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에 걸터앉아 석양을 보던 중, 저 아래 배회하고 있는 검은색 고양이가 눈에 띈다. 온통 사람들뿐인 거리를 홀로 거닌다. 이따금씩 지나가며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마저도 찰나에 불과하다. 본디 독립적인 습성을 가진 고양이이거늘, 그는 왜 저리 외로워 보이는가.
어린 시절부터 나는 부모님을 따라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자연스럽게 여행을 좋아하게 됐고, 기회가 되는 대로, 혼자서라도 여행을 다니고 있다. 최근 수년간 하나의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은 한달살기도 해 보게 되면서, 그 맛을 깨달아 한달살기가 여행의 진수라고 이야기하고 다닐 정도의 '한달살기홀릭'이 된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포르투에서 한달살기를 하고 있다. 한달살기를 함에 있어 또 포르투를 선택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지난 포르투 한달살기가 만족스러웠다는 것이고, 이번 여행을 함께 하게 된 친형에게 포르투 한달살기를 경험시켜주고 싶다는 것, 그리고 포르투가 익숙하다는 것이었다.
유럽의 한 도시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누군가에게 '익숙함'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보통의 경우엔 여행지로서 잠깐 머물다 가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포르투라는 도시를 관광으로서, 한달살기로서 경험해 봤기에 나는 포르투를 익숙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도시에 익숙해지는 경험은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구글 지도를 보고 길을 헤맬 때 아무것도 보지 않고 길을 찾고, 누군가는 배낭을 메고 바삐 걸을 때 주머니에 손 푹 찔러 넣고 여유로이 거닐고, 누군가는 일정 때문에 가보지 못할 스폿을 밥 먹듯이 가고, 누군가는 한 번쯤 갈법한 카페의 단골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바로 한달살기이다.
포르투는 나에게 있어 이미 익숙하기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달살기 여행지로 포르투를 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작년의 포르투 한달살기 때만큼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를 찾으려 곰곰이 생각해 보다 처음 생각해 낸 이유는 여행에 질렸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9월부터 지금 글을 쓰는 시점인 7월까지 11개월간 포르투,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 다시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또다시 포르투까지 꽤나 바삐 여행을 해왔다. 그럼에도 포르투로 떠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여행, 여행 노래를 불러왔던 터라 그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오랜만에 학교를 다시 다니면서 전보다 외향적으로 바뀐 탓일까. 아무리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한들 기본적으로 독립적이고 혼자 있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이것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일몰 속 홀로 있는 검은 고양이를 보고 깨달았다. 아, 나는 결국 이방인이었구나.
한달살기가 특별한 경험이라고 느낀 것은 단순히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 이방인, 노바디 (Nobody)로서 한 도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닌 내가 점차 이 도시의 한 구성원, 섬바디 (Somebody)로서 그 도시에 머물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숙소의 주인, 즉 현지인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동네 마트 직원이 날 알아보고, 주변 카페의 메뉴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여행자로 하여금 자신이 여행자가 아닌, 이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한 개인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나는 그 착각 속에서 포르투를 어쩌면 건방지게도 '익숙하다'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 밤, 그 거리를 배회하던 검은 고양이는 지루해서, 혼자여서, 혹은 그 거리, 이 도시가 익숙해서 외로웠던 것이 아니다. 인간 사회 속 그 고양이는 완벽한 이방인, 노바디 아니 낫띵 (Nothing)이었기 때문이다.
그 고양이가 거리를 헤맬 때, 나는 익숙함이라는 착각과 이방인이라는 실체, 그 사이를 헤맸다. 구성원, Somebody라는 착각과 이방인, Nobody라는 시선 사이의 괴리에 고민하고 있었다.
이를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머릿속이 깨끗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고, 다시금 포르투라는 도시의 여유로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나는 한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던 완벽히 이방인이다. 이것을 인정한 지금의 나는 낯선 어떤 나라든, 어떤 도시든 이방인으로서 경험할 준비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