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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Apr 02. 2020

훌륭하지 않아도 괜찮아



긴 잠을 자고 일어나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늦봄 또는 초여름……. 풍경을 보니 아무래도 초여름이지 싶었다. 뒷마당의 커다란 느릅나무 이파리들이 풍요롭게 반짝였다. 그 느릅나무 그늘은 그도 전에 경험한 적이 있는 깊이와 서늘함을 담고 있었다. 공기가 진하게 느껴졌다. 풀과 이파리와 꽃의 향기로운 냄새에 묵직함이 잔뜩 섞여서 그 향기들을 허공에 묶어두고 있었다. 그는 다시 숨을 들이쉬었다. 깊숙이. 긁히는 것 같은 자신의 숨소리가 들리고, 여름의 달콤함이 허파 속에 쌓이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그 들숨과 함께 자신의 안쪽 깊숙한 곳 어딘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움직임은 뭔가를 멈추게 하고, 그의 머리를 움직일 수 없게 고정해버렸다. 하지만 이내 그 느낌이 사라졌다. 그는 생각했다. 그래, 이런 느낌이구나.

이디스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그녀를 부르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죽음은 이기적이야. 그는 생각했다. 죽어가는 사람은 혼자만의 순간을 원하지. 아이들처럼.

존 윌리엄스, '스토너'






생의 마지막 순간, 스토너는 물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마지막 부분, 죽는 순간을 묘사한 훌륭한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시간이 오면, 스스로에게 무엇을 묻게 될까. 넌 행복했니. 아니면 만족한 인생을 살았니.


죽는 순간에 어떤 질문을 던지게 될지 생각해 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이 인생을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사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굳이 성격검사를 해볼 필요도 없이(실제로 해 보긴 함)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내가 선택을 할 때 직관에 의해 빠르게 선택을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죽음의 순간 나를 흔들리게 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란, 나 같은 인간에게는 제로에 가깝다.


그러니 주저 말고 지금 끌리는 대로 선택하기. 어차피 검사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선택하고 나면 뒤는 안 돌아보는 편이라고. 그것이 인생에는 간혹 재앙일지라도 정신건강에는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다 가질 순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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