함께 다리가 불편한 딸, 어린 아들 창순(위의 사진 우측 : 안성기)을 보살피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잘 생긴 외모로 인해 여공들에게 흠모 이상의 지나친 관심을 받고 난감해진다. 집을 근사하게 리모델링한 지 얼마 후 손바느질로 맞벌이를 해온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고자 하녀를 찾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동식은 금천에서 일어난 하녀의 살인사건 기사에 흥미를 보인다. 미남 선생으로 인기가 높던 동식은, 어느 날 여공 곽선영에게서 연애편지를 받는다. 편지를 받은 동식은 이를 기숙사 사감에게 알리고, 이로 인해 곽선영은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한편, 곽선영에게 연애편지를 쓰라고 부추겼던 그녀의 룸메이트인 조경희(엄앵란)는 동식의 새 집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다니게 된다. 그러던 중, 동식은 과로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조경희에게 하녀를 소개해 줄 것을 부탁한다. 조경희는 공장 여급으로 있던 하녀를 소개하여 주고, 하녀는 동식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동식의 저택에 입주살이를 시작한 하녀(이은심)는 담배를 피우고, 쥐를 때려잡는 등 기묘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큰 사건 없이, 동식의 집안은 단란하고 화목한 생활을 한다. 셋째를 임신한 아내는, 휴양차 친정에 가고, 그 사이 공장을 관둔 곽선영의 사망 소식이 전해져 온다. 조경희와 동식은 곽선영의 장례식에 다녀오고, 그날 밤 조경희는 동식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동식은 불장난 따위에 가정을 망칠 수는 없다며 조경희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이에 모욕감을 느낀 조경희는 집을 떠나고 이를 예의 주시하며 지켜보고 있던 하녀는 동식을 유혹해 불륜의 육체관계를 맺는다.

친정에 갔던 아내(주증녀)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동식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하녀는 동식에게 자신은 이제 동식의 첩이라며 시시때때로 동식에게 접근해오고, 이에 동식은 당혹스러워한다. 결국 동식은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에게 자신과 하녀 사이에 있었던 일을 고백한다. 이를 들은 아내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분개한다. 그리고 아내는 하녀를 설득해 뱃속의 아이를 유산시키도록 한다. 아이를 잃은 하녀는 점점 난폭해져 가고, 그 와중에서 아내는 셋째 아이를 낳는다. 주인집의 세 아이를 보면서 자신을 유산하도록 한 동식 부부에 분노를 느낀 하녀는 결국 아들 창순을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죽게 만든다. 이윽고 하녀는 이 모든 사실을 공장에 알리겠다며 협박하고, 결국 하녀는 집의 권력 구조를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곧, 하녀는 자신은 자살할 것이라며 동식에게 자신과 같이 독약을 마시면 죽어주겠다고 한다. 동식은 마지못해 하녀와 독약을 들이켠다. 그러나 마지막만큼은 하녀 옆에서 맞이할 수 없다면서 아내의 곁으로 가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04.jpg

이 영화는 시골에서 상경한 여성노동자, 중산층 대열에 합류하고픈 가장 등 근대화가 진행 중인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캐릭터들, 복층 구조의 현대식 가옥 내부에서 벌어지는 밀실 공포라는 독특한 공간적 설정, 보는 이의 신경을 자극하는 극적 서스펜스 구조 등은 이 영화를 차별화되고 세련된 작품으로 올려놓는 데 일조했다. 지금은 국민배우로 칭송받는 안성기의 어린 모습과 만년 소녀로 불리던 엄앵란의 전성기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는 영화이다.

1990년대 말부터 故 김기영 감독의 영화들은 재조명을 받아 `재발견`이라 일컬어지며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하녀’는 그의 대표작답게 프랑스 최고 권위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 장 미셀 프로동, ‘분노의 주먹’, ‘디파티드’ 등을 만든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 등의 찬사를 받으며 마니아의 영화에서 세계 영화 팬들의 영화로 격상되었다.

그리고 2010년 우리나라 영화계는 50년의 시간을 지나오며 거대한 걸작의 표본이 된 ‘하녀’의 예술성과 존재감에 다시 한번 압도되고 있다. 임상수 감독이 다시 만든 영화가 그것인데 전도연이라는 최고의 배우가 주연을 맡은 2010년 리메이크 ‘하녀’가 등장한 것처럼 동시대 국내외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배우 그리고 관객들은 50년 전의 이 기이한 영화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 극 중 하녀 역을 맡은 이은심은, 이 영화가 첫 주연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영화 이후 단 2편 영화만을 더 찍었는데, 이는 당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영화 속 하녀를 보면서 '저 년 잡아 죽여라'라고 외칠 만큼 극 중 캐릭터에 대한 반감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8. 故 이태석 신부님의 숭고한 삶... <울지 마, 톤즈>


이 영화는 어느 일요일 저녁 8시 KBS -1 TV의 일요스페셜에 방송한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상영한 것이다. 1시간 방송분을 보완해서 1시간 30분 방영용으로 바꾸었으나 기본적인 포맷이나 내용은 대동상이하다. 금년 2월에 방송되었는데 이태석 신부의 숭고한 삶이 알려지면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로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태석 신부는 암으로 선종하기 불과 몇 달 전에도 톤즈의 아이들을 위해 조췌한 몸을 이끌고 직접 기타를 치며 모금 공연을 했다. 이 영화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태석 신부의 숭고한 삶에 눈물을 흘렸다. 오늘 마시는 물 한 모금, 밥 한 숟가락, 약 한 봉지가 왜 이리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이태석 신부의 숭고한 삶에 끝없는 존경의 염을 보낸다. 이 영화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몸 다해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이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1431AD364D19600A1A0DBF
1929214D4D3E746B1B0600


이미 영화를 본 분들은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나의 필력 부족으로 영화의 내용을 가감 없이 설명하기 쉽지 않았다. 행여 이태석 신부님의 업적에 누가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 때문이다. 줄거리를 살펴보자.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 수단의 자랑인 톤즈 브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했다. 선두에 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고 있다. 사진 속에는 한 남자의 사진이 환하게 웃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이다.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의 오랜 내전 속에서 그들의 삶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졌다. 특히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남부 수단은 절망의 황무지라 불릴 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어린 소년들은 소년병이란 명목 하에 군대에 잡혀가서 착취당하고 있었으며, 느닷없이 시작되는 전쟁의 불안감과 더욱 심해지는 폭력성으로 인해 국민들은 두려움으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또한 악성 말라리아와 콜레라 등의 전염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열악한 자연환경과 질 낮은 위생 상태, 기본적인 식량부족 등으로 인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빠르게 퍼진 전염병은 전쟁만큼이나 톤즈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딩카족.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 딩카족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울고 말았다.

1103CB374D19604918C772

모든 것이 메마른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故 이태석 신부다. 그는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다. 사람들은 그를 쫄리(John Lee) 신부님이라고 불렀는데 그의 성이 이(Lee)씨이고 세례명이 요한(John) 인데서 기인한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몸 다해 헌신적으로 그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는 그 지옥 같은 곳에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준 한 사람이었다. 2001년 로마 교황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남부 수단을 자원해 부임한 이태석 신부는 인제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생활까지 마친 의사였으나, 세상의 가장 가난한 곳에서 의술을 펼치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뒤늦게 신학대에 진학했고, 신부가 되자마자 톤즈로 향했다. 톤즈 사람들은 그를 졸리 신부라 불렀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그는 희망이라 기억되었다.

1260E3334D19602F1207AF

신부가 아니어도 의술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데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아프리카까지 갔냐는 질문에 이태석 신부는 이렇게 답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 마지막으로 10남매를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다”

156963334D19608A0183DD

이태석 신부는 2010년 1월 14일 대장암으로 삶을 마감했다.

1130AB3A4D1960A2144640

2010년 9월 9일 개봉한 '울지 마 톤즈'는 관객들의 호평 속에 장기 그해 영화진흥위원회 박스오피스 좌석점유율 2위(26일 기준), 최신 박스오피스 8위(12월 셋째 주)에 올랐다. 개봉 초기만 해도 10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됐지만 한 달 만에 10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고 많은 인기를 얻자 54개 상영관으로 확대됐다.

최근 20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 종교 다큐멘터리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고 여세를 몰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도 개봉했다. '울지 마 톤즈'는 2010 올해의 좋은 영상물, 제20회 한국 가톨릭 매스컴상 대상을 수상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옛날의 금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