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팔순이 되는 부모님은 시쳇말로 '가방 끈'이 짧다.
부모님은 당신이 학교에 다니지 못한 恨을 자식들이 풀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셨다. 특히 장남인 내게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 그런 아들은 교사, 장학사, 교감이 되었고 지금은 매우 이른 나이에 교장이 되었다. 부모님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좋아하셨고 매번 동네잔치를 열어 마을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하였다. 故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동네에서 우리 부모님은 現 대통령의 학교장 임명장을 집안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거실 한가운데에 진열해 놓을 정도로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리고 박사 학위를 땄을 때는 마치 당신이 박사가 된 것처럼 박사모와 가운을 착용하고 마을 경로당에 가실 정도였다.
부모님은 비록 학교 다닌 기간이 매우 짧았지만 내게 보여준 삶의 지혜는 <월든>에서 보여준 데이비드 소로의 지혜 못지않게 컸다.
욕심부리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
부모님은 평생 바다와 함께 사셨다.
수만 가지의 얼굴을 한 바다는 때론 부처님처럼 인자하고 때론 사슴을 쫒는 사자처럼 무자비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바다는 고요하고 평화로워 모든 이의 마음을 진정시킨다. 하지만 거센 바람과 몰아치는 파도는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만큼 위협적이고 두려운 존재이다. 부모님은 자연이 허락하는 데까지만 바다가 주는 혜택을 받았고 만족하셨다. 지금 당장 바다에 나가 그물질을 하면 고기를 잡아 많은 돈을 벌 수 있음에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다렸다. 또한 바다 앞에서는 절대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셨다. 아버지는 내게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절대 자만하면 안 된다. 바다는 자만하는 사람에겐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릴 적부터 가끔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들을 봐 왔던 터라 아버지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했다.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는 말은 목숨도 가차 없이 빼앗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타인을 절대로 비방하거나 험담하지 않는다.
나는 부모님이 동네 사람들을 험담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동생에게도 물어봐도 다른 사람을 욕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엄마는 왜 다른 사람 흉을 보지 않아요?" 여동생이 물은 적 있다. "뭣하러 쓸데없이 다른 사람을 흉을 보겄냐?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렇겠지. 너도 다른 사람 말만 듣고 흉보면 안 된다."라고 어머님은 대답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은 동네에서 평이 좋다. 한 마디로 신망이 두터워 주변에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사람을 너무 믿고 신뢰하여 젊었을 때는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도 많다고 한다.
빚지고는 못 산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돌려준다.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듣었던 말이 있다.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빚지고 살아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사정이 어려워 빚을 졌다 하더라고 최대한 빨리 갚고 그 이상 돌려줘야 한다.'라는 것이다. 부모님이 말하는 '빚'은 물질적인 돈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도움까지 포괄한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들었다면 잊지 말고 반드시 그 배로 갚으라는 말이다. 누군가가 당신 자식에게 돈 만원을 줬다면 부모님은 절대 잊지 않고 그 사람의 자식에게 더 많은 용돈을 주셨다. 만약 용돈을 준 사람이 자식이 없다면 그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렸고, 부모님도 계시지 않으면 명절에 소고기를 사다 주셨다.
.
.
.
"오빠, 시골 세탁기가 고장이 났어. 친구가 집에 들렀는데 세탁기가 고장 나서 엄마가 직접 손빨래를 하고 있다고 하네"
"이그. 세탁기가 고장이 났으면 자식들한테 전화를 하셔야지. 힘들게 손빨래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 우리가 모은 적금으로 얼른 세탁기 사드려"
"응 알았어 오빠"
.
.
"오빠, 세탁기 사준다고 했더니 엄마가 엄청 좋아하셔. 그런데 엄마가 시골에 당신 집만 건조기가 없다고 말씀하시네. ㅎㅎㅎ"
"그럼 요즘 새로 나온 세탁기와 건조기 일체형 사드려"
연로하신 부모님은 여전히 자식에게까지 부담주기 싫어하신다. 아무리 우리가 말해도 소용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