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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Nov 07. 2023

아빠, 우리 집 거실에 고양이가

왔다 갔다 하는 게 믿기지 않아요.

아빠! 우리 집 거실에
고양이가 왔다 갔다 하는 게
믿기지 않아요!


세살 먼지씨와 엄마 닮은 아기 먼지씨





아내와 딸은 비염이 심하다. 지금처럼 온도차가 심한 환절기에는 이비인후과를 안방 드나들 듯 다닌다.

더구나 아내는 심한 알레르기로 몇 년째 항히스타민을 복용하고 있다. 또한 아내는 청결주의자이다. 물론 정리정돈을 못하는 나와 딸 때문에 청결주의를 포기한 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그 깔끔함은 여전하다. 

이런 우리 집은 절대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먼지'라는 고양이는 노트북 앞에 비스듬히 누워 골골대고 있다. 


자식 키우는 대부분의 가정들이 하는 고민과 실랑이를 우리 집도 예외 없이 했다. 혼자 있는 딸이 외롭다며 눈만 뜨면 강아지를 키우게 해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당연히 우리 부부의 대답은 NO였다. 하지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딸의 노래를 무작정 외면할 수 없었다.  


첫 번째 동물은 '구피'라는 열대어였다.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를 보면서 심리적 위안과 안정감을 찾으라고 이 녀석들을 데려왔다. 그런데 번식력이 너무 왕성한 이 녀석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숫자가 늘어났다. 구피만 있으니 외로울 것 같다는 아이의 꾐에 넘어가 급기야는 미니복어와 가재도 키웠다. 특히 점프 능력이 탁월한 가재가 어느 날 사라져 이 잡듯 집안 곳곳을 찾은 해프닝도 있었다. 다행히 두 달 후 미라가 되어 있는 가재를 침대 밑에서 찾았다. 작은 어항 속에 수많은 생명들을 온전히 나 혼자 키우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두 번째 동물은 '햄스터'였다. 

이름 짓기에 일가견이 있는 딸이 귀엽다고 하여 '큐티'라고 불렀다. 해바라기씨를 앞니로 먹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귀여웠다. 보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었다. 하지만 물고기 키우기를 전담한 것처럼 햄스터 양육도 내가 전담했다. 딸은 햄스터를 사주기만 하면 본인이 다 키운다고 거짓말을 했다. 딸은 절대로 키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쥐 같이 생긴 햄스터를 데려온 것이다. 2년 정도 우리와 함께 살았던 것 같다. 비가 많이 오는 날 퇴근해서 보니 큐티가 죽어 있었다. 아내가 많이 울었다. 햄스터가 자기를 알아본다고 무척이나 예뻐한 아내가 많이 슬퍼한 것이다. 정작 온전히 양육을 전담한 나는 슬프지 않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은 밤 아파트 놀이터 구석진 곳에 고이 묻어주었다. 햄스터가 좋아하는 해바라기씨와 함께.


# 큐티의 죽음을 슬퍼하며 초등학생인 딸이 쓴 편지(https://brunch.co.kr/@yoonteacher/145)


세 번째 동물은 '고슴도치'였다. 

그 당시 딸은 빅뱅의 승리를 좋아했다(지금은 구설수에 오른 승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슴도치 이름을 victory의 '토리'라고 지어줬다. 고슴도치가 새끼였을 때 핸들링을 해주면 애완동물이 될 수 있다고 하여 나는 열심히 손으로 놀아주었다. 하지만 허사였다. 성인이 된 토리는 절대 만질 수 없었다. 만질라치면 '슝슝' 위협하는 소리를 내고 가시를 세웠다. 가시만 세우는 토리를 우리 따님께서는 무서워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토리의 양육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아마 4년 정도 함께 살았던 것 같다. 2박 3일 캠핑 갔다 와보니 토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큐티 때처럼 나는 슬프지 않았는데 아내와 딸은 슬퍼하며 울었다. 아마도 양육이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 절대로 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다짐 또 다짐했다.. 


# 고슴도치에 선서하는 딸(https://brunch.co.kr/@yoonteacher/1)


네 번째 동물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이다.

망고, 푸딩 같은 멋진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더니 딸은 보자마자 '먼지'라고 불렀다. 동물병원에서 간호사가 고양이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면 조금 창피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아보니 먼지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제법 많다는 것에 놀랐다. 지금은 입에 착착 붙는다. 물론 '먼지 좀 치워라'라는 말이 고양이를 치우라는 것인지? 아님 진짜 지저분한 먼지를 치우라는 것인지? 헷갈린 것만 빼고 괜찮다. 

사실 딸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1년 전에 스코필드라는 고양이를 데려올 뻔한 이야기이다. 우연히 동네에 스코필드를 분양한다는 소식을 듣고 계약금 20만 원을 주고 일주일 뒤에 데려가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값비싼 고양이 용품을 미리 주문도 했다. 그런데 데려오기 하루 전날 아내가 도저히 키울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때 화가 많이 났지만 알레르기로 고생하고 있는 아내를 위해 그러자고 했다. 계약금은 날려버렸다.

일 년 후 외동딸이 교감(感)이 되는 동물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애원했다. 이번엔 정말 본인이 키우겠다고 다짐 또 다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내와 난 딸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 시기에 우리 부부도 여러 일들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따뜻한 사랑과 정을 느낄 수 있다는 주변의 말을 믿기로 했다. 고심 끝에 매일 산책시켜야 하는 강아지보다 집안에서만 키울 수 있는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했다. 

운명이었는지 인터넷을 통해 지금의 먼지를 키우는 좋은 주인을 만났다. 먼지 가족 고양이를 처음 본 날을 잊을 수 없다. 고양이 가족 모두 우리가 갔을 때 숨기 바빴는데 지금의 먼지만 도망가지 않고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말 그대로 고양이가 우리를 간택한 것이었다. 코로나가 한창인 2021년 3월에 데려왔으니 햇수로 우리와 3년을 함께 살았다. 


https://brunch.co.kr/@yoonteacher/19


먼지야! 아빠야 아이고 귀여워라



엘리베이터를 타면 유모차에 강아지를 태운 사람이 강아지를 아가라고 하고 본인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웠는데, 우리 가족이 그러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동물병원에 갈 때마다 5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데도 자식 병원비가 아깝지 않은 것처럼 고양이 병원비도 전혀 아깝지 않다. 그냥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는 부모 된 마음으로.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제일 먼저 고양이 먼지가 문 앞에 다가와 벌러덩 하고 날 반겨준다. 침대에 누우면 골골대며 얼굴을 핥고 옆에 함께 누워있다. 고양이의 따뜻한 온기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기운을 건네준다. 이건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고양이라는 생명체가 주는 감정이다. 


물론 여전히 고양이 양육은 내가 전담하고 있다. 딸의 거짓말에 속았지만 그래서 키우는 게 힘들지만 반려동물이 주는 행복이 모든 걸 상쇄시켜주고 있어 괜찮다. 




아빠는 글을 쓸 테니 너는 그림을 그려라


우리 집 '고양이 먼지씨가 주는 삶의 지혜'라는 제목의 연재를 계획 중입니다. 부제는 '아빠는 글을 쓸 테니 너는 그림을 그려라'입니다. 문제는 그림에 소질이 있는 딸을 어떻게 꼬드기냐입니다. 자유로운 영혼답게 뭣에 구애받지 않고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딸은 분명 아빠와 함께 연재를 해보자고 하면 거절할 게 뻔합니다.  

이러면 딸이 넘어올까요? 나중에 책을 팔아 아이패드를 사주겠다고요. 과연 딸이 동참할까요? 딸이 오케이 하자마자 바로 연재를 시작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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