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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Mar 28. 2023

포정해우(庖丁解牛)의 교육

학교교육의 본질은 '결을 따른 교육'이다

교사일 때는 교과서의 내용만 잘 주입시켜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하는 것이 좋은 교사인 줄만 알았습니다. 자칭 '일타강사'라고 자부하며 교과서는 거들 뿐 분필만 가지고 칠판의 좌측 상단부터 우측 하단까지 교과서에 나오는 동서양의 사상사들을 교재를 보지도 않고 써 가면서 열정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학생들이 힘들어하면 농담도 하고 가끔 노래도 불러주면서 수업에 집중하도록 애썼습니다.


드라마 일타강사 스캔들


고3 담임을 오래 하여 자칭 입시지도의 배테랑 교사였습니다. 4년제 대학의 배치표를 보지도 않고 학생들의 성적만 보면 대략 어느 정도의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정시모집 배치표



하지만,

교사 시절 제게 붙은 일타강사와 입시의 배테랑이라는 수식어는 공부 잘하는 학생, 성적 좋은 학생, SKY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만 위하는 교육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부를 안(못)하는 학생, 공부보다 운동을 잘하는 학생, 명문대학 진학보다 만화 그리기나 랩을 잘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은 없었거나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미력하나마 우리나라 교육 발전에 도움이 되자는 큰 뜻을 품고 운 좋게 장학사가 되었습니다. 장학사가 되면 정말 선생님과 학생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줄 았았습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학교에 장학사가 오면 대청소도 하고 복도에 화분도 갔다 놓고 장학사 맞이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 장학사는 교장선생님보다 높은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장학사에 합격했다고 하니 평생 바닷가에 사신 시골 가족들이 축하 현수막을 마을 곳곳에 설치를 했을 정도니까요.

고향 친척분들이 제게 말도 하지 않고 마을 곳곳에 걸어둔 축하 현수막 ㅎㅎ


그런데 장학사는 그냥 교육행정을 하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학교 교육과정이 학생들을 위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장학을 해야 하는데 각종 행사와 업무 처리하느라 밤늦게까지 야근하면서 정작 중요한 학교를 돌아볼 기회가 많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학교의 관리자인 교장이 되어 교무실과 복도, 운동장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을 보면서

'학생들을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가?'

'학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교사는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교사 때 저는 주로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쳤습니다.

윤리 교과서에 수많은 동서양의 사상가가 등장하는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상가는 단연코 중국 전국시대의 '장자'였습니다. 장자를 읽고 수업을 하다 보면 이처럼 풍자와 해악을 위트 있게 표현하고 우리 인간 삶의 모습을 우화로 재미있게 풀어낸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장자의 내편 중 제3편 양생주(삶을 길러주는 주인)에는 포정해우(庖丁解牛)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포정(庖丁, 요리사)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하여 소를 잡는데,

포정의 손이 닿는 곳과 어깨를 기울이는 곳과 발로 밟는 곳과 무릎으로 누르는 곳은 사각사각 푸덕푸덕  칼질하는 소리가 울려 퍼져 음률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포정의 동작은 은나라 탕왕 때의 무악인 상림의 춤과 같았으며, 요임금 때의 무악인 경수의 합주와 들어맞았다.

문혜군이 말했습니다. “오, 훌륭하도다. 그 기술이 어떻게 여기에까지 이를 수 있단 말인가?”
포정이 칼을 놓고 대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이니, 재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해체할 때에는 보이는 게 모두 소이더니 3년이 지난 후에는 소의 온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고 눈으로는 보지 않아서 감각의 작용은 멈추고 정신이 작용하는 대로 따르는데, 소의 결을 따라 살과 뼈 사이의 큰 틈새를 가르고 골절 사이의 큰 구멍에 칼을 넣어 소의 생긴 그대로를 따라가므로 뼈와 힘줄이 얽혀 있는 곳(肯綮)에 부닥트리는 적이 없으니, 하물며 큰 뼈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sisatoday35&logNo=2214565044






교육은 진보도 보수도 없습니다. 학교는 교육의 본질을 달성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교육의 본질은 아이들 각자가 지닌 꿈과 희망을 잘 성장시켜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 각자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서는 장자의 '포정해우' 즉, '소의 결을 따라', '소의 생긴 그대로를 따라 살과 뼈를 가르는 것처럼' 학생 각자가 지닌 결을 따른, 학생 각자가 생긴 그대로를 따른 교육을 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제가 강조한 '결을 따른 교육'입니다.


교육학에서 강조한 맞춤형 교육과 개별화 교육은 결을 따른 교육의 하위 개념입니다. 맞춤형과 개별화 교육이 성적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결을 따른 교육'은 성적만 아니라 학생 하나하나의 성향, 기질, 환경, 재능, 꿈과 끼를 존중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교육을 의미합니다.


모든 자연 만물은 고유의 결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결을 따라 성장해야 하고, 결을 따라 쓰여야 하고, 결을 따라 대우받고 교육받아야 합니다.


학생뿐만 아닙니다. 교사도 결이 다릅니다.

학생에게 결을 따르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결이 다른 교사에게 그 결에 맞는 도움과 대우가 필요합니다.


이게 진정 학교교육의 본질이며 우리 교육이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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