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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국 한잔해~

뭘 이뤄 본 적이 별로 없는 나날들 중 하루.

by 윤윤

[좋은 생각]에 생활문예대상 응모했었다.

부랴부랴 내는 주제에 오호~ 이백만원 받으면 어디다 쓸까 벌써 봄옷을 쇼핑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아 수술하고 나오면 수술비도 버는거네 하면서 혼자 히죽히죽 웃었다.

내용은 또 엄마보다 할머니와의 추억이어서 아 엄마한텐 못 보내주겠네 막 난리났다.

투썸플레이스에서 라아지 사이즈로 커피 마시면서 말이다.

예~전에는 글로 돈을 벌어보고 싶었는데 맨날 한량처럼 커피마시고 샌드위치 먹으면서 글 쓴다 ㅡㅡ

그래도 글쓰고 다른 작가님들 글 읽고 할 때가 제일 재밌는 본투비 한량인걸?

비싼 취미는 아니니 다행인걸로 하자.

아니... 사실 얼마전에는 노트북을 샀다. 나만의 노트북이 갖고 싶어서 ..

터치도 그러하다. 터치도 되어버린다.

그래서 소중히 들고는 다니지만 맨날 유튜브만 본다.. 안되겠다.

글로 돈 벌려면 만이천팔백배쯤 더 부지런해져야 할것 같다.

여하튼 그 떄 써둔 글이 있어서 한 번 올려봅니다~

내년에도 응모해야지~ 히히



할머니와 나 우리 둘은 육십 살 차이가 나는 룸메이트였다.


가장 한가하고 자기 영역을 주장하지 않은 구성원 둘이 함께 방을 쓰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우리 엄마 아빠는 맞벌이였다.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국민 학교 등교하기 전에 할머니는 내 머리카락에 물을 발라 눈이 관자놀이까지 찢어지도록 깡똥하게 머리를 묶어 줬다. 머릿가죽에 불이 나는 것 같아 “아 할머니!” 하고 앙칼지게 소리질러 봐야 머리통을 쥐어박힐 뿐이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느적느적 돌아와도 시간은 한참이나 남는다. 이웃집에서 온갖 간섭을 하며 안 좋은 소문 신기한 소문 다 퍼뜨리다가 돌아오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면 막 째려보다가 “할머니! 문 안 열어주고 어디 갔다 왔어.” 하고 소리를 꽥 질러보지만 우리 할머니는 아랑곳 않는다. 아 할머니의 맷집이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할 데는 또 할머니 뿐이니 한 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기도 했다.

“할머니 나 동요대회 나가야 되는데 선생님이 목소리가 너무 작대.” 그러니 할머니는 호기롭게 날달걀을 가지고 와서 구멍을 뽁 뚫더니 마셔보란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할머니를 봤지만 나보다 육십 살 많으니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결과는....... “우악 웩 와악!” 그 비린내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또 할머니를 째려보니 할머니는 글쎄 큭큭큭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엉엉 울어버리니 조금 미안했던지 뒤안 조그만 텃밭에 가서 정구지를 뜯어다가 정구지전을 해주었다. 그냥 밀가루에 정구지뿐인데 자존심 상하게 왜 이렇게 맛있는지. 특히 오빠가 아직 안 왔을 때라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오빠 오면 바삭한 부분은 오빠 차지가 될 거니.


방학 때는 집이 더 조용한데 느즈막히 일어나 할머니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나면 할머니는 화투장을 가지고 온다. 화려한 손목 스냅으로 톡톡한 담요 위에서 화투를 쫙쫙 붙인다. 그날 운수를 보는 것이다. 할머니의 손가락은 끝마디가 조금씩 다 굽었는데 그 손으로 화투를 촵촵촵 섞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상한 쾌감이 있었다. “자~ 보자. 오늘은 님이 오시고 재물이 있고오~.” 뭐 운은 맨날 좋다. 그날이 그날이더구만. 그렇게 화투짝으로 운수를 떼고 내 운수도 떼 주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셨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 주던 그 소녀~” 조용필의 단발머리였다.


또 시간이 많이 남아 심심하면 할머니랑 별모양 보드게임을 했다. 내 말을 상대편 영역으로 모두 먼저 보내면 이기는 게임인데 할머니는 절대로 저얼대로 져주지 않았다. 하다가 약이 오르면 내가 말을 다 뽑아버리기도 했는데 그러면 너는 진 거라면서 그렇게 나를 놀렸다. 와....그럴 때는 우리 옆집 그 여우 같은 기집애랑 다를 게 뭔가 싶었다.


밤에는 할머니가 더 많이 필요했다. 할머니는 140cm 남짓한 작은 키에 커다란 배, 커다란 엉덩이를 지녔었다. 우리 둘은 늘 불은 끄고 티비를 켜고 잠들기 일쑤였는데 밤에 자다 무서울 때 할머니 산 같은 엉덩이에 등을 바짝 붙이고 티비 소리를 들으면 무서움이 사라졌다.


그렇게 저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우리 집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은 이제 할머니 하나가 되었다. 나는 바빠졌고 내 방이 생겼다. 학교에 다녀오면 소파에 거꾸로 앉아 화초를 보며 커다란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다. “봐라~ 여 꽃 폈다.” 하거나 마르지 않은 빨래를 걷어다가 마루에 펼쳤다가 아이고 안 말랐네 하면서 다시 널거나 했다. 할머니는 무관심과 무료 속에서 하루하루 늙어 갔던 것 같다. 밤에 가끔 할머니 방에 가 보면 티비의 그림자가 할머니의 이마 위에서 명멸하고 할머니는 팔짱을 꼭 낀 채 덩그러니 잠들어 있었다. 할머니 옆에 화투장은 조금 흐트러져 있고 나랑 같이 하던 보드게임도 화장대 밑에 들어가 얌전히 있었다. 뭐 그리고 그 뒤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가는 그런 엔딩이었다.


길 가다가 키가 작고 숱많은 빠글빠글 머리를 보면 할머니가 생각난다. 지금 살아 계실 수도 없는 나이인데도 우리 할머니 같으니 신기하다. 가끔 죽는 게 무섭기도 하다가 또 웃을 때도 있는데 거기 가면 할머니랑 재밌게 놀 것 같은 상상이 들 때가 그렇다. 가서 고스톱도 치고 화투로 운수도 떼고(저승이니 운수가 의미 없을지도 모르지만) 정구지전도 해 먹고 단발머리도 같이 부르고 그러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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