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에서 한 물체의 움직임의 방식을 기술하는 방식에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뉴턴의 고전역학, 다른 하나는 윌리엄 해밀턴의 해밀턴 역학이다. A라는 물체가 B에서 C로 이동했다고 가정하자. A의 운동을 고전역학에선 A가 B에서 C로 이동하는 매 순간 작용한 힘이 결정한다고 기술한다.
그에 반해 해밀턴 역학에선 A가 B에서 C로 이동할 수 있는 모든 경로, 모든 경우마다 각각 다른 물리량, 즉 '작용량'을 필요로 하는데 그중 가장 작은 작용량을 필요로 하는 경로로 물체가 운동한다고 기술한다.
첫 문장에 중독을 경계한다고 하고는 갑자기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물리학에 대해 이야기한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중독'을 정의하기 위함이다. 나는 '중독'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몰입'이라는 상태로 이동시키기 위해, 변화시키기 위해 '최소의 작용량을 필요로 하는', 다시 말해 가장 '쉬운'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료한 시간을 잘 견디지 못한다는 보편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몰입은 시간의 흐름에 무뎌지게 만든다. 그 시간이 짧던 길던 사람들은 무료함을 이겨내기 위해 무엇인가에 몰입하고자 한다.
그런데 몰입하기 위해 선택한 그 행위가 가장 쉬운 행위라면, 그리고 그 행위가 가장 쉽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그 행위를 통해 몰입이라는 상태에 빠진다면 그것이 중독이라고 본다. 몰입으로 가기 쉽다는 것을 중독성이 높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중독의 예를 들자면, 어쩌면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의 쇼츠 같이 짧고 강렬한 영상을 주기적으로, 혹은 연속적으로 보는 것도 하나의 중독라고 본다. 자기 전 그 몇 분의 무료함을 못 버티는 것이다. 또는, 그저 웃기기만 한 게임이나 인터넷 방송으로 하루의 시간을 보내는 10대 혹은 흔히 말하는 백수도 그 예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나로 들자면, 올해 4월 즈음, 하루에 세 시간도 수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혹은 밤새는 날이 대략 2~3주간 이어진 순간이 있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시간이 나면 부족한 수면시간을 채웠기 때문에 수면패턴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밤에 잘 수 있는 상황임에도 잠에 들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거의 매일 밤 음주라는 매우 쉬운 길을 통해 수면이라는 몰입에 빠지고자 했고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독에 근접했던 것 같다.
이렇듯 사람은 몰입하기 위해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은 가장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인간의 먼 조상들은 생존하기 위한 길 중 가장 쉬운 길, 가장 유리한 길을 선택하며 뿌리내려 왔다. 인간사회는 현대에 들어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인간이 가진 유전자, 본성은 그런 속도로 진화하지 못한다. 따라서 여전히 인간은 가장 쉬운 길을 선택하려고 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현대 사회에서 가장 쉬운 길은 동시에 가장 영양가 없기도 하다.
예를 들면, 어떤 한 사람이 계속해서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자. 이때 그 사람의 내면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자기 방어기제가 발동한다. 만년 전이었다면 정신적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생존에 가장 유리하게 작동하는 본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쉬운 길에 불과한 행위를 하게 될 뿐이다. 예컨대 남 탓, 환경 탓, 사회 탓 같은 것이다. 성공하지 못한 이유와 문제를 자기 자신에서 찾는 고통스러운 일보다 훨씬 쉬운 길이다. 윗 문단들의 예와 마찬가지로 이 쉬운 길도 중독적이다.
나는 위에서 '중독'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몰입'이라는 상태로 변화시키기 위해 가장 '쉬운'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상태라고 정의했지만, 쉽게 바꿔 말하자면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은 중독적이라는 것이다.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은 내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도록 한다.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발전적이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쉬운 길은 나라는 사람을, 나의 자아를 나약하게 만든다. 이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본능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기에 어렵지만, 어렵기에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