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쓸모없는 아이는 없습니다.
"차렷! 충성! 000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윤석이구나. 오늘도 멋진 신발 신었네."
"네, 안녕히 계세요."
윤석(가명)이란 학생이 있다.
윤석이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눈에 나만 보이기만 하면 쏜살같이 뛰어와 혼잣말로 '차렷'하며 군기가 바짝 든 해병대 군인처럼 큰 소리로 '충성'을 외치는 아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교육장이 학교 방문을 와서 복도에서 교감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마침 윤석이가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나오다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짐작이 가고도 남아 윤석이에게 오지 말라고 손사례를 치려는 찰나, 이미 내 앞에서 폼을 잡고 있었다.
"(혼잣말로) 차렷!, 충성! 000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어어~ 그래 윤석아, 화장실 갔다 오는가 보다. 얼른 교실에 들어가야지?"
"충성! 네 알겠습니다."
이 장면을 처음 본 교육장님은 많이 당황하셨다.
"허허 000 학교는 학생들 인사가 '충성'인가 봅니다. 학생들이 군기가 바싹 들었는데요."
교육장님은 농담을 하셨지만 얼굴을 보니 많이 놀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겉모습만 보면 윤석이는 평범한 학생이다. 오히려 키가 크고 얼굴도 아이돌처럼 잘생겨서 외모만 보면 눈에 띄는 아이다. 물론 윤석이가 가장 좋아하는 형광색의 운동화도 트레이드 마크이다.
겉으로만 보면 (물론 모든 학생들이 그렇지만) 윤석이는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윤석이는 특수교육대상자이다. 드리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우영우처럼 서번트 증후군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윤석이가 잘하는 것이 있다. 바로 달리기다. 작년에 00장애학생체육대회에서 은메달을 딸 정도로 달리기 소질이 남다르다. 점심시간만 되면 운동장 한쪽에서 장해학생을 도와주는 사회복무요원과 함께 항상 달리기 연습을 한다. 말이 연습이지 그냥 운동장 저쪽 끝에서 이쪽 끝으로 전력 질주하는 것이 다이다. 하지만 표정과 자세만큼은 흡사 단거리의 제왕 '칼 루이스'를 보는 듯하다.
"교장 선생님 저 여학생 좀 봐보세요. 남학생과 캐치볼을 하는데 공의 속도가 너무 빨라 놀랐어요. "
"정말 대단한데요. 공 던지는 폼도 좋고 속도가 너무 빨라 받는 남학생이 애 먹고 있는데요."
도연(가명)이는 학교에서 야구를 제일 잘하는 여학생이다.
이 학생을 볼 때마다 "야구천재 00이구나! 안녕"하고 인사하면 도연이도 방긋 웃고 좋아한다. 작년부터 점심시간만 되면 주로 남학생과 캐치볼을 했었는데 야구를 잘하는 체육선생님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런데 다행히 올해 새로 온 체육선생님 한 분이 야구 관련 책을 쓸 정도로 야구를 매주 좋아하고 잘하시는 분이 왔다. 나는 지난 2월에 학교 부임 인사 온 체육선생님에게 보자마자 우리 학교에 야구를 잘하는 여학생 한 명이 있으니 잘 부탁한다고 말했었다.
당연히 이 학생을 프로야구 선수로 만들어야지 하는 욕심은 없다. 학생 본인도 잘 안다. 단지 이 학생은 다른 건 못하는 데 유일하게 야구는 너무 재미있고 좋아한다. 다행히 올해 야구를 잘하는 선생님이 와서 이 학생의 재능을 잘 키워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교 다니기 싫어서 거의 학교에 오지 않는데 체육 수업이 든 날만 학교에 오는 학생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과 선생님이 그러는데 교과서는 안 갖고 다녀도 축구공은 늘 가지고 다니고 책상 밑에 축구공을 발로 까닥까닥 갖고 논다는 것이다. 이 학생의 진가는 작년 체육대회 때 축구경기를 할 때였다. 학생 반이 결승에 올랐는데 공을 갖고 뛰는 모습이 평소의 모습이 아닌 마치 프리미어리그에서 골든부츠를 받은 손흥민 같다며 선생님들이 너무 멋지다고 난리였다.
얼마 전에 영재학급 개강식을 했다. 이 학급은 주로 중1 학생들로 편성되는데 나름 국가에서 주관하는 영재성 검사를 통과한 학생들이다. 물론 경쟁률이 그렇게 높지 않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영재학생이라는 타이틀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축하말을 건네는데 맨 뒤쪽에 앉아 있는 학생이 눈에 띄었다. 얼마 전에 이곳 브런치에 소개한 '00충'이라고 놀림을 받던 학생이었다.
https://brunch.co.kr/@yoonteacher/157
나는 축하말을 전하면서 일부러 그 학생에게 질문을 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이 대한민국 1%의 영재 학생들인가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영재학생이 된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영재교육진흥법에는 영재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영재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사람'을 말합니다.
자 그럼 여러분은 어떤 재능을 갖고 있는지 말해볼까요? 발표하겠다고 손을 많이 들었는데요. 그럼 저 맨 뒤에 앉아 있는 학생이 말해볼래요?"
"저는 관찰력이 뛰어납니다. 특히 친구들이 하는 눈짓, 몸짓 등의 행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볼 수 있습니다."
"아~ 00 이는 관찰력이 뛰어난 영재학생이구나. 맞아 모든 재능에는 00 이처럼 뛰어난 관찰력이 있어야 해........ 마지막으로 교장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너희들처럼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위해 학교는 특별한 교육을 제공한단다. 이 특별한 교육을 받은 너희들이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내가 잘나서' 훌륭한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면 안 된단다. 잠재력을 키우기 위해 특별한 교육을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이렇게 장황하게 우리 아이들의 사례를 소개한 이유는 저번에 말씀드린 '포정해우(庖丁解牛)의 교육'에 이어 '무용지용(無用之用)의 교육'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https://brunch.co.kr/@yoonteacher/139
장자는 책 곳곳에서 '無用之用'에 대해 다양한 우화를 들어 이야기합니다. 대표적인 우화만 소개합니다.
惠子謂莊子曰 子言無用 莊子曰 知無用而始可與言用矣 天地非不廣且大也 人之所用容足耳
然則厠足而墊之致黃泉 人尙有用乎 惠子曰 無用 莊子曰 然則無用之爲用也亦明矣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자네의 말은 쓸모가 없네.”
장자가 말했다.
“쓸데가 없음을 알아야만 비로소 쓸 곳을 얘기할 수가 있는 것일세. 땅은 넓고 크기 짝이 없지만, 사람들이 걸을 때 쓰는 것은 발로 밟는 부분분일세. 그렇다고 발을 재어 가지고, 그 밖의 땅은 땅 속 황천에 이르기까지 깎아내려 버린다면 사람들이 그대로 땅을 쓸 수가 있겠는가?"
혜자가 대답했다.
“쓸 수가 없지.”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쓸데없는 것의 쓰임도 잘 알게 되었을 것일세.”
- 장자, 잡편 -
사람들이 밟는 땅만 나 두고 나머지 땅을 깊게 파서 그 땅을 못 쓰게 한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밟는 땅(之用)은 밟지 않는 나머지 땅(無用)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쓸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밟지 않는 땅을 쓸모가 없다고 황천에 이르기까지 깎아 버리면 밟는 땅도 결국 쓸모없는 땅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학교에 있는 수많은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학 잘하는 학생은 수학을 못 하는 학생이 있기 때문에 빛이 납니다. 시쳇말로 "내가 성적 밑바닥을 깔아 주니까 너 같이 공부 잘하는 애들이 존재감이 있는 거야"라는 말입니다.
축구 잘하는 학생은 축구를 못 하는 학생이 있기 때문에 눈에 띄는 것입니다. 노래도 춤도 그림도 글쓰기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무용이 있으니까 지용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이런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너는 공부는 못 하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모두 너를 좋아하는구나"
"너는 축구를 못 하지만 응원을 기가 막히게 잘해서 선수들의 기를 잘 살리는구나"
"너는 수줍음이 많아 앞에 나서길 좋아하지 않지만 음식 만들기를 좋아해서 나중에 셰프가 되면 잘할 거야"라고요.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無用도 결국은 之用이 됩니다. 교육은 모든 학생들이 쓸모 있는 존재라는 자긍심을 심어주어 각자 꿈꾸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장자는 無用之用에 대해 또 이렇게도 이야기합니다.
혜자가 장자에게, "우리 동네에 개똥나무라는 큰 나무가 있는데 큰 줄기에 혹이 많이 붙어서 목수가 거들떠보지도 않고 쓸모가 없다"라고 하자,
장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살쾡이와 족제비를 보지 못했소? 먹이를 노리지만 동쪽 서쪽으로 뛰어다니며 다니다가 덫에 걸려 죽고 맙니다. 개똥나무라는 큰 나무가 쓸모가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지만, 광활한 들판에 왔다 갔다 하면서 햇빛을 피해 큰 나무 밑 그늘에서 편히 쉬고 있지 않소. 그 나무는 다른 나무들처럼 도끼로 찍히지 않을 것이오."
- 장자 제1편 소요유 -
우리가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살쾡이나 족제비는 덫에 걸려 죽게 되고, 예쁘고 작은 나무들은 목수들에 의해 도끼로 찍힘을 당하게 되지만, 오히려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개똥나무 큰 나무는 목수들에 의해 잘려나가는 일이 없고 오히려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쓸모 있는 나무이다.
이것이 바로 無用之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