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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May 11. 2023

가르침의 보람

너희들이 행복하게 잘 살고만 있으면 그것이 가르침의 보람이다

"올해 6월의 한국은 온통 붉은 악마의 응원으로 들썩들썩했습니다. 이런 한국의 모습을 보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En junio de este año, toda Corea estaba emocionada por el apoyo de los Demonios Rojos. ¿Cómo me sentí al ver a Corea"



"Ah~ Fue fantástico ver con estos ojos la pasión caliente de los coreanos. Mi familia también estaba muy emocionada y salía a animar a la calle con una camiseta roja".

"아~ 정말 한국인의 뜨거운 열정을 이 두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너무 환상적이었습니다. 우리 가족도 덩달아 신이 나서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 응원을 나갔습니다."



"이번 한일 월드컵 8강 전에서 승부차기로 한국이 스페인을 이겼습니다. 호아킨이 승부차기에서 골을 못 넣었는데요? 마음이 정말 슬펐을 것 같습니다."

En los cuartos de final de este Mundial Corea-Japón, Corea del Sur venció a España en penalidades. ¿Joaquín no pudo marcar un gol en penalti? Me pregunto cómo me sentí en ese momento".



"Ha sido un partido muy injusto. En ese momento, el árbitro dio una decisión muy favorable solo a Corea del Sur. Marcamos un gol de campo pero fue cancelado. Esta es una decisión equivocada. De ser reconocido, definitivamente no llegaríamos a la tanda de penalIdades. Y el partido habría sido ganado por España".

"(너무 흥분하여 완전 새빨간 얼굴로) 너무 불공정한 경기였습니다. 당시 심판은 한국에게만 매우 유리한 판정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필드골을 넣었는데 취소됐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판정입니다. 이 골이 인정되었다면 당연히 승부차기까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경기는 우리 스페인이 이겼을 것입니다."








때는 우리나라가 한일 월드컵에서 기적의 4강을 이룬 2002년 12월 중순.

나는 우리 반 민수(가명)가 00대에서 주최한 '전국고교생언어능력경시대회'에서 스페인어 부분 대상(1등)을 수상한 덕분에 민수와 함께 지도교사로 스페인 대사관의 초청을 받았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내 머릿속에 민수는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학생이다. 어릴 적 스페인 주재원으로 있던 부모를 따라 몇 년을 살다 온 학생으로 정열과 무적함대의 나라 스페인 사람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던 아이였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서 살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민수는 참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다. 특히 이성친구와의 만남은 당시 학교문화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그렇지만 스페인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을) 가벼운 애정표현(?)을 하다 적발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학생부에 가서 담임교사인 내가 잘 지도하겠다고 말하고 징계를 받지 않고 넘어간 경우가 종종 있었다(아마 민수는 이 사실을 모를 것이다).

 

무적함대를 자랑하는 스페인에서 살아서인지 민수는 함대가 적을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마치 딴 사람이 된 듯 열정적으로 하였다. 특히 스페인어 말하기 대회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마치 영화 '조로'에 나오는 안토니오 반데라스(Antonio Banderas)를 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 표정과 몸짓은 환상적이었다.  

이런 민수는 스페인어로 하는 외국어능력경시대회에 참가하기만 하면 1등은 따논 당상이었다.



전국대회에서 1등을 한 그해 겨울 스페인 대사관에서 중고등학생부, 대학생부에서 3위까지 입상한 수상자와 지도교사를 위해 축하의 저녁만찬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우리 학교는 스페인어를 지도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담임교사인 내가 지도교사 자격으로 대사관에 갔다. 대사관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나는 이때다 싶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민수와 함께 대사관에 갔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reader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589




연예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있는 대사관 건물 안은 밖에서 본 것과는 달리 스페인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들이 스페인스러웠다(웠던 것 같다). 한가운데에 수영장이 있었고(지금 알아보니 작은 연못이었다) 주변에는 스페인산(?) 나무와 풀들이 있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학생과 지도교사들은 일찍부터 도착해 있었다.


대사와 그의 부인과 딸은 우리를 보자 반갑게 환영해 주었다. 스페인어로. 거실에는 직원들이 처음 보는 다양한 음식을 내오고 있었다. 나는 처음식들을 보면서 군침을 흘리고 있었고 내심 모든 음식들의 맛을 보고야 말겠다는 물욕을 숨기는데 힘들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기대와 다짐과는 달리 대사관에서의 저녁만찬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의사소통 때문이었다. 나와 민수는 대사와 얘기할 때만 통역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일 테니 통역이 필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이 완전 빗나갔다. 거기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 스페인어로 대화를 하였다.  나만 제외하고. 심지어 한국 사람끼리 대화할 때도 스페인어로 하였다. 학생끼리 교사끼리 교수끼리(대학생 지도교사) 모두 모두 전혀 알 수 없는 언어로 소통하였다. 나는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꿰다 놓은 보릿자루'가 진정 무슨 의미인지. '군중 속의 고독'이 무엇인지. 결이 다르지만 마르크스의 인간으로부터의 소외가 무슨 의미인지를 온몸으로 느꼈다.


자꾸 움츠려 들고 작아지는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직원들이 차려놓은 음식들을 며칠 굶은 사람처럼 씹지도 않고 삼켰다. 사실 그때 나는 음식의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대사가 혼자 음식을 먹고 있는 나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모른 척했으나 대사관은 내 코 앞에까지 나타나 말을 걸었다. 당연히 스페인어로. 아마도 대사는 그날 모인 모든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여 당연히 나도 잘하는 줄만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나는 한국말만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애국자였다.

 

당황한 나를 발견한 구세주 민수가 곁에 다가왔다. 나는 당당해지기로 마음먹고 마치 내가 스페인어를 잘하는 사람처럼 스페인 대사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고 한국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물론 내가 한국어를 하면 바로 옆에서 민수가 동시통역을 해주었다. 그날 나는 대통령이 외국순방을 나가서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그 나라의 대통령과 당당하게 대화하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날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하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던 것은 기억한다. 기분이 별로였던 이유는 초대받은 한국사람들이 스페인 대사 가족들에게 너무 낮은 자세로 임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대사 가족들은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게 말과 행동을 하는데 거기 모인 학생과 교사, 교수들의 태도들이 왠지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난 그날 매우 무례하게도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 우리나라가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이겼을 때의 상황을 물었던 것이다. 당연히 해서는 안 될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질문을 해서라도 우리가 스페인을 축구로 이겼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싶었다. 축구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스페인에는 세계적인 축구클럽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메시가 스페인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도. 그날 나는 축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대사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서 도발하였던 것이다.  





축구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날 내 곁에서 내가 마치 대통령이 된 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스페인어 동시통역을 훌륭하게 해 준 민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민수 덕분에 그날 나는 가르침의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학교에서 민수는 꽤나 골치 아픈 학생이었다. 자유분방한 성격과 행동으로 학교규칙을 자주 어기는 아이였다. 하지만 담임교사인 나는 민수가 어긋나지 않고 삐뚤어지지 않게 하려고 부단이 노력했었다. 민수가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다독여주고 진로와 진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당시에는 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에 대한 특별전형이 있었다. 어학 능력이 좋은 민수는 스페인어뿐만 아니라 국어도 잘했다. 민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소위 말하는 SKY의 한 학교의 대학생이 되었다.

 





가르침의 보람이 뭘까? 물질적인 대가일까? 아니면 정신적인 만족감일까?


이삼십 대 젊은 교사 때는 그렇게 애정을 갖고 지도한 학생들이 졸업 후 아무런 연락이 없거나 학교에 찾아오지 않으면 엄청 많은 회의감이 들곤 했다. 심지어는 배신감도 느꼈다.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가르쳤는데?"


흐트러진 마음을 잡아 공부에 전념시키기 위해 (남)학생들과 함께 삭발을 하는 쇼맨십도 기꺼이 보여줬고,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쉬는 주말에도 학생들과 함께 했고,

형편 어려운 학생을 도와주기 위해 작은 돈이지만 보태주기도 했고,

언제든 찾아오면 주머니 털어 맛있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줬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기 위해 밤늦게까지 수업준비를 했던 것들을 생각하며 "어떻게 너희들이 나를 잊어버릴 수 있지?"라고 화도 냈었다.  


하지만 이런 잘못된 생각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바뀌기 시작했다.

가르침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지 어떤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졸업 후 찾아오지 않아도, 연락 한 번 없어도, 가르친 나를 잊어버려도
너희들이 행복하게 잘 살고만 있으면 그것이 바로 가르침의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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