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좋아해 넓고 얕은 인간관계를 쌓았던 학창 시절 (고등학교 입학 이전까지가 정확하겠다), 지금은 기억도 잘 안 나는 모종의 계기로 '그런 인간관계는 허상에 불과하구나, 내 삶에 필요한 사람은 좁고 깊은 인간관계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관계를 끊어냈다.
그러고선 나는 동굴로 들어갔다. 최소한의 연락만을 유지한 채 나의 모든 시간은 오로지 나에게만 허락했고 새로운 관계를 차단했다. 그 시기에 하필 또 코로나가 터지면서 그 상태는 지속됐다. 여행을 가기 위해 1년을 휴학했던 대학교에 복학하기 전까지 말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복학한 대학교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나의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고,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고, 서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그런 친구들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했던가. 맞는 말인 것 같다. 밝고 쾌활하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그 친구들과 함께 1년 정도 학교를 다니다 보니 나도 그렇게 변한 것 같다. 지금은 나도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고, 좋은 사람들 옆에 있고 싶어졌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을 별로 안 좋아했다. 내 사람이 아닌, 내 바운더리 안에 없는 사람들을 경계했다. 나는 그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내 사람들에게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항상 가면을 썼고, 냉소적으로 대했다. 어차피 내 첫인상은 항상 싸가지 없고 무섭고 차가운 이미지니까 '그럼 그렇지'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지독하게도 타인에 대한 관심을 끊고 살았다.
그렇게 해서 편한 것들도 많았다. 실제로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받는 일이 없었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야만 채울 수 있는 내면의 어떠한 부분들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올해 초에 친해진 그 학교 친구들도 놀라워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궁금해하고 친해지고 싶어 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의 관심사는 뭘까, 취미가 뭘까, MBTI는 또 어떨까,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까, 자신만의 어떤 스토리를 써내려 가고 있을까, 나랑 어떤 점이 비슷할까, 나랑 어떤 점이 다를까, 나한테 관심이 있을까? 있었으면 좋겠다, 날 안 싫어하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내 어린 시절처럼. 여행 가기 위해 1년 휴학했다던 그 시기에 일했던 교보문고에서 다시 알바를 시작했는데 거기서 새롭게 만난 사람들도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 아니, 좋은 사람들이다. 우연히 만난 이 사람들과 오래 만났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도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문득 나는 두려워졌다. 항상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란 어려운데, 좋은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어느 한순간, 단번에 일어난다. 마음은 그와 반대로, 새롭게 만날 땐 별 생각이 없기에 쉽지만 헤어질 땐 정도 주고 기억도 나눴기에 어렵다. 그래서 그 순간이 올까 두렵다.
지독하게 타인에게 무관심했던 시기의 나는 이런 고민,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의 마음은 항상 고요한 바다처럼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사막처럼 건조하고 삭막했다.
지금은 푸르른 숲과 같다. 모두에게 열려있고 진심을 다하고 따뜻하고 주는 것도 많다. 그러나 동시에 파도치는 바다와 같다. 걱정도 많고 상처도 많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답을 찾고 싶고, 그렇기에 너무 어렵다. 인간관계를 줄이고 차단하며 살기엔 내 마음이 너무 삭막해지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인간관계를 넓히고 사람들에게 정을 주고 살기엔 이별은 아프고 상처가 많아지고 내면이 요동친다. 중간 정도의 선을 지키기엔 가면을 쓰는 것 같고 내 진심이 아니기에 괴리감을 느낀다.
도저히 정답을 못 찾겠다. 그래서 위대한 철학자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염세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 본연의 행복을 좇은 쇼펜하우어는 해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과연 나에게 그 해답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실마리는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