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머니는 고등학생인 내 딸이 치매에 좋다고 설치해 준 고스톱 게임에 빠졌다. 급기야는 유튜브의 법정스님 말씀에 심취해 예전보다 스마트폰을 더 자주 사용하신다.
문제는 4년 넘게 어르신용(?) 보급형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어, 고스톱 게임에서 못 먹어도 go를 눌러야 하는데 사양이 떨어진 핸드폰이 멈추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핸드폰을 바꿔야 한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주말에 부모님 댁에 갔을 때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안쓰러워 동네에 있는 핸드폰 대리점에 갔다.
항상 보급형 스마트폰을 사드렸는데, 이번에는 큰맘 먹고 최신형은 아니지만 그래도 쓸만한 고가의 핸드폰으로 바꾸기로 했다
“아야 뭣하러 이라고 비싼 핸드폰을 사냐? 쓸데없이 돈 쓰지 말고 젤로 싼 거로 사야”
어머니는 깜짝 놀라시며 고스톱과 법정스님 강연만 듣는데 비싼 핸드폰을 산다고 화를 내셨다.
”별로 비싸지 않아요. 그리고 한 번 사면 몇 년 쓰시잖아요. 아들이 사주는 거니까. 잘 쓰세요. “
하지만 나는 연로하신 어머니가 앞으로 핸드폰을 바꾸면 몇 번이나 더 바꿀까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들어 좋은 핸드폰으로 사주고 싶었다.
“자 어머니 명의의 핸드폰이니까. 어머니가 직접 여기에 서명하셔야 합니다. 이곳에 ’확인했습니다‘라고 쓰시면 됩니다.“
직원은 어머니가 직접 서명해야 한다며 태블릿 pc와 전자펜을 건네주며 말했다.
불안했다. 어머니는 한글을 읽을 수는 있어도 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당황하고 난처해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멈칫 멈칫 망설이다가 전자펜을 들고 보이지도 않은 작은 태블릿 화면에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썼다.
학인 햇읍니다
“어? 어머니가 한글을 쓸 줄 아시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못 썼는데”라고 생각했다.
“핸드폰 하나 사는 데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쓰게 한다냐.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는 같은 말을 계속 쓰게 하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혼잣말로 화를 내셨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어머니의 핸드폰을 신형으로 바꿔드렸다.
“어머니 핸드폰 좋아요? “
“아따 아들아 요거 완전 신세계다야. 핸드폰이 우찌나 빠른지. 내가 누르기도 전에 지가 먼저 고스톱 go를 눌러 부러 야. 그라고 법정스님의 강연도 끊기지 않고 아주 잘 들린다. “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가 엄마 핸드폰 바꿔줬다며? 동네방네 친구들에게 아들이 젤로 비싼 최신형 핸드폰으로 바꿔줬다며 엄청 자랑하고 다니셔. 하하하“
“뭐 그거 얼마나 한다고 자랑하고 다니실까. 그런데 지숙아 어머니가 한글을 못 썼는데 그때 보니 한글을 제법 쓰시더라”
“오빠 몰랐어? 엄마 몇 년 전부터 한글 공부하고 계셨어. 박사 아들을 둔 엄마가 한글도 못 쓰면 안 된다고 엄청 열심히 쓰기 공부해”
그러면서 여동생은 어머니가 한글 공부하는 공책 사진 몇 장을 보내주었다.
그랬다.
어머니와 같은 시간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가정형편이 어려워 자식 중에 1명만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으며 그 대상은 대부분 아들이었다.
어머니도 그랬다.
1남 3녀의 둘째 딸이었던 어머니는 국민학교만 포로시 힘들게 졸업했고 어린 나이에 가족에 도움이 되는 돈벌이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바닷가 시골에서는 공부로 성공할 수 없다며 나를 엄마의 품이 한참 필요할 중1 때 홀연단신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
그런 아들은 교사가 최고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사범대학에 갔고 교사가 됐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모를 어머니의 머리에 씌워줄 때를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마치 당신이 박사가 된 것 마냥 너무나 좋아하셨고 기쁨의 눈물을 한없이 흘리셨다.
이렇게
아들을 키우고 난 뒤 이제야 여든이 다 된 나이에 어머니는 한글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학인햇읍니다‘
이것이 바로 맞춤법 틀린 이 문장이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