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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Nov 02. 2023

등단작가가 되었습니다만...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제10회 신인문학상 작품 공모에 응모하여
2023년 하반기 심사위원회에서
작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두 달 전에 받은 문자 메시지이다.   

당연히 스팸 문자라 생각하고, 요즘 스팸 문자의 수준에 매우 놀라워하면서 삭제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지난 5월에 모 문예지의 신인문학상 작품 공모에 응모한 사실이 떠올랐다. 브런치에 올린 詩 3편을 고심 끝에 골라 응모했던 것이다. 막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쁘기도 하면서, 이렇게 한 번에 등단작가가 되어도 괜찮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시 부문에 공모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순전히 브런치 이웃 작가인 '그 밖의 나' 덕분(https://brunch.co.kr/@mesidebe#articles)이다.

'그 밖의 나'님께서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소개하는 글에 초보작가인 나를 언급한 이후 많은 분들이 방문하여 라이킷도 눌러주고 답글도 달아주는 사건(?)이 있었다. 이 계기로 나는 글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고 급기야는 인터넷에서 찾은 문예지에 응모를 한 것이다.


내가 응모한 문예지는 서점에 책도 많이 판매하고 회원수도 많았으며 무엇보다 회원들의 활동이 왕성했다. 그동안 브런치에 발행한 시 중에서 3편을 신중하게 골라 응모를 한 것이다. 응모를 하였지만 당연히 안 될 줄 알고 아예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연락이 온 것이다.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공모 작품이 매우 참신하고 무엇보다 작가님의 진정성이 느껴져서 무한한 발전가능성이 보여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문자를 받은 후 문예지 대표와 전화통화를 하였다. 직접 대표와 통화를 하니 기분이 좋았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작가님, 신인문학상에 선정이 되었는데요. 문예지 시집 발간비와 심사비 00원을 납부하셔야 합니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상금을 못 받을지언정 오히려 내가 돈을 내야 한다는 말에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한참을 고민했다. 발간비와 심사비를 내 돈으로 내면서까지 등단작가라는 칭호를 들어야 할까? 에 대해 누구한테 물어보지도 못하고 혼자 마음앓이를 했다.

결국 약간의 돈을 내기로 결정했다. 해당 문예지는 회원들이 매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발간비와 심사비 그리고 등단패 제작비까지 감안하면 기업이 아니고서는 이런 비용을 자체적으로 충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문예지의 순수함을 믿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등단패와 등단인증서를 받은 지금까지도 변함없다. 더욱이 함께 선정된 분들의 작품을 읽어보니 유명한 신춘문예지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내 눈엔 모두 훌륭한 작품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이렇게 등단작가가 되는 것도 좋은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렇다. 가장 큰 효과는 단연 이런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수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말 그대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많이 경험했다. 학생들의 작은 성과라도 또는 성과 없는 노력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칭찬을 했다. 그랬더니 많은 학생들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표정도 밝아지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결국 좋은 결과로도 이어졌다.

나에게 등단작가라는 칭호도 그랬다. 공모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한 후 알 수 없는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다. 이후 과연 이런 생각이 詩로 이어질까라는 자기 검열이 사라지고 용기 내어 브런치에 시를 선보였다. 그리하여 '울할매와 초콜릿 라테'라는 브런치북도 발행했다(https://brunch.co.kr/brunchbook/brupoem).



사무실 한 켠 나만 볼 수 있는 작은 공간에 등단패가 있다. 이 공간을 오면서 창작의 열망을, 가면서 좋은 시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한 마디로 등단패가 있는 공간에서만큼은 나는 시인이자 등단작가가 된다.


단 등단을 빌미로 돈벌이를 하는 악덕 문예지는 조심해야 한다.






지난 5월에 다른 문예지의 수필 부문으로도 응모했다. 얼마 전에 신인작품상에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일하게 심사비를 납부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나는 '부족한 제 글을 선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사양하겠습니다'라고 공손히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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