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휙 하고 들어오는 바람이 서늘했다. 얇은 티셔츠 아래 드러난 팔에는 닭살이 돋았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봄의 길목에서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불법체류에 대한 조사를 받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예상보다 간단해서 몇 시간 만에 나는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호주의 공기와 달리 인천의 공기에서는 꽃 향도 풀 향도 나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에 섞인 배기가스 냄새는 익숙한 듯 낯설었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유리의 돌아가라는 말을 곱씹었다. 사랑의 크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어린 시절의 몇몇 기억들도 떠올렸다. 그리고 부모님을 생각했다. 아버지의 따뜻한 눈빛과 어머니의 넉넉한 품. 내가 잊고 지냈던, 아니 잊으려 했던 것들이다.
공항에서 나와 몇 걸음 걸었다. 건물에 가려진 한낮의 그림자가 크고 선명했다. 그늘에서 몇 걸음 더 걸어 햇빛 속으로 들어갔다. 온도 차가 명확히 느껴졌다. 강렬한 햇빛이 목 뒤로 내려왔다. 뜨거웠다. 고개를 돌려 태양을 봤다. 태양은 거기 있었다. 태양은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늘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태양은 나의 몸에 닿는 그만큼의 빛, 내 발밑에 놓인 그림자만큼의 몫을 내게 허락하고 있었다.
나의 몫.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생각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닌,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내가 움직이면 그림자가 변하듯이, 삶의 모습은 계속해서 변할 것이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햇빛처럼 늘 곁에 있던 것. 당연해서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그것들 말이다.
비로소 나는 내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 깨달았다. 돌아갈 자리,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진정으로 나다운 곳이 어디인지 명확히 알았다. 발걸음을 빨리했다.
집 앞 전철역에 도착해서 계단을 올랐다. 출구로 나와보니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에 집에서 몰래 나와 재우에게 가던 때가 생각났다. 불과 몇 달 전인데 나는 그때의 내가 어린애로 여겨져 설핏 웃음이 나왔다. 눈을 돌려 익숙한 길거리를 봤다. 여전히 역 앞의 분식점과 토스트 가게에는 사람이 많았다. 식당을 보자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유리가 가져왔던 김밥의 맛이 입에 맴도는 듯했다. 기내식으로 먹은 퍽퍽한 샌드위치에 물 한잔이 마지막 식사였다. 거의 열 시간 동안 굶은 통에 몹시 배가 고팠다. 호주에서 한국 음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지라 지금 따뜻한 밥에 국 한 대접만 있어도 몇 그릇은 비울 수 있었다. 나는 맛을 상상하며 가게 앞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집으로 가야 한다.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 먼저였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나는 결론을 이미 냈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에게 가기만 하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 불과 한 시간 전이었다. 하지만 막상 집 가까이 오니, 여러 가지 걱정이 앞다투어 떠올랐다.
도어록 비밀번호가 혹시나 바뀌었을까? 집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하지? 부모님을 만나면 뭐라고 할까?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냥 돌아갈까? 생각을 조금만 더 정리하고 다시 올까?
느리게 걷던 걸음은 어느새 멈춰있었다.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발로 애먼 땅을 찼다. 배가 고픈 것도 잊고 누구의 집인지도 모를 남의 집 담벼락에 기대 한참 동안 서 있었다. 하늘은 금방 어두워졌다. 저 멀리 달이 보였다. 호주에서 보던 달과 모양이 조금 달라 보였다. 괜히 유리를 떠올리며 지금 뭐 하고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러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돌고 돌아 어렵게 온 참이었다. 똑같은 방황을 또 해서는 안 되었다. 멀리 익숙한 아파트 정문이 보이고 더 멀리 21층 우리 집이 보였다.
어두운 하늘 아래에 우리 집 창문의 불이 밝게 켜져 있었다. 수많은 불빛이 반짝이는 가운데에서도 유독 우리 집 창문이 밝게 빛나며 나를 조명하는 듯했다. 내게 허락된, 나에게 주어진 빛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달려왔다. 달려오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두 팔을 벌린 채 내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내가 당장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발걸음이 다급했다.
민준아! 민준아! 아이고, 우리 민준이 맞는구나!
아버지가 점점 가까이 오셨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내가 걱정해 왔던 표정이 있는지부터 살폈다. 나에 대한 실망감, 혹은 배신감이 서려 있지나 않을지 두려웠다.
아버지.
아버지는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를 꼭 안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민준아. 아휴. 민준아.
아버지는 내 등을 어루만졌다. 쓰다듬고 토닥거렸다. 아버지의 손이 뜨거웠다. 뜨겁고 큰 손이 나를 만지자 내가 이제야 실제로 한국에 도착한 것 같았다. 아버지는 소리 없이 울고 계셨다.
돌아왔구나. 그래, 잘 왔어. 오기만 하면 됐어. 오기만 하면 되는 거야.
떠났던 아들이 돌아왔다는 사실 말고 아버지에게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버지. 죄송해요.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나도 아버지를 안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아버지의 냄새가 났다.
민준아. 가자, 집으로 가자.
아버지는 눈물을 닦으시고 내 어깨에 손을 얹으셨다.
아버지는 차를 타고 아파트 정문을 빗겨서 나가는 중에 얼핏 차창으로 내 뒷모습을 보셨다. 어두웠고 뒷모습밖에 안 보였지만 아버지는 나를 단박에 알아보셨다. 급하게 차를 세우고 달려오는 통에 뒤에 있던 차가 경적을 울렸다. 뒤차를 향해 아버지가 연신 허리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하셨다. 아버지를 따라서 차에 탔다. 아버지는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왜 나갔냐고, 그동안 무얼 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내가 돌아온 것만을 생각하고 기뻐하셨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얼굴로 어머니는 나를 만졌다. 만지고 또 만져도 모자라는 듯 어머니는 나를 계속 쓰다듬으셨다. 다만 한 가지, 호주 하늘 아래 새까맣게 그을린 내 얼굴이 마음에 걸린다고 하셨다. 볼이 움푹 파이고 어깨가 홀쭉하다고 걱정하셨다. 어머니는 이러고만 있어서는 될 일이 아니라고 하시며 주방으로 가셨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식탁 위에 올리고 계셨다. 어머니는 불고기와 달걀찜을 만들면서, 아버지에게 집 앞 마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사 오시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과일뿐 아니라 내가 과자를 좋아하던 것을 기억하시고 여러 가지 과자도 한 아름 사서 오셨다.
집에 먹을 것이 별로 없네. 그동안 엄마가 기운이 없어서 간소하게 먹었거든. 민준이 오는 줄 알았으면 장을 봐 놨을 텐데.
남편과 장성한 두 아들을 위해 매일 이것저것 맛있게 식사를 차리시던 어머니다. 기운이 없어서 간소하게 하셨다는 말을 듣고 나는 속이 상했다.
치킨과 회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엄마는 해물탕도 하나 끓여야겠다며 냉동고 문을 여셨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어머니는 멈추지 않고 음식을 더 만드셨다.
나를 가운데에 두고 음식이 놓였다. 식탁에 모든 음식을 올려놓을 수가 없어서 거실 구석에 있던 작은 테이블까지 끌어왔다.
부모님의 환대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걸까. 못난 나를 왜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시는 걸까. 유리가 말한 사랑의 크기를 생각했다.
민준아, 먹자.
나는 숟가락을 들어 밥을 한입 먹었다. 더운 밥내가 코로 들어왔다. 후 불며 어머니가 만드신 해물탕과 불고기를 차례로 먹었다. 배를 곯다 먹는 어머니의 밥은, 이제까지 내가 먹었던 그 어떤 맛있는 음식보다도 달았다. 달고 따뜻하고 진했다. 혀에 닿는 모든 감각을 놓치지 않고 흡수했다. 충만함을 느꼈다.
밥을 먹는 나를 아버지가 바라보셨다. 아버지는 궁금해하고 계셨다. 주뼛거리고 어리둥절했던 둘째 아들 민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동안 무얼 하며 어떻게 지냈을까, 아버지는 묻고 싶으신 것 같았다. 아들의 이야기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들으실 분이었다. 하지만 차차 말씀드리기로 했다. 드릴 말씀이 많았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제 집안의 공기에 조금 편해졌나 싶었는데 다시 긴장이 되었다. 형이 온 것이다.
형은 밖에서부터 풍겨오는 음식 냄새에 의아해하고 있었다. 내가 집을 나간 이후로 식탁을 간소하게 차리셨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동안 기운이 없어서, 둘째 아들이 없어서 많은 음식을 하지 않으시던 어머니였다. 그랬던 어머니가 지금 식탁에 자리가 부족할 만큼 많은 음식을 차리셨다. 형이 보고 뭐라고 할지 걱정되었다.
형이 구두를 벗고 가족들이 둘러앉은 식탁으로 왔다. 식탁 위에는 그간 형이 볼 수 없었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하신 음식들과 내가 좋아해서 자주 시켜 먹었던 것들이 식탁 위에 빈 공간도 없이 빼곡하게 차려져 있었다. 평소와 다른 식탁 풍경, 그리고 평소와 다른 집안의 공기에 형은 당황하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의 등장도 형을 당황시키는데 한몫했겠지만 형의 눈이 부모님을 향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형은 부모님의 얼굴을 관찰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있었고, 바로 그 사실이 형을 화나게 했다는 것도 알았다.
음식은 그릇에 반 이상씩 남아 있었다. 내가 먹다가 남긴 것을 형은 물끄러미 쳐다봤다.
형.
나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형은 내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어, 민혁아. 어서 와라. 민준이가 왔어.
어머니의 말에도 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형의 눈에서 불꽃이 튀고 있었다.
민혁아, 이리 와서 앉아.
아버지가 식탁 의자를 뒤로 빼며 말씀하셨다.
저에게는... 저에게는 이렇게 하신 적 없잖아요.
형이 말했다.
이... 이게 다 뭐예요?
민혁아. 민준이가 돌아왔잖니. 얼굴이 너무 상했어. 음식부터 먹여야 할 것 같아서...
어머니가 변명하듯 말씀하셨다.
어떻게 이러세요?
아버지가 형을 보며 말씀하셨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민준이가 사라졌다가 지금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거니...
저는 단순히 음식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간 건 민준이잖아요. 부모님 가슴에 못 박고 잘못을 저지른 건 제가 아니라 민준이에요. 저는... 부모님 말씀을 어긴 적도 없고 늘 곁에서 착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살았던 것 같은데... 근데 왜 반대로 하세요? 왜 제가 아닌 민준이를 더 위해 주시는 거예요?
나는 나 때문에 늘 사랑을 나누어야 했던 형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내 몫이 맞지만, 형은 내 몫만큼을 잃었다고 느꼈다. 형에게 미안했다. 나는 형의 심정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민혁아.
그때 아버지가 의자에서 일어나 형에게 다가가셨다. 아버지는 형의 어깨 위에 두 손을 올리셨다.
민혁이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었잖니.
아버지는 형의 눈을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으셨다.
민준이를 잃었다가 얻었어. 그럼 우리가 당연히 기뻐해야 하지 않겠니.
이번엔 형이 아버지의 눈을 바라봤다.
형은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식탁 앞에 서 있는 나를 새삼스레 봤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나로 인해 벌어지고 있다는 데 죄책감을 느꼈다. 형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형이 나를 배려해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형은 형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었다. 형에게 그 이상을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다시 말씀하셨다.
민혁아. 민준이를 잃었다가 얻은 거란다.
잃었다가 얻었다.
형은 그 말을 곱씹었다.
불처럼 일어나던 형의 눈동자 속 무언가가 잠잠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미안해...
나는 미안하다는 말 말고는 형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지 삼일이었다. 그동안 부모님과 형이 아닌 다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우리’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쌓아두어야 했다. 그래야만 내가 내린 결정대로 밀고 나갈 힘이 생길 것 같았다.
형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퇴근할 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 와서 함께 먹었다. 대학으로 돌아가야 한다거나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아야 하지 않느냐는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이제 형은 내 위에서 군림하려고 하지 않았다.
너 나갔을 때 말이야.
형이 캔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네 방에 들어간 적이 있어. 사실 네 방에는 가위나 스테이플러 찾을 때나 들어가지 잘 안 들어가잖아. 네가 집을 나간 게 꼭 내 탓인 것 같아서 나도 마음이 안 좋았어. 그래서 그냥 한 번 네 방으로 들어가 봤는데, 그날 처음 느꼈어. 네 방이 내 방보다 너무 좁더라고. 우리 이 집으로 이사 들어올 때, 내가 다섯 살 많으니까 당연히 큰 방을 써야 한다고 말했을 거야. 그때 너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어. 그게 갑자기 생각나더라.
형은 맥주를 한번 쭉 들이켰다.
왜 그랬어?
형이 물었다.
글쎄...
형은 언제나 옳은 말만 한다는 믿음이 내게 있었던 것 같기는 했다.
생각해 보면, 민준이 너는 내 말에 반기를 든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 나는 내가 너를 참아주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네가 내게서 가져간 것이 무엇인지, 내가 너에게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만 끊임없이 생각했던 것 같아. 근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네 방에 서서 깨달았어. 네가 나를 참아주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너에게 못되게 굴었는지 갑자기 다 생각나더라고. 부모님 앞에서와 네 앞에서 이중적으로 행동하고, 너에게 일부러 상처 주는 말을 하고... 너를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 취급을 하며 함부로 대했는데, 너는 그걸 다 참아주고 있었던 거야.
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형은 마른세수를 하며 감정을 조절했다.
미안하다.
형의 그 한마디 말은 내가 그동안 느껴왔던 외로움, 낯선 느낌, 이질감과 공허함 모두를 날려 보내기에 충분했다.
나도... 미안해,
눈물을 참으며 형과 나는 맥주를 마셨다.
나흘째 되는 날. 나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고백했다. 재우와 클럽에서 약을 팔고, 호주로 건너갔다고, 그곳에서 재우의 상황이 안 좋았고 그를 구하느라 고생을 했다고 했다. 갱단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마약 판매조직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조금 다친 정도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부모님과 형은 그 정도에도 크게 놀랐다. 호주에서 벌어졌다던 한인 마약 사건이 사실 나의 일이었다는 것에 어안이 벙벙한 것 같았다.
민준아. 지금은 안 하는 거지, 그거?
형이 물었다.
응. 안 한 지 오래됐어. 생각도 안 나. 솔직히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져.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저었다.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더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다시 유혹이 찾아오면 나는 언제든지 넘어갈 수 있었다.
재우는 지금 감옥에 있어. 호주에서 현행범으로 잡혔거든.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뜻을 굳힌 후였다.
나도... 자수하려고.
부모님과 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약과 자수. 이들이 입 밖으로 꺼내본 적도 없는 단어가 내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수... 민준아, 지금은 약 안 한다며. 호주에서도 음성으로 나왔다면서.
형이 말했다.
잘 생각해 봐. 내가 알기로 마약 관련해서는 처벌이 세다고 들었어. 네가 아직 나이도 어린데 벌써 그런 전과가...
그것보다...
어머니가 형의 말을 끊으셨다.
자수를 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머니는 벌써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전혀 몰라요. 근데 재우가 그러더라고요. 나는 약을 판매했기 때문에 단순 투약자보다는 형이 셀 거라고.
나는 이 말을 하면서 속으로 아차 했다. 어머니는 기어이 눈물방울을 떨어트리셨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저도 많이 생각하고 결정한 거예요. 이걸 감추고 아무런 벌을 받지 않으면 나는 그다음으로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아버지와 형을 한 번씩 보고 또 말했다.
비겁해지기 싫어요.
다음 날, 아버지는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말렸다. 혼자 감당하고 싶었다. 큰 벌이든 작은 벌이든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족들과 현관 앞에서 인사했다. 어머니는 너무 울어 부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가슴이 메었지만 이제 어쩔 수 없었다.
돌아올게요. 제 자리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어둑한 하늘에서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세찬 비를 가르며 우산을 활짝 폈다. 우산을 받쳐 쓰고 걸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옷이 젖기 시작했다.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비가 날려 들어와 허리 아래로 다 젖었다. 비가 곳곳에 고여 걸음을 살살 옮겨도 절벅거렸다. 바람이 찼다. 옷을 여미고 우산을 살짝 올려 길을 확인했다. 맞게 가고 있었다. 가로등 하나가 깜박거리다가 딸각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