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나 Aug 12. 2022

큰일 났다, 부장님이 정치 얘기를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정치 얘기 금지


 대한민국에는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군대 얘기, 축구 얘기,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 나는 여기에 두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바로 종교 얘기와 정치 얘기다. 아마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이다. 종교는 개인의 믿음의 문제이기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떤 종교가 더 훌륭한지 논쟁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정치도 종교만큼이나 믿음의 문제인 것 같다. 한번 내 편이라고 믿기 시작한 정치 성향은 바뀌는 법이 없다. 그리곤 로또에 떨어져도 상대편 탓, 지나가던 개가 똥을 싸도 상대편 탓이다. 한 번씩 아무 이유 없이 상대편을 찰지게 욕하고 혼자 뿌듯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따라 웃으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정치병자!'


 정치 얘기를 끝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적절하게 호응하되, 과해서는 안된다. 과하게 호응하면 이야기가 길어지고, 너무 호응이 없어도 내가 반대편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반대편이라는 의심이 들면 정치 얘기에 이어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로 시작하는 설교까지 더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 정교하고 적당한 고개 끄덕이기는 연차가 쌓여야 익힐 수 있는 고급 처세술이다. 이 '적당히'를 익혔다면 사회생활 절반 이상을 알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대로 반론을 해서는 안 된다. 상대를 납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고통스러운 시간만 길어질 뿐이다.


 정치 얘기 중에서도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내로남불이다. 내 편의 흠은 훌륭한 사람이 큰일을 하면서 생긴 사소한 실수고, 상대편의 흠은 천인공노할 대역죄다. 온갖 매체에 오르내리는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는 사자성어라도 된듯하다. 아직도 올해의 사자성어에 선정되지 않은 게 신기할 따름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내 편의 실수를 지적하는 바른 소리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정치 팬덤에 밀려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인터넷 댓글에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서로 자기편을 두둔하느라 바쁘다. 나같이 중도에 선 사람들은 이 소리도 싫고, 저 소리도 싫다. 마치 내 종교가 얼마나 훌륭한지 전도하려는 목소리같이 들릴 뿐이다.


'저는 무교라고요. 그만 좀 하세요!'


 이렇게나 싫은 정치 얘기지만 딱 한 번 너무나 고마울 때가 있었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 전 상견례를 할 때였다. 상견례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숨 막히고 딱딱한 느낌을. 혹시나 부모님이 말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긴 정적이 흐르면 어떻게 할까, 얼굴은 웃고 있지만 등에는 식은땀이 흐른다. 나의 상견례도 그랬다. 나는 시집보내기 아쉬운 딸이었고, 남편은 귀한 장남이었다. 두 아버지는 서로의 집안과 고향을 자랑하고 있었다. 두 아버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극에 달했을 때쯤, 대통령의 이름이 대화에 나오기 시작했다. 아, 나는 소화제를 먹은 듯 속이 뻥 뚫리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두 분의 정치 성향은 같았다. 그때부터 상견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연이어 술잔이 부딪쳤다. 두 아버지는 흐뭇하게 취하셨고, 요즘도 가끔 만나 술을 드시면서 정치 얘기를 하신다.


 내가 끄트머리 MZ 세대라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편도 저편도 아니다. 사안에 따라 나의 의사를 결정한다. 이편이고 저편이고 내게는 잘할 수도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부장님은 뜬금없이 정치 얘기를 시작하셨다. 나는 늘 그렇듯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암요. 그렇죠. 그렇고 말고요.

작가의 이전글 3일 만에 메인 등극, 글쓰기가 재미없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