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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취 끝나고 나니 봄이네.

내 작고 소중한 갑상선 상선이 안녕

by 윤윤

12시부터는 물도 안됩니다.

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초조해져 왔다.

저녁은 건더기가 거의 없는 북어무국과 간장으로 엷게 조린 쥐포무침 돈육장조림이었다.

이게 내 마지막 식사라구?

우아하게 혼자 입원해서 심지어는 사는게 요새 너무 피곤해서

전신마취하다가 그대로 요단강 건너도 미련없겠다는 생각을 한 내가 무색하게도 나는

마지막 저녁 식사를 마구 흡입했다.

어 왜 이렇게 맛있지? 북엇국도 맛있고 쥐포 무침도 맛있고 깍두기까지 맛있네? 하면서

그리고 이를 싹싹 닦고 11:30까지 물도 야무지게 마셨다.


다음날 오후 1시 수술이라고 해서 떨릴 줄 알았는데 아니다.

그 침대는 너무 졸렸다.

6인실이라 보호자와 환자의 코 고는 소리와 신음소리가 난무한데도 일단 나는 안 아프니

잠이 쏟아졌다.

참 사람이란 얼마나 각각 개별의 존재인지 입원해 보면 더욱 느끼게 된다.


드디어 수술시간.

반지 귀걸이 등 모든 장신구를 빼고 맨발로 휠체어에 탄다.

맨발로 휠체어에 타서 이동할 때

참 기분이 이상했다. 이렇게 빈손으로 떠나는 거구나 싶어서.

그런 기분도 잠시.

이동해주시는 분이 휠체어를 밀고 병원복도를 달리니 또 잠깐 재밌었다.

엘리베이터도 먼저 타고 휠체어 타고 복도를 지날 때 머리도 나풀나풀 날려서 기분 좋고.

나를 수술실 문 앞에 덩그러니 세워두고

"수술 잘 받으세요"하고 가셨다.


그냥 수술실 앞에 그렇게 앉아있으니 백치가 된 것 같고 편안했다.

가면 가는거고 오면 오는거고 그런 생각.

아프지만 않으면 다 좋겠다 그랬다.

수술실을 오가는 의료진들의 모습은 나와 다른 세상 같았다.

바쁘고 똑똑하고 자기 할 일이 뭔지 명확히 아는 능동적인 사람들과

모든 처분을 외부에 맡긴 뇌까지 뺀 늙은 나의 수동적인 모습이.


드디어 수술방 문이 열리고

수술실은 비현실적으로 화안했다.

침대는 되게 비좁아서 떨어질까봐 묶여졌다.

요즘 수술침대는 차갑지 않고 따뜻한 물침대같은 걸로 되어 있다.


"잠 오는 주사 들어갑니다"

하니 잠이 오고

마스크가 눈 앞에 온 것을 이후로 기억이 없었다.


깨어남과 동시에 소주 5병은 먹은 듯한 울렁거림이 몰려왔다.

내 첫대사가 그거였던 것 같다.

"토할 것 같아요오오오.."

"심호흡하세요"


나는 쪼그라들었던 내 폐포가 쫙쫙 펴지면서 숙취가 나가길 바라며

미친듯이 숨을 쉬었다.


아까 요단강 건너도 괜찮겠다고 하던 나는 또 어디가고 삶의 의지만 활활 불타올랐다.

아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건 심호흡뿐이야 하는 듯이

짐 쌀 때 우리 애 걱정하며 눈물 핑글 돌던 모성은 다 어디가고

오로지 내 폐포만 생각했다.

"후아후아후아"

이런 정신으로라면 50년도 더 살 기세였다. 아주 거센 아줌마 하나가 거기서 맹수처럼 숨을 쉬고 있었던 것 같다.

sticker sticker


입원실에 돌아왔다.

2시간 동안 잠을 참고 4시간 물을 참고 그 뒤로 10시간 가량 밥을 참고

불편함을 참고 그렇게 시간이 갔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세상과 잠깐 멀어지는 시간이면서 아직 내가 살아있구나라고 혹은 살고 싶구나 라고 느낀 시공간이기도 한 것 같았다.

스스로 일어나서 화장실가고 밥 먹고 걸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표지인지도 알것 같았다.

그리고 사람은 제각각 개별의 존재이면서

어떤 아픔도 혼자 참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정말 개별의 존재라는 건 좋기도 하면서 외롭기도 하면서 가뿐하기도 하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퇴원하는데 옆칸은 퇴원을 못하니 조용히 나왔다. 왠지 미안해서.


퇴원하면서 캐리어를 밀고 밖으로 나오는데 참 햇살이 봄이었다.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고 머리를 시원하게 감고 싶었다.

거울을 보니 앞머리에 흰머리가 송송 새어나왔더라.

늙었지만 아직은 생명이 있으니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그러는데 오늘 쑥도 많이 나고 클로바도 많이 났다더라.

나랑 봄. 아직 어울리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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