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은 건강에 해롭다
우리 엄마 부엌에서 나오게 해 주세요.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밥에 구수한 된장찌개, 겨우내 푹 익은 신 김치에 엄마의 손맛이 더해진 반찬들. 한국인에게는 밥이 보약이고, 힘의 원천이라 여겨진다. 그중에서도 엄마의 정성이 담긴 집밥은 건강을 지키는 부적과도 같은 존재다. 집밥, 그 이름만으로도 엄마가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지는 마음의 고향 그 자체가 아닐까.
하지만 명절 내내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부엌에서 나오지 않는 엄마를 보면서 누군가 집밥이 얼마나 해로운지 만천하에 널리 널리 퍼트려주기만을 고대하게 된다. KBS 1TV 일일 드라마에서 엄마가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식구들의 모습을 정답게 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KBS 2TV 주말 드라마에서 가족들을 위한 엄마의 희생이 숭고하고 아름답다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밥은 세상 해로운 것이며, 좋은 엄마는 행복하게 자신의 인생을 사는 엄마라고 얘기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밥 한 끼 굶으면 큰일 나는 줄 알던 엄마가, 밖에서 밥 사 먹으면 안절부절못하던 엄마가 이제 그만 집밥에서 해방 됐으면 좋겠다. 평생 가족들만 생각하며 살던 엄마가 자신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명절 연휴 전부터 음식 준비하느라 분주한 엄마 말고, 이번에는 어디로 여행을 갈까 콧노래를 부르는 엄마를 보고 싶다.
나는 집밥이 싫다. 집밥은 엄마의 건강에 해롭다. 평생 집밥의 신화를 맹신하며 가족들 입에 손수 만든 것만 넣어주시던 엄마의 손은 마디마디 관절이 성한 곳이 없다. 그뿐인가. 음식을 만들며 맛보느라 먹고, 같이 식사하며 먹고, 남은 음식이 또 아까워 먹었더니 비만, 당뇨, 고혈압이 따라왔다. 평생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집밥을 잘 먹은 아빠의 건강도 그리 좋지가 않다. 요리하는 사람도 건강하지 못하고, 먹는 사람의 건강도 지키지 못하는 집밥, 과연 건강한 것인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까지 고집해야 하는 것인가?
안 먹겠다고 하면 섭섭해하고, 정성을 생각해 맛있게 먹으면 부엌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엄마와 실랑이를 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러니 채널A나 TV조선에 나오는 박사님들, 의사 선생님들! 집밥은 해롭다고, 집밥 장기간 먹으면 큰일 난다고 얘기 좀 해주세요. 우리 엄마 부엌에서 좀 나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