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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Aug 17. 2022

남편 없는 날은 떡볶이 먹는 날

결혼생활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

 딱 한 가지 음식만 평생 먹어야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떡볶이라고 답할 것이다. 무인도에서 한 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나는 또 떡볶이라고 답할 것이다. 인간 사료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어묵 반반 소스 많은 떡볶이라고 외칠 것이다. 쫄깃한 떡살에 달짝지근하면서도 매콤한 소스가 곁들여진 떡볶이는 변함없는 국민 소울푸드다. 탄수화물에 탄수화물 조합이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않은가. 중국 당면과 분모자 떡볶이에 이어, 최근에는 탄수화물에 지방을 더한 로제 떡볶이가 분식계를 한바탕 뒤집어 놓았다. 그 매콤 달콤 고소한 조합은 떡볶이 마니아인 나로서는 매우 흡족한 변화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학창 시절 하굣길에 종이컵 하나 가득 담겨있던 떡볶이를 이쑤시개로 찍어 먹던 추억의 맛을 이길 수는 없다.


 이렇게나 사랑하는 떡볶이지만 결혼 후 나는 떡볶이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와 달리 남편은 매운 음식을 즐기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좋아하는 음식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떡볶이를 먹는 횟수가 줄어든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여친이 생기면 평생 먹은 떡볶이보다 더 많은 떡볶이를 먹게 된다더니, 왜 남자들은 여자들만큼 떡볶이를 즐기지 않는 것일까? 취향부터 식성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남자와 여자는 무엇 하나 쉽게 맞춰지는 것이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자유의 시간이 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교대 근무를 하기에 남편이 야간근무를 가고 내가 혼자 집에 있는 날, 그날은 나의 자유의 날, 떡볶이의 날인 것이다! 요즘 나의 원픽은 로제 떡볶이에 미니 핫도그나 고구마치즈볼 조합이다. 티브이 앞에 자리를 잡고 로제 떡볶이를 먹으며 애정 하는 드라마를 보는 신선놀음을 하고 있노라면 신혼집은 어느새 자취방이 된다. 살이 찌는 소리가 층간 소음이 되어 아랫집까지 들릴 것 같은 조합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지방이 끼는 속도 보다 매콤 달콤함에 마음이 녹아내리는 속도가 빠른 것을.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을 포기하고 살면 행복할까? 결혼이란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맞다. 결혼이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좋아하는 음식도, 잠자는 습관도, 치약 짜는 버릇 하나까지도 맞추고 바꿔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한 개 두 개 숫자로 셀 수 있지만, 내가 얻는 것은 숫자로 셀 수 없는 정서적인 그 무엇이다. 평생 내 편이 옆에 있다는 든든함, 나만큼 나를 걱정해 줄 사람이 있다는 위로, 나의 족한 점을 같이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 어쩌면 내가 떡볶이를 줄일 수 있었던 건, 떡볶이가 주는 위안만큼이나 결혼생활에서 얻는 위안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만 고군분투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내가 야간근무에 들어가는 날이면 그렇게 쪽갈비를 찾는다. 어릴 때부터 시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다. 나는 살도 별로 없고 먹기 불편한 쪽갈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향에만 가면 학창 시절에 먹던 순대볶음을 꼭 먹고야 만다. 시어머니는 아들네를 위해 음식을 한가득 준비했는데 집에만 오면 그놈의 순대 타령이라고 불만이신데 말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나만 좋아하는 것을 잠시 참아주는 것.

그렇게 맞춰 살아가면서 혼자서는 얻지 못했던 것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결혼생활의 묘미 아닐까?


가끔 남편은 못 이기는 척 말한다.

"오늘은 떡볶이 먹을까?"

나의 대답은 단호하다.


"아니, 몰래 먹는 떡볶이가 더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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