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처음 만난 런던과 피아노

낯선 도시에서 시작된 작은 음악 이야기

by Yoontopia 윤또피아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특별히 재능 있는 아이도, 열심히 연습하는 아이도 아니었다.
그냥 피아노가 재미있는 아이였다.


내가 처음 런던에 갔을 때는 다섯 살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의 몇 장면들은 지금도 꽤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빨간 이층 버스, 지하철, 그리고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빅벤.
어디를 가든 모든 것이 신기했고, 어린 나에게 런던은 마치 새로운 세상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이곳이 작은 천국처럼 보였던 것 같다.


런던의 날씨는 지금이나 그때나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흐릿한 하늘, 잦은 비, 그리고 어딘가 우중충한 공기.


하지만 신기하게도 여름이 되면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된다.
햇살이 비치는 런던의 여름은 지금도 기억 속에서 꽤 환상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 내가 인상 깊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길을 걷다가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미소를 짓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어린 나이에도 그런 분위기는 꽤 따뜻하게 느껴졌다.


학교 친구들과의 생일 파티나 집에서 열리는 작은 파티들도 기억에 남는다.
서양인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놀던 시간들은 지금 생각하면 참 평화로운 순간들이었다.


부모님은 예술가가 아니셨지만 예술을 좋아하셨고, 지금은 나와 여동생이 각자 다른 분야의 예술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생각해 보면 꽤 신기한 일이다.


영국에 도착한 뒤 부모님은 집 거실에 낡은 중고 업라이트 피아노 하나를 들여놓았다.
어떤 브랜드였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피아노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꽤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어머니는 한국인 피아노 선생님을 찾아주셨고, 나는 약 3년 정도 레슨을 받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30대의 젊은 여자분이었고 굉장히 꼼꼼하고 다정하게 가르쳐주셨던 기억이 난다.


바이엘부터 시작해 작은 별, 그리고 단순한 버전의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곡들을 배우며
나는 자연스럽게 피아노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특별한 재능을 보였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 역시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 적은 없었다.
그저 어린아이들이 흔히 말하듯 여러 장래희망 중 하나였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나는 피아노를 아주 열심히 했다기보다는
그냥 재미있게, 놀면서 배우는 느낌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한 가지를 깨닫는다.

처음에는 실력보다도

피아노와 친구가 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어쩌면 그때 피아노를 ‘놀면서’ 배웠던 기억이
지금까지 음악을 계속하게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께 가장 감사한 일 중 하나는
어린 나이에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게 해 주셨던 것이다.


그 경험들은 어린 나에게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보여주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내가 여섯 살쯤 되었을 때
런던 시내를 걷다가 멋진 음악학교 건물들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도 나중에 이런 곳에서 공부하면 좋겠다.”


그때는 그저 어린아이의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훗날 나는 실제로 그곳에서 공부하게 된다.

Trinity_College_of_Music校舎.jpeg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이다.


Royal_College_of_Music_London_2020.jpg


그렇게 나의 첫 런던 생활은 약 3년 정도 이어졌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약 3년은 어린 시절의 짧은 꿈같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의 첫 해외 근무 기간이 끝나면서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또 다른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나는 영국과는 영원히 이별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앞으로 내 인생에 몇 번의 기막힌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귀국이 훗날 다시 나를 런던으로 돌아가게 만들 줄은..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음 글에서는 어린 시절 다시 돌아간 한국에서의 짧은 이야기와
그때의 피아노 학원 생활, 그리고 그 시절의 교육,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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