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떠나려고 하는가
인터뷰 일정들을 잡아놓고 나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와 냉정하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렇게 마구잡이로 인터뷰를 보고 난 뒤에, 어디든 붙으면 나는 과연 옮길 생각이 있는 걸까? 내가 인터뷰를 보는 목적이 무엇일까? 그냥 단순히 이직을 하고 싶다는 사춘기의 소년 같은 들쑥날쑥한 마음일까? 현재 상황이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면 어디든 상관없이 이직할 준비가 되어있을까?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가 왜 지금 이 시점에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려고 하는지 차근차근 고민해 보았다.
나는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운 좋게 인턴을 할 수 있었던 회사에서 운 좋게 정직원 제의를 받아 내 커리어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내가 정직원으로 다시 회사에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인턴을 했을 때 나를 담당했던 매니저가 회사를 옮기게 되었고, 그가 떠나기 전에 함께 점심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그분이 했던 말이 아직도 머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100일 동안 특별히 배우는 것이 없다면 이직을 고려해볼 만하다.
회사에서 내가 있는 그룹은 반년 단위로 계획을 세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되었다면 나는 반 년동안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에 참여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이직을 고민할 여유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이런저런 사정으로 계획에는 차질이 생겼고 참여할 예정이었던 프로젝트들 중 절반이 반년 뒤로 미뤄졌다. 게다가 초반에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생각보다 빨리 끝나면서 나는 거의 4개월 이상을 큰 프로젝트 없이 보내게 되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이상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고 본인이 재량껏 다른 프로젝트, 혹은 중요한 일거리들을 찾아서 진행하는 직원이 좋은 직원일 것이다. 나 역시 짧은 커리어 동안 몇 번 이런 일이 있었고 익숙하다. 전에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승진할 수 있으니까, ' '때마침 찾아온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니까, ' '그 시간에 다른 자기계발을 하면 되니까' 라며 넘기곤 했지만 이번에는 전 매니저가 했던 말이 자꾸 귓가에 울렸다. 4개월 동안 큰 프로젝트가 없다면 그만큼 내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때마침 찾아온 인터뷰 기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커리어는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진다. Individual Contributor(이하 IC)와 Manager. IC는 한 팀을 구성하는 팀원들을 말한다. 그들의 역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전문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회사가 계획하는 제품, 혹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Manager는 말 그대로 그런 팀원들을 관리하는 매니저를 말한다. 테크 회사에서 IC와 Manager의 차이는, 직급의 높낮이가 아니라 하는 업무, 즉 업무가 좀 더 기술 적인 것인지, 혹은 좀 더 인사관리에 치중한 것인지,의 차이이다. 사람관리나 회사의 경영방침 등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기술 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은 본인이 원하고 상황이 허락한다면 은퇴할 때까지 IC로 남아있을 수 있고 또 실제로도 그렇게 남아 개발자로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평생을 개발자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경영에 대한 관심도 있기 때문에 가능한 IC 보다는 Manager의 길을 택해서 나아가고 싶었다. 나는 한 우물을 깊게 파는 Specialist보다는 얕더라도 넓게 보는 Generalist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내 목표를 이루는 데 더 도움이 될 듯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의 팀은 솔직히 내가 지금까지 만난 팀 중에 최고였다. 입이 벌어질 정도로 뛰어난 개발자들이 사방에 널려있고, 20명 남짓한 팀원 둘 중 15명 이상이 최소 Senior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선임급 개발자들이었다. 매니저 역시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어떤 매니저들보다도 능력 있고 멋진 사람이었다. 내가 마이크로소프트에 계속 남아있고 싶고, 남아있어야 할 첫 번째 이유를 꼽는다면 팀원 들일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팀은 없듯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팀은 팀의 구조상인지, 아니면 개인 사무실을 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업무환경상인지, 팀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뛰어난 개발자들은 그들의 실력만큼 자존심과 고정관념 동안 강했고, 나 같은 초중급 개발자들의 의견이 그들의 의견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내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준 높은 개발자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내 의견을 피력하고 나의 주도하에 어떤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기에는 그 들의 벽이 너무 단단하고 높게 느껴졌다(혹은 단순한 내 자신감 부족, 실력 부족일지도 모른다) 나는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의 토론이 가능하고, 내가 더 많은 책임감과 리더십을 갖고 프로젝트를 진행시켜 나갈 수 있는 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싶었다.
특정 시기에 일정기간 이상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혹은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외부에서 그렇게 인식한다던지).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내가 일했던 Cloud computing이 나의 전문분야인 것처럼 낙인찍히고 싶지 않았다. Cloud computing은 분명 가장 각광받는 분야들 중 하나이고, 많은 회사에서 Cloud computing에 대한 지식이 있는 개발자들을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남아 몇 년 간 더 일을 한다면 나도 많은 회사들이 탐내는 전문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테크 분야들 중 내 관심분야를 찾지 못했다. Cloud computing이 아무리 쿨하고 전망이 밝은 분야라도, 내가 정말 계속 몸담고 싶은 분야인지 확신이 서기 전에는 이 곳에서 내 발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내가 미래에 찾은 그 무언가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분야더라도, 내가 행복하게, 또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분야라면, 나는 그곳에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