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과도 같을지 모르겠다.
꿈을 향해 한 발짝씩 움직이는 것.
작가라는 근사한 호칭을 붙이기 위해 안 읽던 책도 읽고(내 경우) 일부러 생각도 많이 한다.
그렇게 들어온 인풋들을 내 나름대로 정돈시켜 말끔하고 단정한 정장을 입은 듯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내어놓는 연습을 한다.
(그래서 어쩌면 내겐 더 힘들다. 원래 난 단정한 의상보다 반항적인 프린팅이 박힌 티셔츠와 바지는 좀 흘러내리는 카고팬츠에 워커를 신고 야상쟈켓과 야구모자의 후리함이 내 스타일이니 말이다. peace!!)
우리는 매일 여러 분야의 책을 통해 꿈을 꾸고 또 키우기도 한다.
지구촌 세상 속 내가 직접 가보지 못한 여행기만 읽어도 ‘만약 내가 그곳에 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낯설겠지만 그 새로운 경험을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친다.
때론 그들의 용감함을 빌리기도 하고 슬픔을 나누기도 하고 지식을 얻기도 또 반성의 기회도 누린다.
즐거움을 얻는 기쁨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창작
비단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곡을 만들고 디자인을 하고 자기만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쩌면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에 읽었던 오스틴 클레온의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이란 책을 꺼내본다.
뒷 표지에 윌리엄 랠프 잉이란 사람은 '독창성이란? 들키지 않은 표절이다'라는 문구를 남겼다.
책 본문 중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톰 소여의 모험》 작가로 널리 알려진 마크 트웨인은 '남의 것들을 그냥 내버려 두느니 주워 와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낫다'라는
말로 베낌을 확신의 창작요소로 강조했다.
이젠 누가 먼저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만들고 싶은 창작물의 시초를 어떻게든 안 들키게 훔쳐와서 너만의 색을 입히라고 대놓고 말해주고 있다. 사실 내가 하면 창작, 남이 하면 표절이란 말도 있지만 그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기 202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창작물들이 쏟아져 나왔을까.
고대의 어떤 것들은 잊히고 또 어떤 것들은 재창조되어 다시 환생하기도 하면서.
*뇌의 가소성 : 상상을 반복하면 뇌의 신경회로가 실제로 변화하며 이는 뇌가 스스로 신경 경로를 재구성하는 '신경가소성'현상 때문이다. [출처. 네이버 검색]
그렇다.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든 상상하는 뇌로 단련시켜 신경회로의 변화를 일으키는 작업이야말로 상상의 원천 회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떨 땐 '에이, 나만 이런 생각하겠어? 남들도 한 번쯤은 해본 거 아니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생각에 그친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닌 없을 무(無)에 해당할 것이다.
그래서 끄적끄적 메모하는 습관이 들여졌고(뒤돌아서면 바로 까먹는 나이이기도) 그 작은 메모가 원천이 되어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려준다.
‘재능보다 더 귀한 건 꾸준함’이라고 한다.
나 역시 재능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큰 바위 덩어리가 수십 년 파도에 휩쓸려 자갈이 되고 또 작은 모래알이 되듯
오늘도 내일도 생각의 파도를 타고 넘실거림을 즐기려 한다.
난 원래 글을 쓰는 작가가 꿈은 아니었다.(아마 최종 꿈이 아닐 수도.. 꿈은 계속 바뀌는 거니까)
하지만 창작을 하고 싶단 생각은 늘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지금은 글로 표현되고 있을 뿐.
지금의 난
내가 책을 통해 그랬듯 나도 누군가에게 나의 널 뛰는 활자(말처럼)를 통해 기쁨을 나눠 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찰나의 순간이어도 좋다.
그냥 '큭‘하고 코웃음을 치더라도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