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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Dec 11. 2023

교복을 꼭 입어야 합니까?

옳다고 생각한 바를 추진하는 방법

내일은 학급 회장, 부회장, 학생회 임원 모두 모여 진행하는 학생 대의원회의가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교복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본 것입니다.



올 6월에 우리 학교의 교장이 되고 싶다고 지원한 선생님들의 학교경영계획서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저 또한 학생, 학부모, 선생님 앞에서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제가 교장이 되면 이렇게 행복한 학교를 만들겠다'라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때 학생 한 명이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이 되신다면 지금처럼 교복자율화를 추진하겠습니까?"

저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많이 당황했었습니다. 000 고등학교 관련하여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교복자율화를 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음~ 절차에 따라 교복자율화가 학생, 학부모, 선생님 모두가 합의한 결과라면 당연히 따라야 하겠지요."

처음 듣는 내용이지만 혹시 제가 실수로 놓친 것일 수도 있으니 '절차에 따라 학교구성원 모두 합의한 결과라면'이라는 전제조건을 달고 답변하였습니다. 물론 학생들은 지원자의 깊은 속뜻을 몰랐을 것이고요. 


2023.9.1. 교장이 되어 첫 출근을 하였습니다. 

새로운 교장이 누구인지 알리고 우리 학생들 얼굴도 보고 싶어 정문에 나가 등교하는 학생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직 취임식 전이라 처음 보는 사람일 텐데 모두 반갑게 인사해 주어 너무 기뻤답니다. 그런데 정말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 깜짝 놀랐습니다. 교복 입은 학생은 손을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학생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학교이구나'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에서 교복을 입지 않고 자율복장을 하는 것이 맞나?' 더 정확한 고민의 지점은 '교복을 입어도 되고 안 입어도 되는 그래서 거의 모든 학생들이 자율복장(사복?)으로 학교에 오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깊어졌습니다. 


고가의 명품 패딩을 입고 다녀 학생 간 위화감이 조성된다.


말 그대로 학생들이 입고 등교하는 옷이 너무 자유롭습니다. 어떤 학생은 잠옷인지 아니면 외출복인지 구분이 안 되는 옷을 입고 등교합니다. 뿐만 아니라 너무 고가의 옷 소위 명품옷을 입고 오는 학생도 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든지 그건 개인의 자유라고 말하기에는 다른 학생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어쩔 땐 학생들이 경쟁하듯 값비싼 옷을 입고 다닌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겨울철엔 고가의 명품 패딩을 입고 다녀 학생 간 위화감이 조성되어 좋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우리나라는 교복을 무상으로 지원합니다. 무상지원 금액이 개인당 30만 원이고 신입생이 200명 정도 되니 총 6천만 원의 예산이 소요됩니다. 당연히 이 돈은 우리 부모님들이 힘들게 납부한 세금입니다. 이런 막대한 돈을 지원받아 구입한 교복을 평상시에는 입지 않고 졸업사진 찍을 때나 한 번씩 입는다는 것은 낭비입니다. 이럴 바에야 교복 지원을 받지 않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소수의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다닙니다. 문제는 학교규정에 따라 성실히 교복을 입고 수업받는 학생들이 오히려 소외감이 든다는 사실입니다. 교복 입는 학생이 저에게 한 말입니다. 


학교 내에서는 외부인과 밖에서는 타학교 학생 그리고 일반인과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요즘 무단으로 학교에 출입하여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외부인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작업복 같은 복장을 입고 있는 사람이 있어 당연히 외부인인 줄 알고 "어떻게 학교에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저 학생인데요."라고 대답하여 서로 민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200백 명이 넘는 학생들의 얼굴을 선생님은 모른답니다. 학교 밖에서도 저 아이가 우리 학교학생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됩니다. 



교복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 지금 함께 다니는 동기
그리고 학교에 입학할 후배 사이를 연결해 주는 통로이다.


교복은 이 학교를 졸업한 선배, 지금 함께 다니는 동기 그리고 이 학교에 입학할 후배 사이를 연결해 주는 통로입니다. 지금처럼 교복을 입지 않는다면 000 고등학교의 소속감, 동질감, 연대의식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장자율화는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교복자율화에 대한 교육공동체의 의견수렴 과정은 없었다.



내년부터 교복을 제대로 입고 학교에 다니자라고 결심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학교에는 학생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일명 '000 고등학교 학교규칙'입니다. 이 규칙에는 '000 고등학교 학생은 정해진 교복을 입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알아보니 교복자율화에 대한 교육공동체의 의견수렴 과정은 없었습니다. 그럼 왜 지금처럼 복장을 자율화하는 학교가 됐을까요?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때문입니다. 감염병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다 보니 교복을 입을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코로나가 종식된 엔데믹의 상황에서도 온라인 수업을 하는 것처럼 교복이 아닌 자유 복장을 하고 등교를 하였고, 학교는 어찌 된 영문인지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등교하여 교복(복장)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24학년도부터는 교칙대로 교복을 입고 학교에 오기 바랍니다. 

'1년 동안 자유롭게 복장을 입고 다닌 학생들이 과연 내년부터 교복을 제대로 입고 다닐지 걱정입니다.'라는 선생님과 학생회 임원들의 염려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합니다. 

내년에 2학년과 3학년이 될 재학생들은 교복을 1개 이상 입고 다니길 바랍니다.  물론 학교장은 모든 학생들이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다니길 희망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입니다. 최소한 학교에서 외부인과 구분이 될 정도로, 학교 밖에서는 우리 학생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교복을 입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1학년 신입생은 교칙대로 교복을 단정히 입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재학생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입니다. 잘 지켜줄 것이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매우 이상적이지만 교장이 바라는 한 가지는, 교복을 입을 때, '나는 000 고등학교의 자랑스러운 학생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학교에서 학생답게 생활할 것이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 당연히 여학생은 교복 바지(남학생은 치마를??)를 입어도 되고, 교복이 맞지 않으면 다른 비슷한 옷을 입어도 됩니다. 

* 학부모 대표, 학교운영위원에게 미리 교복에 대해 잘 안내하였고 교장의 생각에 적극 동의한다고 하였습니다.

* 반면 선생님은 매우 힘들어질 것입니다. 학생이 교복을 잘 입고 다니는지 살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일로 선생님의 본연의 업무인 수업(준비)에 방해를 받는다면 다른 방안도 강구할 생각입니다.

* 학생회 임원과도 교장실에서 미리 협의하였습니다. 

* 아무리 교육적으로 옳은 방향일지라도 구성원의 공감대 형성과 공유의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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