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계획 세우셨나요?
갓생. GOD生.
‘신’과 ‘인생’을 합친 신조어. 하루하루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아나가며 타의 모범이 되는 삶.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설 지난지 한참 되었지만...
새해.
중년의 새해도 새 것이다.
아니 20대의 새해는 앞으로도 깃털같이 많은 날들이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해부터 부어라 마셔라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간이 내 뺨을 올려부치며 지나간다. (눈물 좀 훔치고)

그래도 일단 며누리로서의 의무는 다 했다. 설날에.
어머니가 전이랑 나물을 다 하셨기 때문에 딱히 일이 많아 불만이거나 그런 건 없었다.
막내 아들이 과일 깎고 있는 게 너무 싫으시니 나한테는 이 나간 과도를 들이밀면서까지 과일 깎기 이중주를 지휘하신 건 뭐 애교다. 과도는 이가 나가고 진도는 안 나가고...
안타까워 하시는 걸 보는 내가 다 안타까웠다.
과일 까짓거 백 개는 못 깎을까.
일단 의무를 다 하고 긴 연휴의 끝자락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머리를 벅벅 긁으며 침대에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올해는 무얼하며 어떻게 살아야할까. 슬쩍 고민이 되었다.
나는 침대에 드러눠서 유튜브로 갓생vlog를 봤다가 뒹굴vlog를 봤다가 했다.
갓생은 부럽고 편한생은... 부럽다.
그런데 내 나이 어언 4n살. 뒤돌아보았다.
기억에 남는 생의 구간을 말이다.
그랬더니 개미 눈물만큼이라도 바빴던 시간. 뭔가 그래도 한 발 앞으로 나갔던 구간이 생각났다.
취준할 때 거지꼴을 하고 도서관에 가던 시간.
한참 외모에 관심이 생겼던 20대 후반에 요가를 열심히 해서 10kg 다이어트를 하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
그 때 쇼핑에 미쳐서 긴 치마, 종아리까지 오는 치마, 무릎까지 오는, 허벅지 중간까지 오는 치마 등등 남들이 알지도 못하는 차별점을 가진 온갖 옷을 사모으던 때.
아기를 낳고 아기랑 두 몸인지 한 몸인지 모르게 엉켜서 동굴의 시간을 보내고 처음 혼자 외출할 때의 환희. 같은 시간들 말이다.
그냥 누워서 편했던 순간은 기억에서 지워져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인생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은 어안이 벙벙한 느낌이 드는 건지.?
이런 생각을 하고 침대에 누워 전완근에 힘을 불끈 쥐어보았다.
그래! 결정했어. 올해는 갓생이야. 그래서 적어본 나의 갓생 리스트는.
1. 올해에는 날씬해질거에요.
나의 체지방은 무려 40%, 체중은 허....
이 정도면 수영을 배울 걸 그랬어요. 절대 안 가라앉는 천연 부표랍니다?
50kg대가 되어 길가다가 예쁜 옷을 한 보따리 지를거에요.
2. 글을 매일 쓰고 싶어요.
브런치 작가라니요. 제가 작가라니요. 껄껄. 하지만 이제 시작일뿐이겠죠?
좋은 글이든 나쁜 글이든 꾸준히 쓰고 싶네요
브런치 다른 작가님들 글 읽어 보는 게 너무 재밌고 또 비교되고 합니다만. 저도 작가라구요.
3. 눕순이를 탈출하고 싶어요.
밥만 먹으면 혈당스파이크 이슌지 뭔지 모르겠지만 벌렁 누워요.
그리고 유튜브를 보다가 히히거리며 까무룩히 요단강을 건너갔다 온다죠. 참나.
그러면 벌써 밤. 허무엔딩.
다들 안 누우시고 어떻게 하루를 보내시나요.
올해는 좀 덜 눕고 싶네요.
4. 요가를 꾸준히 잘! 하고 싶네요.
요가 회원 언 nn년째. 하지만 아직도 혼자만 살람바 시르사아사나(머리서기) 못하고
바카아사나는 절대 못해요(팔뚝 위에 무릎 접어 올리고 버티는 동작)
맨날 쫄아버리는 쫄면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무게도.. 상당합니다.
심지어 등록해 놓고 회원권 날리기 일쑤인 부자 코스프레까지.
올해는 요가를 꾸준히 열심히 해서 촤악 달라붙는 옷 입은 요기니가 되고 싶네요. 샨티.
5. 한 달에 한 번은 안 해본 일 하고 싶어요.
저는 궤도인간이에요.
같은 길 가고 같은 거 먹고 같은 일 하고 같은 시간에 잠드는.
새로운 거 시도하면 무섭고 피곤한.
운전할 때도 매일 같은 곳에서 차선 바꾸고 카페도 가던 데만 가고
그렇지만 올해는 한 달에 한 번은 새로운 곳 새로운 시도 그런 걸 해보고 싶어요.
치매 예방 차원에서라도 말이죠.
음.. 등산도 가보고 싶고 (도토리묵에 파전 먹고..)
뮤지컬도 관람해 보고 싶고(잘생긴 남주..)
혼자 여행도 가보고 싶고(식사 준비 탈출 웁)
예쁜 바에 가서 맛있는 술도 한 잔 해보고 싶고(젊은이 코스프......)
타인에게 모범까지 되지는 못해도 나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25년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퍼질 때 올해도 간 생이네.. 하며 쓴웃음을 짓지 않고
“올해 난 굿!이었어”라고 말해보고 싶어요.
정말 심각한 집순이 눕순이 혼자놀기 달인이지만 사람한테 관심이 정말 많은 저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지 참 궁금합니다.
