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그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사람이다. 아직도 우리 집에서 여왕으로 통한달까.
연년생인 친언니와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며 언니에게는 이런 기억이 있었다.
초등학교 하교 때 비가 갑자기 예보도 없이 많이 오는 날, 다른 친구들의 엄마는 우산을 들고 나와있거나 차로 데리러 올 때 우리 엄마는 그런 적이 없었다고 한다.
집에 비를 쫄딱 맞고 와서 "왜 안 데리러 왔어?" 하면 "어련히 혼자 잘 오겠지, 오다가 우산 정도는 사서 올 수 있지 않아?"라고 말이다.
아, 맞는 말이다. 초등학생 정도 되면 이제 그 정도는 혼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지.
또 다른 언니의 기억 속에 콕 박힌 어린 시절 일화는 엄마가 사과를 깎아서 혼자 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언니가 "왜 나는 안 줘?" 하니까, "너도 먹을래?" 하고 그제야 사과를 줬다는 거다.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의 육아 가치관은 과잉보호와는 참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엄마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우리 자매에게 자연스럽지만 강하게 탑재되었다.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한 후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다.
"아기는 누가 봐줘? 친정엄마가 봐주나?"
"아니요, 친정엄마가 봐주지 않아요."
나는 아기가 7개월 때 어린이집을 빨리 보냈고 그 선택의 사고에는 친정엄마의 도움은 당연하지 않다는 가치관이 깊숙이 뿌리 잡고 있었다. 엄마도 엄마의 삶이 있으니까.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도 내가 배 아파 낳은 아기와 하루 종일 함께 하는 것은 쉽지 않고, 30대 중반인 나도 아기를 보면서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픈데 왜 친정엄마의 희생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걸까.
물론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서 친정 근처로 이사를 가는 친구들이 종종 있다. 다른 시터의 손을 거치지 않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면 그건 그거대로 모두에게 축복할 일이다.
그렇지만 그건 절대 당연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친정엄마가 봐주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는 또 한 번 우리 엄마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준다면 그만큼의 대우와 당연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감사함은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이 펼쳐질 수 있음에 모두가 더욱 감사해야 하는 건 아닐까. 우리 사회에도 그런 가치관이 서서히 자리 잡아갔으면 좋겠다.
친정 엄마에게도 엄마의 삶이 있다.
나는 우리 엄마가 매일매일 다채로운 중년의 삶을 멋지게 살았으면 한다.
@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