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thos Jun 28. 2023

기다림이 주는 선물은?

기다림 그 자체에서 오는 설레임이다.

내게 있어 속초 가는 길은,

싫어하는 샤베트 맛과 좋아하는 딸기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더블비얀코'처럼

고통의 기다림과 환희의 기다림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예전에는 서울에서 속초까지 막히지 않으면 3시간 30분, 조금 막힌다 싶으면 4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지금은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어 막히지 않으면 서울에서 2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속초까지 금방 갈 수 있어도 고속도로 없을 때 가는 것보다 고통을 더 느끼면서 속초에 간다. 약간의 폐쇄 공포증이 있는 내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인제양양터널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길이가 무려 11km나 된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터널을 지나다 보면 사고예방을 위해 도로에 홈을 파서 타이어가 지날 때마다 들리는 이 멜로디는, 사고 예방은 될지 몰라도 내게는 심장마비로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괴기스러운 소리로 들린다. 빨리 터널을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여기서 나의 기다림은 어둡고  터널을 빠져나가기 직전 저 멀리서부터 나를 향해 비치는 밝은 빛이다. 11km 길고 긴 고통의 터널 속에서 오직 내가 기다리는 것은 터널 끝의 밝은 빛.

이때 느끼는 기다림의 맛은 헤드랜턴 하나에 의지한 채 석탄을 캐는 광부가 광산을 빠져나오자마자 마시는 시원한 물 맛이다.




예전보다 더 빨리 도착하지만 내가 느끼는 고통은 두 배가 되는, 

나만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뚫고 속초에 도착하면 지금부터는 고통이 아닌 환희의 기다림이다.


첫 환희는

대포항 등대 끝자락에 앉아 긴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동해의 첫 태양을 맞이하면서 시작된다.  

그 어떠한 사고(思考)와 행위(行爲)도 용납하지 않을 위압감 앞에 나는 대포항의 또 다른 등대가 된다.


이미지 출제 : 네이버 '해돋이' 검색 이미지


이어서 동해바다 오징어잡이배의 전구 불빛이 내 눈앞에 보이면 두 번째 환희의 기다림이 다가온다.

어두운 새벽바다 위에서는 전구 불빛이 수많은 오징어를 유혹할 만큼 밝고 위력적이지만, 수평선 너머 떠오르는 첫 태양의 빛에는 그냥 작고 연약한 반딧불이다.


이미지 출제 : 네이버 '오징어잡이배' 검색 이미지


오징어잡이배가 대포항 선착장으로 다가 오면 빨간 대야를 든 몸빼바지 입은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씨알 굵은 오징어를 사기 위해서다. 나는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기는 이 삶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알 수 없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나의 두 번째 환희의 기다림인 오징어를 산다.

만원 한 장을 주면 몸빼바지 입고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맨 아주머니가 몇 마리인지 세지도 않고 능수능란한 칼솜씨로 오징어 횟감을 만들어 검정 비닐봉지 한가득 담아준다.


그럼 나는 인근 편의점에서 나무젓가락과 빨간 초고추장을 사서 동해바다의 떠오르는 태양을 처음 맞이했던 그곳, 대포항 등대로 간다.

아무 데나 널브러져 않아 검정비닐봉지 속 오징어를 젓가락으로 아무렇게나 집어 초고추장에 흠뻑 담가 입속에 넣는다. 빨간 고추장이 입 주변에 아무렇게나 묻어 있어도 괜찮다.

왜냐고? 오징어 맛이 기가 막히니까. 

이것이 내가 기다린 기다림의 두 번째 선물이다.





 기다림의 선물은,
기다림 끝에 오는
그 대상과의 만남이 아니라
'기다림 그 자체에서 오는 설레임'이다.


진정한 기다림의 선물은 기다림 그 자체입니다.

기다림은 대형마트의 'one + one'  행사처럼 두 가지의 선물을 안겨줍니다.

긴 기다림 끝에 오는 그 대상과의 만남이 첫 번째 선물이고,

대상과의 만남을 기다리면서 느끼는 가슴 벅찬 설레임이 두 번째 선물입니다.


지난 6월 7일에 '고개 숙인 꽃과 아이'(https://brunch.co.kr/@yoonteacher/317) 라는 글을 쓰면서

당분간 바빠서 6월 말이나 돼서야 다시 이곳에 찾아올 것 같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라이킷'을 눌러주셨고,

특별히 @엘랑비탈 님과 @램즈이어 님 두 뿐께서는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겨주셨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한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기다림의 선물'을 기다리며 6월 한 달을 버텼습니다(?).


제가 이렇게 기다림이란 단어로 글을 쓴 이유는 두 분께 감사하다는 말 전해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소통'이란 참 신기한 마법을 부립니다.

아직도 낯선 글쓰기 플랫폼에서 일면식도 없는 분들과의 아주 작은 소통도 어떤 사람에게는 이렇게도 큰 삶의 의미를 가져도 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에서의 자기검열 (정치)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