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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Z 교장 Jul 10. 2023

서울에서 여학생이 전학을 왔다

나의 사춘기 시절의 두 여학생



서울에서 여학생이 전학을 왔다.


  중학교 1학년인 나는 오늘 전학생을 처음 봤다.

  내가 사는 이곳 바닷가에는 전학생이 거의 없다. 이곳에 오는 낯선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이거나 친인척뿐이었다. 그런데 우리 반에 전학생이 온 것이다. 그것도 말로만 들었던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온 여학생이었다.      


“안녕! 윤다빈이라고 해. 잘 부탁해.”     


  13년간 살면서 저렇게 얼굴이 하얗고 뽀샤시하다 못해 광채가 나는 여자는 처음 봤다. 얼굴만 하얀 것이 아니라 목덜미도 손목도 내가 알고 있는 여자애들과 달리 하얗고 가늘었다. 입으로 ‘후~’ 불면 날아갈 듯하여 마치 내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외모를 지닌 소녀였다.   

   

  “다빈이는 서울 도시에서 전학을 왔어. 이곳 바닷가 촌에는 처음 왔다고 하니까. 너희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잘 챙겨줘. 알았지?”     


  담임선생님은 그렇지 않아도 ‘서울’이라는 말을 듣고 주눅이 들어 있는 우리에게 ‘서울 도시와 바닷가 촌’이라는 반대어를 사용하면서 전학생을 잘 챙기라고 말씀하셨다.

     

  “네 선생님. 걱정 말랑께요. 제가 나쁜 놈들 얼씬 못 하게 잘 지켜볼라요.”     


  우리 반에서 제일 까맣고 키가 작은 일권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일권이는 평소 엉뚱한 짓을 많이 하는 녀석답게 오늘도 이 서먹한 상황을 재미있게 만들어주었다. 담임선생님은 여기저기 살피더니 혼자 앉아 있는 상숙이 옆자리를 가리키며 전학생을 앉으라고 했다. 나는 내심 짝꿍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상숙이 옆자리로 앉게 되자 많이 실망했다. 하지만 대각선으로 그 아이의 옆모습이 잘 보이는 자리여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나를 비롯한 남자애들은 모두 서울에서 전학 온 학생과 짝꿍을 하고 싶어 하는 반면, 여자애들은 모두 싫어하는 눈치였다. 특히 전학생과 짝꿍이 된 상숙이의 표정이 제일 일그러져 있었다.      






  상숙이와 나는 사는 집과 부모만 달랐지 남매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상숙이네 집과 우리 집은 내 키보다 작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상숙이와 나는 이웃사촌이었으며 버스를 타고 면에 있는 중학교까지 같이 다닐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아따 기집애야? 누가 보면 너를 남자라고 생각하지, 여자라고 보겄냐? 머리라도 우리 반 순희처럼 길어봐. 그렇게 짧은 머리를 하고 댕기니까. 너를 처음 본 사람들이 남자인 줄 알잖여.”  

   

  상숙이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다. 키가 웬만한 남자들보다 컸고 피부는 까무잡잡했으며 목소리는 남자보다 더 허스키했다. 머리라도 길었으면 여자로 보였을 텐데 항상 단발머리만 고집하여 처음 보는 사람은 남자로 착각할 정도였다. 남매보다 더 친한 사이라 나는 상숙이한테 외모에 대한 지적질을 자주 했다.      


  “야 신경 꺼라. 남자가 키도 나보다 작은 주제에 한 번만 더 그런 말 하면 내 손으로 죽여불랑께.”     


  내가 외모에 대해 말할 때마다 상숙이는 그 당시 나의 콤플렉스인 작은 키를 언급하면서 화를 내며 대꾸했다.

      



     


  얼굴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팔과 다리도 하얀 서울 소녀는 선머슴처럼 생긴 상숙이 옆에 (내가 보기에) 다소곳이 앉았다.      


  “아니 왜 하필 내 옆자리야? 빈자리가 저렇게도 많은데. 아 짜증 나!”     


  상숙이는 의자를 옆으로 끌어당기며 일부러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다른 분단에 앉아 있는 나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말해 오히려 내 귀가 빨개졌다. 하지만 다빈이는 못 들었는지 아니면 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몰라도 태연하게 상숙이를 보고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잔잔한 물결만 일렁였던 어촌의 작은 학교에 전학생 다빈이의 등장은 극과 극의 학급 분위기를 만들었다. 남자들에게는 더운 여름 무더위를 날려줄 시원한 바닷바람이었지만 여자들에게는 습한 장마가 지난 후 곧바로 몰아치는 태풍처럼 불편한 불청객일 뿐이었다.      

  또래보다 사춘기가 일찍 찾아와 이성(異姓)에 눈을 뜨기 시작한 나는 다빈이의 일거수일투족은 당시 남학생들의 우상이었던 홍콩 여배우 왕조현 그 이상이었다. 수업 중에 선생님을 쳐다보는 횟수보다 다빈이의 옆모습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점심 도시락으로 무슨 반찬을 싸 오는지?, 어떤 과목을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체육시간에는 어떤 운동을 좋아하는지?를 모두 알고 있었으며 서울에서 온 다빈이 덕분에 나의 학교생활은 귤과 꿀처럼 새콤달콤했다.      

  반면 이웃사촌 상숙이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다빈이가 짝꿍이 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둘의 사이는 책상에는 보이지 않은 줄이 그어져 연필 끝이라도 그 선을 넘으면 큰 싸움이 일어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나는 상숙이가 다빈이에게 왜 그렇게 날카롭고 못되게 굴었는지 한참이 지난 후에 알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상숙이는 나를 남자로서 좋아했다. 상숙이는 다빈이를 쳐다보는 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았다. 다빈이를 향한 나의 애틋한 눈빛은 상숙이가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낯선 시선이었다.      

  내가 다빈이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소문은 우리 반을 넘어 우리 학교에 더 나아가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 동네 사람들에게까지 소문이 났다. 어른들은 나를 볼 때마다 ‘너 서울에서 온 여자애 좋아한다며’, ‘우리 불쌍한 상숙이는 어쩔고, 쯧쯧’ 등등. 그럴 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발 뼘했고 속으로는 ‘내가 왜 상숙이를 걱정해야 하지?’라고 투덜댔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다빈이와 사귀기도 전에 다빈이를 울리는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바닷가 마을이라 식탁에 올라오는 반찬 대부분은 물고기나 조개류, 아니면 해초류였다. 주로 엄마는 낙지볶음이나 고둥 무침을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싸주셨다. 그날도 나는 다빈이를 쳐다보며 점심 도시락 반찬으로 고둥 무침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고둥을 집다가 책상 위에 떨어뜨렸고 늘 그런 것처럼 책상 위에 있는 고둥 반찬을 손가락으로 마치 머리 꿀밤 때리듯 멀리 날렸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필 내가 날린 고둥 반찬이 다빈이가 먹고 있는 밥 위로 살포시 떨어졌다. 다빈이는 너무 놀란 목소리로 “지~~ 지렁이”라고 외치며 뒤로 나자빠졌다. 자세히 보니 손가락으로 튕긴 고둥 반찬은 하필 고둥의 내장 부분으로 누가 봐도 잘린 지렁이처럼 보였다. 그날따라 하얀 쌀밥 위에 떨어진 고둥의 내장은 영락없는 지렁이였다.


  서울 소녀 다빈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졸지에 나는 다빈이의 밥에 지렁이를 던진 파렴치한 괴한이 되었다. 아무리 지렁이가 아니라 고둥의 내장이라고 주장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바닷가 친구들도 모를 리가 없었다. 고둥의 내장은 마치 지렁이처럼 생겼다는 사실을. 하지만 남자애들은 이 기회에 다빈이가 나를 싫어하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 내 편이 돼 주지 않았고, 여자애들은 그렇지 않아도 남자애들이 서울 소녀 다빈이만 좋아했던 터라 모두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억울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친구 밥에 지렁이를 던진 파렴치한 놈이 된 지 얼마 후 나는 서울로 전학을 갔다.






  가끔 시골 어머님이 택배로 내가 좋아하는 고둥 무침을 보내어 먹을 때마다 그날의 사건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피식 웃으면 "아빠는 왜 고둥 무침을 먹을 때마다 그렇게 웃냐?"라고 딸이 묻는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우리 시골 친구들은 일 년에 한 번 명절 때마다 동창회를 한다. 새침데기 서울 소녀 다빈이는 구수한 사투리로 누구보다 억센 바다 아주머니가 되었고, 상숙이는 서울말을 하는 새침데기 여자가 되었다(내가 서울로 유학 간 후 중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전학을 갔다).      


  동창 모임 때마다 우린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각기 다른 의미로 말하며 술잔을 부딪힌다.

  그렇게 우린 오십 대의 중년이 되었다.                





이 글은,

이정림 작가의 '아까시 꽃술'이라는 서정수필을 읽고 유년 시절의 나를 회상하며 써 본 습작 서정수필(?)입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 박지인 감독의 영화 '전학생', https://blog.naver.com/dawon5240/221412158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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