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간 토리를 기억하며...
가로 90cm, 세로 40cm의 투명 플라스틱이 내 삶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는,
입구가 작은 타원형 집과
지금은 놀지 않는 수레바퀴와
밥을 먹고 똥오줌을 눌 수 있는 작은 나무 상자가 있다.
이곳에 온 지 벌써 4년이 흘렀다.
이 집 외동딸이 나를 키우고 싶다고 해서
초등학교 5학년 여름에 간신히 몸만 가눌 수 있는 날 데려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집 딸은 강아지 아니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는데
자유분방한 이 녀석들은 도저히 안 된다고 하여 대신 나를 데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 딸은 나에게 별로 애정이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본인은 하지 않고 어른 남자에게 밥과 물을 주라고 큰소리로 시키기만 하기 때문이다.
요즘 나이가 들어서인지 거동이 힘들다.
예전에는 이 집 사람들이 나를 쳐다만 봐도,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쑥쑥'하는 소리를 내면서 위협해서 도망치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날 귀찮게 만져도 가시가 잘 서지 않고 위협적인 소리도 낼 수가 없다.
그리고 난 외롭다.
예전에는 혼자 있고 싶어 나를 스치기만 해도 가시를 세우고 소리를 질렀는데,
지금은 너무 쓸쓸해서 누가 나와 놀아줬으면 하는 내 맘은 몰라주고
이 집 사람들은 날카롭게 가시만 세울까 봐 밥만 주고 그냥 나가버린다.
그래도 이 집 사람들 중에 그나마 마음에 드는 사람은 이 집의 남자다.
이 남자가 없으면 끼니를 거르고 급기야는 물 한 방울도 못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남자가 건강하게 나를 잘 보살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불만이 있다.
먼저, 밥이다.
이 집 사람은 내가 '사각사각' 맛있는 소리를 내면서 먹어 이 밥을 매우 좋아하는 줄 착각하는 듯하다.
나도 간식도 먹고 싶고 다른 종류의 밥도 먹고 싶다.
자기들도 같은 밥을 3년 동안 먹으면 아마 죽는다고 할 것이다.
다음은 집이다.
내가 몸집이 작았을 때는 아늑하고 넓은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몸집이 커져 입구에 들어가기도 힘들다.
괜히 내가 밥을 조금 먹는 게 아니다. 많이 먹어 체구가 커지면 추운 겨울, 밖에서 자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씻기다.
어디서 이상한 말을 들었는지 원래 동물들은 씻지 않는다나 뭐래나 하는 개똥 같은 이상한 소릴한다.
자주 씻는 것을 싫어할 뿐이지 지금처럼 두 달에 한 번 씻을까 말까 하는 상황은 진짜 아닌 것 같다.
이 집 사람들이 눈이 있으면 가시 사이에 낀 두꺼운 각질을 좀 봤으면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 남자의 머리처럼 나도 요즘 가시가 많이 빠져 폼이 영 아니다.
혼자만 탈모 예방 샴푸로 머리 감지 말고, 나도 탈가시 예방 샴푸로 목욕 좀 시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세 가지 문제점만 고쳐주면 나의 삶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참 한 가지 더 있다.
이 집 딸 얼굴 까먹게 생겼다.
나 죽기 전에 밥도 주고 물도 깨끗이 갈아주고 가끔 나랑 놀아줬으면 좋겠다.
그럼 난 이만 자야겠다.
ps. 내 이름 토리는 이 집 딸이 한때 너무나 좋아했던 빅뱅의 승리의 이름, victory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승리가 여러 안 좋은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른 뒤부터 연예인 승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안 예뻐하는 것 같다.
우리 집 토리가 얼마 전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함께 동고동락을 했다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잘해준 것보다는 못 해준 것만 생각나나 봅니다.
"토리야 그곳 하늘나라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어서 행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