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35분.
우버 택시를 타고 일부러 주소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내렸다. 택시기사에게는 사십 분 후에 돌아갈 것이라고 미리 약속을 해두었다. 나는 재우를 찾아서 같이 도망을 나올 계획을 세웠다. 떠오르는 방법은 하나였고, 치밀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 차선은 없었다. 어떻게든 성공해야 했다.
밤이 짙게 깔렸고, 도로는 개미 한 마리 다니지 않는 듯 조용했다. 미리 구글 맵으로 숙소와 주변 지리를 봐뒀지만, 실제 거리와는 느낌상 큰 차이가 있었다. 일단 너무 어두웠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은 있으나 마나였다. 달빛과 별빛을 위안 삼아야 했다.
걸어서 숙소 가까이 다가갔다. 높지 않은 담장이 흉물스럽게 솟아 있었다. 군데군데 깨지고 무너져 있는 담장 주위에는 쓰레기들이 빼곡하게 버려져 있었는데 얼핏 봐도 그것들이 평범한 쓰레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박지와 비닐봉지, 주사기 등 약을 하고 나서 버린 도구들이 섞여 있었다. 인적이 드문 동네이기는 했지만 시드니 외곽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놀라웠다. 그때, 담장 안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몸을 숙이며 담장 가까이 붙었다. 어두운 쪽으로 가서 몸을 숨기고 담장의 깨진 부분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다.
숙소는 납작한 형태의 이 층 건물이었다. 일 층과 이 층에는 문과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문이나 창문 중에서 상하지 않은 것이 없어 보였다. 정체 모를 색깔의 페인트가 통으로 넓적하게 떨어져 나와 벽마다 달려있었고 바닥 곳곳에서 쓰레기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곳은 그냥 폐건물이었다.
방금 말소리를 낸 두 명은 일 층에 있는 한 문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쓰는 언어로 보아 재우가 말한 사람들이 맞는 듯했다. 다른 문들에 주목했다. 저 문 중에서 한 곳을 열면 재우가 있을 것이다. 재우를 데리고 나와야 한다. 정신 바짝 차리자.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쿵쾅거리는 심장을 한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10시 48분.
휴대전화를 열어 문자를 보냈다.
‘근처에 도착했다. 그런데 택시기사가 잘못 내려줘서 장소를 못 찾고 있다.’
둘 중 한 명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문자를 확인하고 그가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는 미리 무음으로 설정해 둔 상태였다. 전화를 받지 않자 그는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또 받지 않았다. 그가 뭐라고 하며 짜증을 부렸다. 세 번째 전화를 걸면서 그가 걷기 시작했다. 담장 밖을 바라보며 그가 걸어서 나가자 다른 한 명이 그를 불러 세웠다. 둘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뭔가 심각하게 주고받았다.
‘제발... 제발...’ 나는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전화하던 한 명은 이제 담장 밖으로 나와서 주위를 살펴봤다. 나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담장에 꼭 붙어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고마운 순간이었다. 그가 조금 더 밖으로 나왔고 안에 있던 다른 한 명도 그를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 둘이 뭐라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지키고 있던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내서 그들이 나온 틈을 타 재우를 데리고 나올 생각이었다. 일이 의외로 쉽게 풀리자 나는 재우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 두 사람이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의 상태를 보건대, 아마도 이 층은 아예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일 층에는 방금 저들이 나온 문 말고 세 개의 문이 더 있었다. 첫 번째 문에 다가가 귀를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창문이 깨진 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어두워서 실내가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일단 두 번째 문으로 갔다. 두 번째 문은 완전히 부서져 있던 터라 안이 훤히 보였다. 아무도 없었다. 빠르게 세 번째 문으로 옮겨 갔다. 문과 창문에 틈이 없었다. 빨리 재우를 찾아 도망가야 하는데 확신이 없어서 어느 문을 열어야 할지 망설였다. 마음이 급했다. 갱단 무리가 어느 방에 더 있을지 전혀 예측이 안 됐다.
그때 내가 지나다니는 소리를 들었는지 누군가 첫 번째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왔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그만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나를 보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으나 곧 뭐라고 말하며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앞에 있던 세 번째 문을 서둘러 잡아당겼다. 삐걱거리는 문을 두 손으로 힘껏 열고 들어가 안에서 문을 잠갔다. 그가 문손잡이를 잡고 마구 돌렸다. 문은 다행히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무 문은 너무 약했다. 그가 주먹과 발로 문을 쾅쾅 치자 문이 곧 부서질 것처럼 삐그덕거렸다. 그 사람이 밖에서 소리를 질렀다. 다른 사람들을 부르는 것 같았다.
방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재우가 여기 없는 걸까. 이렇게 허무하게 실패하는 걸까. 눈이 방의 어둠에 서서히 적응했다. 잠시 후 한쪽 구석에서 이불에 둘둘 말려진 채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보였다.
재우?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확인했다. 나를 만났을 때보다 상태가 훨씬 더 나빠 보였지만 재우가 맞았다.
재우야. 나야 민준이. 알아보겠어?
재우는 입맛을 다셨다.
우리 지금 나가야 해.
재우는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
밖에 몇 명이 더 몰려왔다. 문은 곧 부서질 것 같았다.
재우야, 이럴 시간 없어. 일어나.
나는 재우의 팔을 들어서 내 어깨에 둘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재우가 허깨비처럼 훅 들렸다. 예상보다 가벼운 무게에 나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반대쪽으로 넘어졌다.
으... 어...
재우가 신음했다.
어어, 미안해.
너무나도 가벼워진 재우를 부축하고 나는 다시 일어섰다. 창문은 문의 반대편에도 하나 나 있었다. 약간 작긴 하지만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크기였다. 창문을 열고 먼저 재우의 상체부터 밖으로 내보냈다. 아무리 재우가 가벼워졌어도 나와 비슷한 키의 그를 들어 창문을 통과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재우는 자기 몸에 전혀 힘을 주지 못하고 흐느적거렸다.
창틀에 재우의 복부가 걸쳐지도록 균형을 잡아놓고 나는 남은 공간을 비집어 먼저 빠져나왔다. 재우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몸 전체를 빼냈다. 재우는 나를 어쩌다 한 번씩 쳐다볼 뿐이었다. 문 저쪽에서 창문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11시 9분.
나는 재우를 부축한 채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부서지도록 이를 악물었다. 택시의 위치를 가늠해 미친 듯이 달렸다. 뒤를 돌아보니 건물 뒤로 달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문이 더디게 열리자 내가 나온 창문 쪽으로 건물을 돌아 나온 것이었다.
나는 어둠 속으로 완벽히 숨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창문을 통해 도망쳤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형상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암흑이었다. 다만 타닥타닥 뛰는 발소리가 그들에게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얼마쯤 뛰었을까. 저 앞에 택시의 헤드라이트가 보였다. 택시의 불빛을 향해서 나는 쉬지 않고 달렸다. 약속을 지키고 서 있던 택시기사가 너무 고마운 순간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저 뒤에서는 헤드라이트 가까이 가는 나와 재우를 이제야 발견하고서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기 시작했다. 택시까지는 이제 이십여 미터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보다 빨리 택시를 탈 수 있는 거리였다. 달리면서 보니, 재우의 목과 팔이 뛸 때마다 이리저리 마구 흔들렸다. 약에서 깨어나면 목깨나 아프다고 하겠네 하며 잠깐 우스운 생각을 하는 그때, 택시가 후진하기 시작했다.
어? 나는 조금씩 멀어지는 택시에 손을 흔들었다.
잠깐, 잠깐!
손을 흔들며 택시기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거야! 잠깐 기다려! 스탑! 스탑!
나는 손을 흔들며 택시기사에게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후진하던 택시는 핸들을 꺾어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야! 거기 서! 멈추라고! 야!
나를 태우고 왔던 택시기사는, 사실 내가 으슥한 동네로 가자고 할 때부터 뭔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로. 그것도 이 늦은 시간에 가자고 하는 동양인을 그는 미심쩍어했다. 그나마 내가 현금을 보여주며, 왕복으로 다녀오면 팁을 두둑이 주겠다고 해서 내키지 않지만 와준 것이었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그가 기다려준 것이 나는 너무 고마웠는데, 그가 지금 바로 내 앞에서 도망가고 있었다. 내 옆에는 의식 없는 재우가, 그리고 뒤에서는 위협적으로 쫓아오는 무리가 있었다. 그가 무서워할 만도 했다. 그래도...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였다. 세 발짝만 더 가면 탈 수 있었는데... 택시는 내가 곧 따라잡을 수 없는 간격을 만들어내며 멀어져 갔다.
나는 택시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서! 서라고!
나의 외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공허하게 울렸다. 택시는 더욱 속도를 올려 왔던 곳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내게 있던 모든 힘을 다 쏟았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하아... 하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재우는 땅바닥에 이마를 찍고 그대로 널브러졌다. 뒤따라온 갱단 중 한 명이 땅에서 돌을 집어 들고 다가왔다.
내 여권이랑 지갑을 잠시만 맡아 줘.
나는 재우를 찾으러 가기 전에 유리의 집으로 찾아갔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유리의 걱정 어린 얼굴이 보였다. 이제 유리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는데. 유리를 걱정시키거나 놀라게 하기 싫었다. 하지만 여권과 지갑을 누군가에게 맡겨두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떠오른 사람은 유리뿐이었다. 혹시나 일이 잘못되어 내게 나쁜 일이 생긴다면... 유리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기도 했다.
무슨 일은 아니고... 어디를 다녀와야 하는데 이걸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그래.
유리는 어디를 가느냐, 뭘 하려는 거냐고 묻지 않았다. 물어도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을 알아서였다.
민준아... 나 왜 이렇게 불안하지? 너 괜찮은 거야?
나는 유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때 예약해 둔 택시가 도착했다.
금방 올 거야. 걱정하지 마.
유리는 택시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보고 있었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던 피는 이제 어느 정도 멈춘 것 같았다. 나는 옆으로 누워있다가 일어나 보려고 몸을 움직였다. 몸을 아주 조금 움직였는데도 나는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온몸이 욱신욱신하고 확확했다. 귀에서 삐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는 피가 고여 미끄덩거렸다. 눈에 피가 들어간 채로 잠이 들어서인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딱딱하게 말라붙은 피딱지가 속눈썹 사이사이를 붙여두었다. 두 손은 등 뒤로 결박되어 눈을 비빌 수도 없었다.
재우야.
나직하게 재우를 불러봤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전재우.
방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어젯밤 계획대로 재우를 데리고 도망칠 수 있었다면... 허술한 계획으로 인해 일을 다 그르치고 말았다. 나 때문에 재우가 더 위험해지지나 않았을까, 나는 자책했다.
눈꺼풀에 힘을 주고 겨우겨우 눈을 떴다. 어두웠지만 어렴풋이 방 안이 보였다. 벽에는 핏방울이 튀어 있었고 내가 누워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바닥 여기저기에 피가 고여 있었다. 몸을 천천히 돌려 방 안을 둘러봤지만 재우는 보이지 않았다. 재우는 어디 있을까.
어젯밤에 택시를 놓친 후, 나는 갱단에게 끌려가 몇 시간 동안 두들겨 맞았다. 돌에 머리를 맞아 피가 얼굴에 철철 흐르는 채로 나는 쉴 새 없이 맞았다. 그들은 총 다섯 명이었는데 두세 명이 돌아가면서 때렸다. 주먹으로 때리다가 힘들면 발길질로, 그러다 지치면 그다음 사람이 와서 때리는 것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몸을 둥글게 말고 손으로 머리를 감쌌지만, 소용이 없었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강한 타격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입술이 터지고 손가락이 부러졌다. 코뼈가 부러진 후에는 고막이 터졌다. 고막이 터지는 날카로운 고통에 귀로 손이 올라갔고 그 찰나에 강한 발길질이 늑골에 꽂혔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헉!
숨이 안 쉬어졌다..
헉... 헉...
숨을 몰아쉬면서 피를 뱉어냈다.
헉... 헉... 헉...
의식을 잃었다. 그제야 그들은 때리는 것을 멈췄다.
일어나려고 하자 뼈가 어긋난 몸의 모든 곳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윽. 흑...
어떻게든 일어나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여기서 곧 죽을 것 같았다.
윽... 윽... 일어나려고 애쓰는데, 바로 옆방에서 누군가 벽을 쳤다.
툭 툭 툭
‘옆방에 누가 있는 거지?’
툭 툭 툭
혹시, 재우?
재우는 노크도 세 번, 박수도 세 번 쳤다. 3은 완벽한 숫자라며 의식적으로 뭐든지 세 번 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 기억났다.
재우! 재우야.
재우가 나에게 무언가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들리지 않았다. 벽이 생각보다 두꺼웠다. 웅웅 거리는 정도로만 들렸다. 큰 소리를 내서는 안 되기에 둘이 하는 말은 서로에게 잘 닿지 않았다.
재우야. 너 괜찮아?
제발 재우는 괜찮았으면...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나는 좀 다쳤어. 너 혹시 움직일 수 있어?
어제 통과했던 창문이 보였다. 그들이 막아놓지만 않았다면 저 창문이 나와 재우에게 마지막 희망일 터였다. 재우가 창문을 통과해서 내게로 와야 했다. 내 몸 상태로는 도저히 혼자 저 창문을 통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재우야 창문으로 와. 창문 넘어서 이쪽으로 와.
들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계속 말했다.
창문. 창문.
재우는 내 말을 분명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알아채야 한다.
창문. 창문으로.
내가 반복해서 말하자 재우가 벽을 툭 툭 툭 쳤다. 알아들었다는 뜻인가? 아직 탈출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옆방에 재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을 얻었다
재우가 창문을 통해 이쪽으로 넘어오는 것을 기다렸다. 알아들었겠지. 제발... 제발... 옆방에서 부스럭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재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재우도 결박되어 있으려나? 그래서 이렇게 더딘 것일까?
재우야. 손이 묶였어? 손. 손이. 묶인 거야?
벽에 대고 말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문이 확 열렸다. 어제 늑골을 부러뜨린 사람을 포함해 두 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결박된 채 엎드려있던 내 팔을 홱 잡아 올렸다.
아아아악!
너무도 큰 고통 앞에 나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으으으...으아으...
팔뼈가 어긋난 채로 잡아당겨졌다. 나는 고통 때문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문밖으로 아무렇게나 잡아끌어서 흙바닥에 내팽개쳤다.
어윽...
나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내 온몸은 피와 흙 범벅이 되었다. 먼저 끌려 나와 있던 재우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미... 민준아.
윽... 윽...
재우는 어제에 비해서 그나마 지금은 정신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았다.
퍽킹 코리안!
대장처럼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그는 내가 자신을 놀렸다고 했다.
메스 원 킬로그램? 하!
그는 아직 분이 안 풀렸다는 듯이 엎드려있는 나를 발로 퍽 찼다. 복부를 맞은 나는 다시 으윽 하고 신음했다. 그는 그 후로도 계속해서 나를 발로 찼다.
퍽! 퍽! 퍽!
그때마다 나는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했다. 재우는 옆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재우는 자기 뺨을 때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 약에서 완전히 깨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갱단과는 반대 방향을 보고 누워있었다. 건물의 입구가 바로 보이는 위치였다. 온몸으로 발길질을 견디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입구 쪽에 뭔가가 보였다. 검은 것이 왔다 갔다 했다. 사람의 형상 같기도 한 무언가가 어른거렸다. 또 플래시백 증상이 찾아온 것인가. 나는 죽는 순간까지 저런 걸 보는구나. 참담한 기분이 되었다.
갱단 대장은 나에게 침을 뱉고서 바지 주머니에서 손을 넣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천천히 칼을 꺼냈다.
칼을 본 재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내 몸 위에 쓰러졌다. 두 팔을 벌려 나를 가리고
플리즈, 플리즈 돈! 하고 소리쳤다.
옆에 서 있던 다른 사람들이 재우를 잡고 우악스럽게 옆으로 밀쳐냈다. 종잇장처럼 가벼운 재우는 쉽게 떨어져 나갔다.
안돼! 안돼, 제발! 플리즈! 플리즈! 재우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도와줘! 헬프미! 제발! 여기 아무도 없어? 도와줘!
그 사람이 칼을 들고 서서히 내게로 다가오던 그때,
Freeze! (멈춰!)
총을 든 경찰들이 담장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Drop your weapon! (무기를 버려라!)
십여 명의 경찰들과 기동대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갱의 대장은 칼을 던졌고 무리는 손을 들었다. 그들은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손쉽게 진압되었다. 경찰은 고압적인 목소리로 명령하며 그들을 무릎을 꿇리고 수갑 채웠다.
재우가 엎드려있던 나에게 다가와 묶였던 결박을 풀었다. 내 손목을 둘둘 감고 있던 테이프를 조심스레 풀었다. 그러고 나서 나를 천천히 돌아 눕혔다.
민준아. 괜찮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빨리 병원으로!
재우가 소리쳤다. 재우는 경찰에게 달려가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앰뷸런스가 곧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뛰어왔고 나를 차에 실었다. 나는 이제 신음도 하지 않았다. 내 의식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