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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May 03. 2023

가르침의 용기

교사가 가르침을 사랑하면 할수록 그것은 가슴 아픈 작업이 된다.

ISFJ의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치(덕목)는 '용기'입니다.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사람 그것도 내가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곁에 있는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란 '나에게서 너에게로 그리고 우리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용기'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다짐과 두 주목 불끈 짐이 필요합니다.



삶에서 제게 용기를 준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아들러의 심리학을 대화형식으로 풀어낸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와 파커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입니다.

『미움받을 용기』는 인간관계에서 겪고 있는 나의 고민을 풀어주는 데 용기를 준 책이고,

『가르칠 수 있는 용기』는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내게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용기를 준 책입니다.  


출처 : https://pixabay.com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마치 소방관이 불을 끄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감춰진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불을 꺼야만 하는 소방관도 불길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파커 파머는 교사에게 필요한 용기를 이렇게 말합니다.

 


"교사가 가르침을 사랑하면 할수록 그것은 가슴 아픈 작업이 된다.
가르침의 용기는 마음의 수용 한도보다 더 수용하도록 요구당하는 그 순간에도 마음을 열어 놓는 것을 말한다."






"선생님 어떡해요? 우리 용수(가명)가 경찰서에 끌려갔어요. (흑흑)"


"네? 왜 용수가 경찰서에 갔는데요?"


"어떤 여자를 성폭행했다고 잡아갔는데, 용수는 절대 그런 적 없데요."


교사 2년 차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하고 있었는데 늦은 밤에 용수 어머니께서 급하게 저를 찾는 전화가 왔습니다. 갑자기 경찰이 집에 찾아와 자녀가 성폭행을 했다고 하면서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홀로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가 너무나 당황하여 제일 먼저 저를 찾은 것입니다.


우리 반 학생 용수는 몸무게 120kg 넘는 아이였습니다.

당시 20대 후반의 저와 같이 있으면 담임인 나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였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는 처음 우리 반 교실에 들어오는 여자 선생님은 용수를 무서워하기까지 했습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 맞는 의자가 없었고 책상도 한쪽 다리만 들어가고 나머지 한쪽 다리는 어쩔 수 없이 책상 밖에 내놓아야 했습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선생님들은 앉은 태도가 불량하다고 담임인 나한테만 말하고 감히(?) 용수에게는 말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험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용수의 장래 희망은 유치원 선생님이었습니다. 고3이라 용수의 진학 상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 용수야? 너는 어느 대학에 가고 싶니?"


"네 선생님 저는 유치원 선생님이 될 수 있다면 어떤 대학이라도 괜찮습니다."


"(농담으로) 헐 용수야? 네 외모로 유치원 선생님되면 아이들이 엄청 무서워할 텐데, 동료 선생님들도 그렇고"


"허허 그때까지 100kg 이하로 몸무게를 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유치원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을 더 잘 보호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좋다. 지금 성적으로는 조금 부족하니까 우리 더 열심히 해보자!"


아이들을 좋아하는 용수는 심성이 고운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모 때문에 인근 불량배들이 용수를 가만히 나 두질 않았습니다. 성폭행 혐의로 경찰서에 붙잡혀 간 것도 불량배 형들과 함께 주점에 갔다가 용수는 밖에서 망을 보고 형들이 성폭행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붙잡힌 형들이 용수가 그랬다고 진술하는 바람에 붙잡혀 갔습니다.

 

누가 봐도 용수가 그런 행동을 했고 주도하진 않았더라도 가담한 사실은 명백한 상태에서 담임교사인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용수와 어머니는 믿고 의지할 사람은 담임인 저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용수의 평소 학교생활을 토대로 용수의 말을 믿기로 했습니다.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용수가 경찰 조사와 법정에서 심판을 받을 때, 저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용수의 태도가 어땠는지를 설득하여 자발적으로 작성한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저 또한 법원에 출석하여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다행히 법정에서 진실이 밝혀져 용수는 보호감찰 처분만 받았습니다. 본인 스스로도 잘못된 행동에 대한 죗값은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용수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장학사님, 제자라고 하는 분이 교육청에 찾아왔습니다."


장학사가 된 첫 해에 어떤 사람이 제자라고 하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보자마자 우리반 용수였습니다. 15년이 지났어도 살이 빠진 용수를 금방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용수는 저를 한참 찾았다고 합니다. 교육청의 스승찾기에도 문의해 보고 모교에도 알아봤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제가 교육청에 근무한다는 걸 알고 한걸음에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돌아가는 길에 지금은 결혼해서 작은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면서 노란 보자기에 곱게 묶인 한우 세트를 놓고 가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 막심한 행동이지만, 당시에는 가져온 한우 세트를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장학사가 된 지 얼마 안 됐고, 김영란법도 시행되고 있는 시기이었으니까요. 업무 관계가 전혀 없는 졸업한 제자가 가져온 선물은 받아도 되는 줄 나중에 알았습니다.

값비싼 한우가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용수가 15년이 넘어서까지 담임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정성스레 담았을 그 마음과 용기를 생각하니 바보 같은 제 행동이 후회스러웠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은 모두 교사입니다.

특히 공교육의 최일선에서 학생들과 만나는 학교 교사는 항상 마음의 수용 한도보다 (자의든 타의든) 더 수용하도록 요구당합니다. 이때 교사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마음을 열어 놓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파커 파머가 말한 '가르침의 용기'입니다.



학교폭력으로 학생과 학부모에게 무시와 협박을 당해도 당당해지는 용기
수업 시간 옆 친구에게 선생님을 욕하는 소리를 들어도 다수의 학생을 위해 못 들은 척하는 용기
(북한이 그렇게 무서워한다는) 중2 학생들의 욕설과 무시에 (부르르 떨리지만) 침착하게 대응하는 용기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힘들게 학교를 다니는 아이를 보듬어 감싸 안을 수 있는 용기
바보 같은 정치인이 정치를 잘하지 못해도 묵묵히 교실에서 미래세대를 위해 수업을 하는 용기
부모의 갑질에도 그의 자녀에게는 공정하고 정의롭게 교육하는 용기
교권이 땅에 떨어져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자존심을 잃지 않을 용기


출처 : https://pixabay.com


어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만 용기가 필요하겠습니까? 하지만 아이들을 가리치는 사람이라면,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찰나 속에서 영원을 볼 수 있습니다.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중에서)


이것이 바로 가르침의 용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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