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향에 계신 아버지의 일흔아홉 번째 생신이다.
몇 년 전,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의 생신을 깜빡 잊은 적이 있다. 그날 이후 여동생은 매년 아버지 생신 전날이면 카톡을 보낸다. "오빠, 내일 아빠 생일이야."
출근하자마자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바빠서 찾아뵙지도 못하고 말로만 축하드려서 죄송해요." 그런데 아버지는 내 사과를 들으시는 대신, 들뜬 목소리로 다른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니다, 어제 며느리한테 선물 받았다. 택배로 왔더라" 아버지의 목소리엔 기쁨이 가득했다.
아내가 보낸 선물이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의 거칠어진 피부를 걱정하며, 아침저녁으로 바를 로션과 영양제를 챙겨 보낸 것이다. 그냥 보낸 것도 아니었다. 연로하신 아버지가 헷갈리지 않으시도록, 하얀 라벨지에 '아침 로션', '저녁 영양제'라고 큼지막하게 글씨를 써서 병마다 붙여 놓았단다. 아버지의 피부가 유난히 붉었던 지난 2월 설날의 기억을 아내는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 일을 하느라 트고 붉어진 시아버지의 얼굴을 가만히 눈여겨보았던 아내의 마음이, 그 작은 이름표들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버지가 전해주시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아내가 고맙고, 또 고마웠다. 요즘 학교 일로 정신없이 바쁜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시아버지의 생신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챙긴 것이다. 아내도 나와 똑같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퇴근하면 지쳐 쓰러지기 일쑤인 일상 속에서, 시간을 쪼개 화장품을 고르고 영양제를 사고, 하나하나 라벨지를 붙여 상자에 담았을 아내의 모습이 그려졌다.
전화를 끊고 창밖을 보았다. 내 마음도 햇살처럼 따뜻해졌지만, 동시에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나는 아내처럼 처가 부모님께 세심하지 못했다. 장인, 장모님의 거칠어진 손이나 그늘진 얼굴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아내가 내 부모님께 한 것처럼, 나도 아내의 부모님께 진심을 다해 마음을 전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를 꼭 안아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