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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륜 Ian Apr 12. 2017

Microsoft에서 이직을 결심하다 - 2

실패를 맛봐야 정신을 차린다

    전 회사에서 같이 근무했던 매니저 D의 팀과의 인터뷰로부터 며칠 후 화요일 오전 9시.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며 핸드폰이 울렸다. D가 보낸 이메일이었다.

... I guess HRs will be reaching out soon but I wanted to be the first one to get back to you. News are not good and the loop decided to pass this time...

처음 몇 문장을 읽는 순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입에서 쓴 맛이 느껴졌다. D의 이메일에 의하면, 대부분의 면접관들은 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는데, 코딩 인터뷰에서 내가 현 직원들을 뛰어넘을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D의 회사의 채용 규정에는, 기존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평균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채용하지 않는다는 사항이 있다) 이번에는 불합격 통보를 내리기로 했다고 한다. 당황스러웠다. 불안했던 Object Oriented Programming/Design 면접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나름대로 잘 했다고 자신한 코딩 인터뷰에서 지적을 받다니... 돌이켜 생각해보니 두 번째 코딩 인터뷰의 면접관이 내 몇몇 질문에 대해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은 듯도 싶었다. 일단 착잡한 마음을 추스르고, D에게 답장을 보냈다.

빠른 업데이트 감사합니다. 면접 도중 애매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문제가 된 듯합니다. 제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고 면접관 분들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다만, 추천까지 해주셨는데 기대를 충족시켜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송한 마음, 또, 함께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흘려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좀 더 철저히 준비해서 다음에 다시 기회가 생긴다면 한번 더 도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메일을 보내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대한 당혹감과 분노가 가라앉고 나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D가 추천해준 덕분에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봐야 하는 전화 인터뷰도 건너뛸 수 있었고, 대면 인터뷰도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빠른 방법은 인맥이다. 아무리 판이 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테크 업계는 여전히 몇 다리 건너면 전부 다 아는 사이고,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다른 회사로 이직한 뒤에도 미래에 큰 힘이 되어준다. 혹시나 가고 싶은 회사에 아는 사람이 있어 추천을 받을 수 있다면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원할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면접 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추천인 역시 추천해준 지원자가 면접을 합격 후 회사에 조인할 때 적지 않은 금액을 보너스를 받기 때문에 일석이조인 셈이다. 단지, 추천한 지원자의 실력이 형편없다면, 추천인의 신뢰도에는 알게 모르게 금이 가기 때문에 확실히 통과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만 추천을 하고, 추천을 받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다.

이번 역시 D가 나를 신뢰해주었기 때문에 잡을 수 있던 기회였다. 다른 사람을 추천할 수도 있던 자리에, 한동안 연락을 주고받지도 않은 데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 인터뷰 준비를 조금만 하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을 거라며 응원해 준 D의 기대를 저버린 나의 나태함과 자만심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불합격 통보를 받는 첫 인터뷰 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내에서 사내 이동을 할 때 인터뷰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어도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사내 이동이라 까다롭게 보지 않아서였다는 것. 코딩 문제를 스스로 잘 풀었는지 못 풀었는지, 면접관이 내 접근 방식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내 인터뷰 스킬이 녹슬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제대로 준비를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LinkedIn을 통해 연락을 받은 리크루터들에게 답장을 보내 닥치는 대로 인터뷰를 잡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멍청하기 그지없는 접근 방식이다. 이런 '닥치는 대로 보는 인터뷰'는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이직을 위한 인터뷰를 가장 현명하게 준비하는 방법은, 정말 원하는 회사를 다섯 개 이내로 정한 다음, 가능한 비슷한 시기에 인터뷰를 볼 수 있도록 조율을 해서, 최대한 많은 옵션을 손을 들고 고민한 뒤 이직하는 것이다. 만약 인터뷰 시기가 어긋나 1순위 회사와의 인터뷰 이전에 2순위 회사에서 오퍼를 받게 되면, 오퍼에 대한 대답을 줘야 하는 시한 내에 1순위 회사와의 인터뷰 진행과정이 마무리되지 않아, 찝찝한 기분으로 어쩔 수 없이 1순위 회사 인터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또한, 회사를 다니면서 하는 인터뷰 준비는 두 달 이상 끌게 되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굉장히 피로해진다. 매일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뷰 공부를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어차피 갈 생각이 없는 회사들은 과감히 쳐내고, 오퍼가 들어왔을 때, 연봉이 현재와 같더라도 이직할 생각이 있는 회사들을 최우선으로 지원해서 진행하는 것이 맞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불합격의 쓰라림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고, 그냥 막무가내로 손에 닿는 대로 인터뷰를 신청했다. 그중에는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도, IPO를 앞두고 있는 중견 스타트업도, 이름만 대면 사람들이 다 알만한 대기업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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